보이지 않는 손

by 송필경


― K의 기록 중에서

점은 늘어났다.

K_project_01,
02,
03.

폴더 안에는 통계표와 기사 스크랩,
위원 명단 일부,
익명의 제보 메일이 차곡히 쌓여 있었다.





각각은 단서에 불과했지만
배열하자 하나의 방향이 생겼다.

특정 연도.
특정 성씨.
특정 위원회.

우연은 반복되지 않는다.


며칠 뒤,

K가 올린 글 하나가 예상보다 빠르게 퍼졌다.

“계약직 전환 비율의 비정상적 급증에 대한 합리적 설명은 무엇인가.”

감정은 없었다.

단지 수치와 질문.

댓글은 이전과 달랐다.

“저 기관 면접관이 매번 같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전환 심사 때 외부위원이 사실상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삭제될 가능성 있습니다. 저장해두세요.”

그리고
짧은 메시지 하나.

조심하세요.


그날 밤,
블로그 접속 속도가 느려졌다.


다음 날 아침,
글 하나가 ‘임시 차단’ 상태로 전환되었다.

사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플랫폼 정책 위반 가능성.

K는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삭제가 아니라
경고에 가까웠다.


학원에서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요즘 이상한 글 쓰고 있다며.”

상담실에서 원장이 말했다.

“괜히 문제 만들지 마.
시험과 관련없는 말로 .”

시험은 시험.

그 말은 선을 긋는 문장이었다.


그날 저녁,
K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L양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K는 전화를 받았다.

“요즘 무슨 글 쓰고 있어?”

목소리는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자료 정리하는 중이야.”

잠시 침묵.

“그거… 내 얘기야?”

직접적인 단어는 없었다.
그러나 질문은 명확했다.

K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L양이 먼저 말을 이었다.

“그건 네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야.”

“뭐가?”

“세상 돌아가는 거.”

L양의 숨이 짧게 흔들렸다.

“넌 아직 시험 안에 있잖아.”

그 말은 이상했다.

시험 안과 밖이
나뉘어 있다는 듯한 말.

“넌 몰라.
규칙은 문제지에만 있는 게 아니야.”

전화는 짧게 끊겼다.

K는 한동안 화면을 보지 않았다.

L양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수혜자였지만,
동시에 알고 있는 사람처럼 들렸다.


새벽 무렵,
S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첨부 파일 하나.

출제 자문단 외부 용역 계약 목록.
특정 기업명 반복.

기업 대표 이름.

L양의 아버지.

직접적 증거는 아니었다.
그러나 선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이 지점부터는 선택입니다.”
S가 덧붙였다.
“기록은 남습니다. 사람은 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K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처음으로
두려움이 구체적인 형태를 가졌다.


삭제.
차단.
고립.

혹은 그 이상.


컴퓨터 화면에
K_project_04 폴더가 생성되었다.

K는 마우스를 멈추고
파일명을 수정했다.

K_project_public

공개를 전제로 한 기록.

숨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번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자료를 더 모으기로 했다.

구조를 흔들려면
감정이 아니라
체계가 필요했다.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K는 문득 생각했다.

시험은 정답을 고르게 만들었지만,
이 구조는 침묵을 고르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그 침묵이 조금씩 깨지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9부|선택의 비용

자료는 충분해진다.
공개를 결심하는 순간,
K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는다.

L양은 다시 연락한다.
S는 더 이상 뒤에 서 있지 않는다.

K 프로젝트는
처음으로 이름을 갖게 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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