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부터 공무원까지 다양하고 짧은 직장생활 경험들
내가 아이를 낳기 꺼렸던 이유 중에 가장 컸던 이유는 바로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었다.
물론 이 생각은 아이를 품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20대까지 난 사회를 경멸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건 바로 직장
난 아마 생존하는 20대 중 가장 많은 면접과 가장 많은 퇴사를 한 장본인일지도 모른다.
건강보험내역서를 떼어보면 수십 개의 직장의 득실이 나와있어 민망할 정도이다.
(지금은 6년째 한 직장에 있긴 하다)
애매한 수도권의 상경학부를 졸업하고, 애매한 스펙과 애매한 자격증들로 무장했던지라
좋은 기업에 들어갈 자신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난 애초에 내 눈높이는 중소기업에 겨냥되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중소기업이 봤을 때 내 스펙은 꽤 좋아 보였는지 24살에 졸업하자마자 처음 면접본 회사에 합격하였다
그 회사는 늙은 오너의 엄청난 자본(1000억 정도)으로 굴러가는 소기업이었지만 예전엔 코스피 상장까지 한 나름 뼈대 있는
기업이라며 대표이사는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회사는 주먹구구식으로 일하기에 바빴고, 난 사수도 없이 실무를 떠 앉았다
24살의 졸업반으로 나름 일찍 취뽀를 했지만 난 사회에서는 그저 햇병아리였다.
회계를 전공했지만 실무에서 회계를 다뤄본 적이 없기에 세금계산서 발행부터 난관이었고 이를 내 상사는 두고 볼리 없었다
매일 책잡혔고, 혼났고, 꾸중을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비서언니들이랑 다른 부서 언니들은 날마다 하하 호호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모르겠다만
나의 상사는 운동권에 있다가 뒤늦게 전공을 바꾼 케이스라 그런지 화가 많았다.
뭘 하든 늘 혼나는 나를 다른 부서 사람들은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하지만 우리 부서 사람들은 나를 한심하게 봤고, 결국 수습 3개월 만에 난 상사와 큰 트러블로 인해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회사는 다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끼리 형님형님 하며 서로 추켜세우기 바쁜 조직이었고,
그 조직에 나도 같은 학교를 나왔지만 여자라 그런지 몰라도 그 분위기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술도 잘 마시고, 비위도 잘 맞춰야 하며, 그 와중에 맡은 일은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는데 사실 내 능력 밖이었으니....
그리고 회사는 새롭게 만든 사업에서 매출이 전혀 없었고 오너의 자본 외에는 이렇다 할 수입이 없다 보니 오너는 신 그 자체였다.
오너의 아들, 딸, 그리고 사위까지 오면 우리는 접대 아닌 접대를 해야 했고, 비위를 맞추고 시녀가 되어야 했다.
그 구조에 적응한 다른 부서 언니들은 순응하며 다녔지만 나는 이 현대판 노예제도에서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오너의 손녀가 오면 육아까지 도맡아 했어야 했다 )
지옥 같았던 소기업을 경험하다 보니 다음 조건은 무조건 회계만 하는 팀이 있는 상장기업이 되었다.
그 이후 3개월간 휴식 아닌 휴식을 가졌다.
사실 그 3개월간의 휴식이 너무 달콤했다. 3개월 간 인생에서 나름 가장 큰 수입을 벌었었고, 그 수입이 있기에
3개월 휴식이 답답하지 않고 너무 재미났다.
취업하고 출근하는 날까지는..
두 번째 취업한 곳은 나름 큰 외국계 기업이었다.
스위스계 외국계 기업이라 난 워라밸을 기대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 기대와 무색하게 들어가자마자 회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첫날부터 야근을 강요받았다.
괜히 면접 때 체력을 물어본 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2015년 기준으로 초봉이 4000만 원이나 될 만큼 센 곳이었지만 직원들은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는 분위기였고, 성과가 없으면 1년마다 잘리는 구조였다.
결국 난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곳을 떠났다.
