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 적재적소에 AI를 끼워 넣으려면, 그리고 끼워 넣게 하려면
투자를 받을 때도, 할 때도 일종의 공식들이 있다. 봐야 하는 지표도 있고, 노려야 하는 틈새도 있으며, 공략을 짜는 방법도 양측에서 첨예하게 부딪는다. 특히 요즘은 AI 원천기술이 있느냐, 혹은 어떤 특정 AI 기술을 기반으로 시장을 빠르게 선점할만한 놀라운 기획이 있느냐에 따라 밸류가 측정되곤 한다. 그러니 너도, 나도, AI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내외부에서 나온다. "아, AI가 진짜 여기서 필요한 거 맞아?"
기업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현재 AI 기술이 얼마만큼 수준이 올라와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묻는 이유는 단순하다. 현장에서 곧장 쓸 수 있는지, 위험성은 없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를테면 CS(Customer Service)의 인력 대부분이 감정 노동에 너무 시달리니까,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인원 자체가 너무 많으니까 AI를 좀 썼으면 좋겠다고들 한다. 기존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던 치명적인 단점들을 메울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져다 쓰고 싶다고들 말한다.
예약이나 기본적인 문의는 소위 말하는 'AI 비서'들이 곧잘 한다.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기존의 ARS 기반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처럼' 응대하는 봇으로 광고되지만, 실은 주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필요한 대답을 하는 것에 가깝다. 물론 기술 자체는 뛰어나다. 예컨대 주차 가능 여부에 대해 묻는다면 "주차되나요?" "차는 어디에 대요?" "주차장 좀 알려주세요" 같은 여러 표현방식으로부터 동일한 의도를 파악해 답을 주는 것은 꽤 높은 수준의 자연어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주차 정보를 알고 싶으면 1번을 눌러주세요"라는 ARS 시스템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말로 하는 ARS'에 대고 '주차'라고 말해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은 또 어떠한가. 값을 치러가며 AI 비서를 설치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과연 정말 필요한 것일까?
온전히 대체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을 쓰는 것은 똑같아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국 고객의 만족도다. 인간 상담사에 대고 말할 때도 때에 따라 답답함을 느낀다는 이가 많은데, 챗봇은 오죽하겠는가. 표현이 서툰 이들, 귀가 어두워진 사람들, 말이 말처럼 안 나온다는 많은 이용자들은 기계 앞에서 더욱 작아진다. 챗봇에게는 명확하고 단정하게 말을 가다듬어 핵심만 던져야 하는데, 의사전달을 중언부언했다간 헛된 수고만 치르게 된다. 고객은 그렇게 챗봇 자체를 탓하고, 챗봇을 쓰는 업체를 더 이상 찾지 않는다. 많은 챗봇 시스템들이 그 뒤에 사람을 두고 있는 것도 결국 이 같은 이유에서다.
사람을 감축하는 것은 그렇다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 사례는 은행의 ATM 도입과 관련해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은행에 ATM 기기가 들어오며 사람들은 더 이상 창구를 찾지 않게 됐다. 창구 앞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많은 경우에 속하는 사람들, 또는 기기 사용이 여전히 어려운 사람들이 앉는다. 필수 인력이 남고, 기계가 일부 일을 덜어내는 구조. 이는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는 업무에 대해 효과를 본다. 기술을 들이는 것과 비용적으로 크로스 되는 부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치 사슬을 그리면 대체 가능한 부분이 보인다
조금 다른 분야를 보자. 감자 농장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감자 농장에서는 감자를 캐서, 도매에 넘기거나 고객에게 직접 판매한다. 그런데 이 감자 농장이 조금 더 사업을 확장하려고 한다. 감자의 상태가 조금 좋지 않아 판매가 어려운 것들에 대해 타입별로 분류를 해서 감자칩을 만드는 회사에 보내고, 감자팩을 만드는 업체에 보내고, 밀 키트를 만드는 업체에 보내는 것으로, 최대한 캔 감자를 다 팔 수 있도록 체인을 만드는 것이다. 과정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감자 재배 > 감자 수확 > 불량 감자 분류 > 불량 감자에 대해 용도에 맞게 분류 > 파트너(감자칩 업체, 감자팩 업체, 밀키트 업체) 관리 > 파트너 컨택 및 유통
이때 불량 감자를 분류하는 작업에 사람의 손이 간다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붙어야 할 것이다. 불량감자를 용도별로 분류하려면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에 맞게 또 분류를 재차 반복해야 한다.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 가장 부담스러운 것 중 하나가 인건비 부담이다. 원체 머신러닝 기반의 이미지 분류기가 성능이 좋다고 하니, 그에 맞게 모델링을 해서 인간을 대체하면 되지 않을까?
