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에게 가장 쉬운 상대는 엄마였다.

엄마 미안해요.

by 버들나무

"딸 언제쯤 오니?아드님 축구 끝났어요"

친정엄마의 다정한 문자에 나는 또 말이 짧았다.


"잠시만"


아이들에게 말과 글의 서술어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강조하면서도 유독 엄마에겐 그게 잘 안된다. 큰 아이 입원 이후 마음이 복잡한데다 온몸에 발진까지 나면서 누군가 내 인생을 몰래카메라로 찍는 것만 같았다. 세상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아이처럼 마냥 주저앉아 울고 싶은데 겨우 억누르며 버텨내고 있다. 그래서 늘 날이 서 있었다.


축구경기를 마치고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둘째와 나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는 엄마는 죄가 없다. 그런데 오늘도 내 분노는 엄마를 향했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는 장소에 차를 세우자 뒤에서 거세게 크락션을 울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비상 깜빡이를 킨 채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드님께서 오랜만에 마트 게임기를 보니 한번만 하고 싶다네. 그거 시켜주고 있어. 5분만 기다려줄래?"


"아니 그럼 왜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내가 내뱉은 말은 칼날같이 날카로웠다.


"그럼 마트에 주차하고 여기서 같이 저녁먹을래?"

"엄마, 애가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내가 밥이 들어가?됐어. 얼른 나와"


이어 엄마가 건넨 한마디에 나는 시야가 뿌옇게 변해버릴때까지 펑펑 울었다.


"나한테 네가 내 새끼야. 내 새끼 밥 못먹고 굶으며 애들한테 시달리는거 엄마 속상해. 내가 다리아프고 힘들어도 네 애들 봐주는건 너 조금이라도 쉬게 하려는거야. 너 오늘은 무조건 저녁먹어"


나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다. 엄마는 항상 그 사실을 그토록 무심하고도 뼈아프게 상기시켜준다. 그러고보니 큰 아이 입원 이후 제대로된 식사를 챙겨먹지 못했다. 언제나 곁에 있어도 내가 그립다는 작은 아이에게도 살뜰한 눈빛한번 보내지 못했다. 엄마는 내 사소한 행동과 말에도 과하게 반응하며 언제나 내 모든 것을 마중할 준비가 되었는데 나는 엄마의 사소한 실수에도 엄마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나쁜 딸이다.


"엄마 미안해...내가 잘못했어. 우리 밥먹자"


우리는 마트 인근 만둣집에 가서 만두 한접시와 김밥 두줄을 나눠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나오자 엄마는 나부터 챙긴다. 엄마의 쭈글쭈글한 손등이 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큰 아이 나이때 엄마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었다. 그때 엄마 나이가 마흔 셋이었으니 지금 나는 엄마가 겪어온 세월을 오롯이 지나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엄마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을텐데 우리 엄마에겐 친정 엄마가 없어서 모든 것을 홀로 감당했을게다. 내 모진 사춘기도, 시어머니의 홀대도, 자식들의 병치레도 모두 엄마가 짊어지고 갈 십자가였다. 엄마가 그 십자가를 내려놓을 쯤에 언니와 나는 차례로 아이를 나았고 그때 엄마의 나이는 겨우 50대 중반이었다. 여자는 꼭 직업이 있어야 한다며 직장에 가 있는 동안 딸들의 아이를 모두 봐주셨고, 60대가 되어 편안해질 무렵에는 내 두번의 암때문에 간병까지 도맡아 하셨다. 돌이켜보니 엄마 삶의 팔할은 자식들 뒷바라지였다.


나는 오늘도 가장 고마운 사람에게 가장 모진 말을 내뱉었다. 후회하고 반성하면서도 엄마에겐 왜 다정하고 친절하지 못할까?겨우 만두와 김밥에도 딸과 먹어서 맛있다는 엄마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애잔해진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