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발 입원시켜줘
언젠가부터 매일 아침 눈 뜨는 일이 두려워졌다. 아마도 딸이 등교를 거부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모범적이었던 큰 딸의 별명은 '칸트'였다. 스톱워치를 가지고 다니며 자기 자신을 통제하며 공부든 과제든 계획한 바를 완벽에 가깝게 해내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6학년은 지옥과도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같은반 친구가 가하는 학교폭력을 참아내야했고, 선생님께 호소해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1년을 식물인간처럼 살았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왼팔에, 어떤 날은 오른 팔에. 아이의 몸 구석구석 날카로운 것들이 휩쓸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왜 엄마에게 말 안했을까.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끝도없는 고리를 이어나갔다. 한번은 아이를 붙들고 채근한 적이 있다.
"왜 엄마한테 얘기안했어?"
"내가 얘기했음 도와줬을 것 같아?또 엄마 아픈데 그런 것도 스스로 해결못하냐고 했을거 아니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8년 전 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고 고된 항암산에 올랐다. 머리카락이 모조리 빠져버린 상황, 강제폐경, 유방 전절제는 30대 초반이었던 내가 받아들이기엔 버거운 무게들이었다. 그땐 가장 소중한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 친정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번갈아 돌봐주셨고 나는 그 시간에 항암과 요양을 병행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립심이 생겼고 일찍 철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철저한 내 착각이었다. 특히나 큰 아이는 그 시기를 고통이라 명명했고 학교폭력을 당하던 시기 역시 도려내고 싶은 순간이라 불렀다. 딸에게 있어 과거는 돌이킬 수없는 아픔이 되었다.
그리고 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폐쇄병동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오늘도 눈 뜨자마자 등교를 거부했다. 매일같이 우리집은 전쟁터다. 어린이집 보낼때도 씩씩하게 잘 가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매일 아침 어르고 달래기를 수십번, 오늘은 그마저도 실패다.
"그래. 네가 힘들었구나. 얼마나 힘들었니"
상담센터에서 배운 이 두 문장을 나는 주술처럼 반복한다. 이 주술이 우리에겐 마법처럼 먹히질 않는다. 어떤 때는 아이의 농간에 이용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아이의 처량한 목소리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다. 애증의 감정이 아이와 내 사이를 오고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 역시 점점 피폐해진다.
"엄마 힘들잖아. 나 그냥 다시 입원시켜줘!"
".....네가 많이 힘들었구나. 얼마나 힘들었니?"
오늘도 주술을 외워본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