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애초부터 내 머리 속엔, 관심 알맹이를 박아둘 소켓이 남들보다 좀 더 많았던 같다. 세상 모든 현장에 가볼 수 있어 보여서 기자가 되고 싶었고,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프랑스어의 매력에 빠져 학과 선택에도 거침이 없었다. 운이 좋게도 졸업도 하기 전에 기자가 되었고, 우연히 접한 코딩이 즐거워 관련 학과 대학원에 갔다. 잠깐 정책 연구원에 몸 담는 바람에 과학기술정책이라는 무지하게 두꺼운 책에 빠져 살았고, 인공지능 분야의 박사과정으로 옮겨와선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러다 임팩트 투자를 하는 회사로 옮겨 왔다.
성질머리가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움직일 수 있던 건 오롯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서른살 무렵까지는 전혀 이렇게 생각지 않았다. 내가 기운이 좋아서, 스스로 의지가 강해서, 마침 모아둔 돈이 몇 푼이라도 있어서 뭐든 거뜬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4년 4월, 전국민을 슬픔으로 몰아넣은 사건을 진도 앞바다에서 한 달 가까이 보고, 듣고, 온몸으로 부딪으며 내 안에서도 많은 것이 변했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살아있는 것 뿐이었다. 운이 좋아 내 뜻대로 시간을 거쳐올 수 있던 것 뿐이었다.
그러니, 산 사람은 조금이라도 세상을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이 들었다. 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고,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일은 벌어져선 안 됐다. 어떤 거창한 일을 저지르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하는 일이나 취미 안에서 조금은 신경 쓸 줄 아는 것. 그것이 내 목표가 됐다.
이 한 뭉치의 글 묶음에서 나는, 내 전공인 인공지능의 틀 안에서 문/이과의 경계인이 펼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와 예시들을 촘촘이 풀어나가려고 한다. 거창한 미래 시나리오가 아니다. 기술이 펼쳐내는 부자 되는 이야기보다, 어떻게 운의 여부와 상관 없이 많은 이들 기회를 잃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려 한다. 연구의 틀보다는 좀 더 가까운 생활 속 이야기에서 풀고자 하니, 조금은 말랑한 내용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