하루 3시간 왕복 출퇴근과 12시에 퇴근하는 삶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퇴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진행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회사를 전전했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였다.
주변에서는 처음엔 나를 격려하고 이해해 줬지만 내가 하도 입퇴사를 반복하니 점점 말을 안 하게 되었다.
그냥 쟤는 회사를 취미로 다니는 애, 잘 그만두는 애 이렇게 생각한 게 된 것 같다.
이러다 보니 내가 찾는 회사가 세상에 존재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워라밸이 있으면서 적당한 업무강도와 좋은 직장동료가 있는 곳, 사생활에 간섭이 없는 곳
그곳은 사실 유토피아나 다름없었다.
만약 어느 회사라도 그런 회사가 있다면 더더군다나 자리가 날리 없었기에 사람인과 잡코리아에 나오는 곳은 늘 거기서 거기였다.
그 이후 10군데도 넘게 합격을 하고 쇼핑을 하듯 회사를 골랐지만 내 맘에 드는 회사는 있을 리 만무하였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20대의 막바지를 향해갔다.
너무나 웃기게도 마지막에 들어갔던 소기업은 다른 건 다 포기하고 집에서 가깝고 사람들도 좋은 곳이었으나
회사가 망해 버렸다.....ㅋㅋㅋㅋ
역시 이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는 것이었다.
20대 막바지가 되자 주변 친구들은 하나씩 회사에서 직책을 맡고 자리를 잡아갔다. 아기를 가진 친구들도 속속 생겨났다.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남친(현 남편)은 좋은 기업에 취업하여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고, 주위에서는 나를 걱정했다.
20대 후반, 백수 여자친구, 끈기 없는 회사생활 하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으로 보이겠지...
결국 도피 아닌 도피로 선택한 공무원 시험공부.
1년 반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 홀로 독서실에 눈물로 지새운 결과 바로 합격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의 직장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나는 늘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회사 탓을 했지만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회사를 다녔고 나는 핑계를 대며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분명 버티는 사람도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버티지 못했기에 나를 스스로 탓했다.
하지만 나를 탓하면 탓할수록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고, 공황증세도 심해지고 불안장애가 생겨났다.
밖에 나가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사회에서 본 차가운 사람들이 생각나 사람이 싫어졌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내 아이가 자랄 사회도 이런 사회일 텐데 나처럼 적응을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래서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사실 가지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부러지지 않는 수저라도 돼주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나는 없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몸의 증상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마음은 날마다 닳아갔던 것 같다.
그나마 남편과 있을 때면 잠깐의 위안을 가졌지만 여전히 삶이 견디기 힘든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회사가 뭐길래 내 삶을 이리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일까
20대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시기였지만 나에게는 정말 지옥 같은 하루하루였던 적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런 회사들에서 쉽게 도망친 나를 지금은 전혀 탓하지 않는다.
만약 버텼다 한들 언젠가는 그만둘 회사들이었고, 그곳에 있었으면 난 지금쯤 적어도 착한 암에 걸려있을 거였으니까.
오히려 그때 그렇게 그만둘 용기를 가지고 있던 나를 칭찬 아닌 칭찬까지 한다.
세상에는 잘못된 선택은 없다.
그저 선택 후 어떻게 나아갈지 다시 정하고, 다시 나아갈 나만 존재할 뿐..
계속 뒤돌아 보기엔 남은 날이 너무나 아깝다.
수많은 직장을 다녀봤기에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었고,
피해야 할 사람들과, 조심해야 할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경력과 돈은 얻지 못했지만 나름의 삶의 지혜를 얻게 된 것도 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 회사를 오래 다녔다면 절대 알지 못할 일들도 많이 경험하였기에 지금의 내가 된 걸 수도 있다
만약 내 뱃속의 아이가 회사를 다닌다고 하면 슬플 것 같다.
회사보다는 좀 더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일률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를 말해주며,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함께 찾아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하지만 아빠처럼 회사가 체질이라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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