판단의 기저에는 몇 가지 고민할 요소가 있다. 첫째, 감자농장의 사이즈 및 불량감자의 양. 감자농장이 엄청나게 커서, 캐고 남은 불량감자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막대할 경우, 조금 돈을 들여서라도 소위 'AI 동료'를 모셔올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농장에서, 몇 백개의 감자만 분류해야 한다면 그냥 사람이 하는 게 훨씬 나을 수 있다.
둘째, 감자농장 사장의 AI에 대한 이해력. 적어도 직관적으로 어떤 감자를 칩으로 만들지 팩으로 만들지 알려면 그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또 고객사로부터의 피드백에 대해서도 어떻게 AI 모델에 반영할 수 있을지 그 전반적인 체계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아는 감자에 대한 중요한 부분을 기계에 학습시키고, 높은 성능을 얻을 수 있다. 기반 지식이 있는 전문가와 AI의 효과적인 협업(collaboration)을 위한 것이다.
셋째, 시장의 정확한 니즈. 기껏 열심히 완벽한 감자 분류기를 만들어놨더니 시장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고(팩이나 밀키트나 칩이나, "불량감자면 돼요. 굳이 구별할 필요 없어요"라고 할 수도 있다), 기왕 만든 분류기니 어디 다른 감자농장에 팔면 참 좋을 텐데 다른 곳들은 인간 노동력을 쓰는 게 더 낫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판단 요소를 다 충족하더라도, 결국 사장이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그 모델의 정확도다. 모델이 백 프로 정확하게 정답을 맞히지 않으면, 결국 사람이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멀쩡한 최상품 감자를 감자칩 용도로 분류하다니!!) 그마저도 모델이 몇 퍼센트나 정확하게 맞혀야 사람이 충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도메인마다 다르다. 물론 높을수록 좋겠지만, 의료 분야와 제조업, 교육, 콘텐츠 등에서 생각하는 마지노선이 다 다를 것이다. 감자 농장이 아니라, 영어문제집을 만드는 솔루션이라고 한다면, 자동 문제 출제 AI를 쓰더라도 인간 전문가가 난이도에 맞게 다시 살펴봐야 하는 일이 생긴다. 당장 눈앞의 자동화는 좋아 보이는데, 막상 까 보니 인간이 도로 필요하더라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Q. AI, 이제 진짜 무조건 꼭 도입해야 하는 거 맞나? - A. It depends.
지난해 12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지금 이 시점에 AI가 산업계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 한계는 어떠한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AI 기술을 도입한 회사의 11% 정도가 재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지점이다.
AI 기술이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는데, 11% 정도의 회사들만이 AI 기술로부터 괄목할만한 (financial) 밸류를 보고 있고,
재정적인 성과 외에도, AI는 장기적으로 볼 때 팀의 효율이나 사기진작, 문화 같은 것을 재점화할 수 있고,
여러 긍정적인 전망이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변화와 ^인재 부족, ^데이터 역량의 차이, ^도덕적 이슈와 투명성에 대한 우려, ^규제 증대 같은 이슈들은 앞으로도 계속 풀어나가야 하는 부분임
그래서 AI를 비즈니스에 녹여(embed) 내려면, AI로부터 어떤 밸류를 얻어낼 건지, 각사의 전략과 목표에 맞게 정확하게 밸류 정립을 해야 하고, 또 AI 개발 자체를 비즈니스 전환(transformation) 그 자체로 보고 전반적인 비즈니스 구조를 리디자인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 네이티브들로부터 배우고, 내부에서 upskilling programs도 진행하고, 데이터 역량도 높이고, 책임감 있는 AI(RAI)에 대한 플랜도 생각해야 한다
*출처: Artificial Intelligence: Ready to Ride the Wave?, BCG, December 2021.
AI가 정말로 필요한지는 결국 인간 의사결정자들의 몫이다. 확실한 건 AI가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믿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AI를 잘 쓸 수 있을지, 밸류 체인 내에서 어디에 딱 들어맞는 기술인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잘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 AI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한참 나오고 있는 원천기술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검토와 리서치가 필요하다. 남들은 생각도 못 했던 부분에, 그 흔한 기술이 착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AI는 필수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제대로 쓰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