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 집착하지 않는 법

날려버린 것은 과거일 뿐이다

by 제인봇

개발을 한다는 것은, 컴퓨터 화면 이면의 방정식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령 서버는 어떻게 생겼는지, 네트워크는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지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깨작깨작, 바깥의 데모 코드를 돌리다가는 그만, 소중한 데이터를 날려버리든, 혹은 많은 돈을 쓰게 되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사람의 심연을 들썩이게 하며, 인생에 대한 고귀한 철학을 가져다 주는 일로 번지게 될 수도 있다.


내 이야기다. 나는 시스템 구조에 여전히 미숙한 연구자다. 얼마 전부터, '누가 CV를 워드로 내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대체재, 혹은 주도재가 되어버린 노션(Notion)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보니, 매달 꼬박꼬박 만 원 넘게 내가며 개인 연구 홈페이지 유지 용도로 두던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존재가 무상해 졌다. "노션으로 홈페이지를 대체할 수 있다고?"라는 말에 솔깃해 갖은 블로그를 넘나 들었고,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아, 나의 홈페이지는 그렇게 노션 스타일의, 흰 종이 검은 글씨 만이 오롯이 존재하는 웹페이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전의 AWS 기반 홈페이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도메인은 이미 노션용 페이지로 넘어가 버렸고, 나의 데이터는 AWS EC2(일래스틱 컴퓨팅) 너머 S3(스토리지/저장공간) 어딘가에 고요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실체를 찾지 못했다. 결국 RDS(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까지 기존의 웹 페이지를 백업해보는 시도까지 하고야 말았다. 결과적으로, RDS는 '아마존웹서비스에서도 무지하게 값비싼 것으로 손꼽히는' 녀석이었고, 그 다음달 나는 10만원에 가까운 액수를 지불해야 했다. 물론, 데이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왜냐하면, 겁에 질린 내가 결국 AWS를 탈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단순히 내 연구 실적을 적어둔 페이지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2018년에 한 달 동안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며 쓴 기록들, 그곳에서 관찰한 이야기들, 사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실 그것이 가장 아까웠다. 살리지 못한 것은, 그저 나의 기록 뿐이라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만 보니, 이런 기억은 단순히 이때 뿐이 아니었다. 싸이월드가 문을 닫는다고 했을 때, 나는 온갖 스크롤러를 다 동원해 내 사진을 꺼내오려 했었다. 일부는 성공했지만, 너무 오래된 것(이를테면 2004년 여름 무렵의 사진들)은 긁히지 못했다. 그 때 나는,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내려 놓았었다. 물론, 그 토종 SNS가 다시 부활한다는 소식에 다시 집착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스트러글링(Struggling)의 과정은 늘 그렇듯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자신감 저하, 낙담 이후의 자기 합리화 과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얼마 전에는 내 컴퓨터의 용량이 모자라, M.2(엠닷투)라는 1테라 짜리 메모리카드를 새로 끼웠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카드의 데이터가 어찌된 일인지 날아가 버렸고(당연히 내 착오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말 수 많은 연구 데이터를 또 날려 먹었다. 다행히 일부 중요한 것은 클라우드에 백업을 해 두었지만, 이 실수로 나는 똑같은 코드를 머리를 짜내어 다시 쓰고 있다. 그 뿐이랴. 고백하건대, 2014년쯤 취재를 위해 구입 했던 소량의 비트코인(당시 1비트코인 = 90만원) 잔액이 블록체인 지갑 어디엔가 남아있는 것이 분명할 터인데... 안타깝게도 그 지갑은 오래전 쓰고 팔아버린 아이폰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코인이 2천만원 정도 됐을 때 그 코드를 찾으려고 집안을 뒤집어 숱한 개인 기록물들을 찾아 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그 때도 내려놓게 됐다. 아,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며.


잔혹한 케이스 스터디겠지만, 이런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특히 기술을 섣부르게 안 채 새로운 시절에 편입하려 하거나, 혹은 내가 세상 모든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고 무언가에 도전한 상태일 때, 이런 일은 곧잘 상처로 다가온다. 하지만 세상 일은, 내가 모든 것을 익히고 진입할 수 없는 법. 부딪히고, 깨지면서 단단해지는 것 아닐까. 과정을 겪으면 배우는 것이 남는다. 그나마 남의 데이터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 데이터를 잃는 것에 너무 슬퍼하지 말자. 내가 날려먹은 것은, 그저 과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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