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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킹 Mar 19. 2022

서울 대기업 관두고 지방 로스쿨 적응하기

[로스쿨 생활기 #1] 공간도 사람도 시스템도 전부 혼란스럽다 


평생 서울에서 살아온 내가 지방에 있는 로스쿨을 다닌 지 어느덧 2주. 내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충격'이다. 서울 중구의 모든 게 다 갖춰진 최신식 시설이 있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지방의 역사가 잔뜩 느껴지는 시설이 있는  국립대로 가려니 어려운 부분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시설뿐만 아니라 사람도, 생활도 예상보다 더 어렵고 이해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선 수업에 교수님의 재량이 강하다.


나는 이번 학기에 수업을 6개를 듣는다. 그중에서 3명의 교수님이 수업시간을 초과한다. 남은 2과목이 Pass or Fail 강의인 걸 생각하면, 일반 과목 중 수업시간을 지키는 교수님이 한 분인 것이다. 제일 심한 수업은 주 2회 1시간 15분이 원칙인데 매 수업마다 1시간을 더 하고, 다른 날을 잡아 매주 2시간을 더 보강한다. 나도 대학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교수님 마음대로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 필수과목이라 뺄 수도 없고 수업의 밀도가 높은 것도 아니라 앞으로 걱정스럽다. 대체 왜 이렇게 교수의 재량이 강할까. 지방이라 그럴까? 국립대라 그럴까? 로스쿨이라 그럴까? 수업을 위해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교수님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솔직히 교수님들에게 내가 애 취급을 받으려니 당황스러운 것도 있다. 회사에서 막내 생활을 길게 해 윗사람들 대하는 일이 많았지만, 적어도 한 주체로서 존중을 받았다. 하지만 로스쿨은 교수님 말 한마디로 마음대로 연장되는 수업시간과 공부를 안 한다는 따끔한 훈계, 그것들을 순응할 수밖에 없는 객체 같은 나를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공부하겠다는데 이 나이에 이런 통제를 받아야 하나'라는 다소 건방진 생각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스스로를 좀 반성할 필요는 있겠다.


다음으로 정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바로 돈이다.


내 씀씀이는 직장을 다니던 때에 맞춰져 있는데, 지금은 소득이 0원이다. 모아둔 돈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고정수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심적으로 차이가 크다. 택시 타고 다니던 내가 당장 버스비 몇 천원도 아까울 정도다. 그런데 먹는 것, 눈이 가는 물건들 같이 내 생활은 직장에서 수입이 있을 때에 맞춰져 있는데 지출을 하지 않으려 하니 정말 답답하다. 즐겨먹던 테라 맥주는 필라이트가 되고, 커피도 안 사 먹으려고 집에서 커피를 내려서 가져간다. 내 통장에 모아둔 몇 천만 원의 돈이 있지만, 그 숫자가 줄어가는 것을 보는 게 괴롭다.


내가 아무리 생활비를 아껴도 로스쿨은 인강이나 책값으로 나가는 돈이 많다. 거의 등록금의 절반 정도 되는 돈이 부수적인 교육비로 지출되는데 카드값 찍히는 것 보면 무섭다. 로스쿨은 경제적인 후원 없이 있기에 부담스러운 곳은 맞다. 나도 내가 직장에서 모아둔 돈이 없었으면 과연 내가 비싼 인강을 들으려고 했을까 싶다. 교수님까지도 인강을 통한 선행을 권장하는 상황에서, 나는 돈이 없었으면 더 비효율적인 공부를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학생들과 교류하면 또 지출이 생긴다. 어쩌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치맥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을까 눈물이 조금 나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좋다.


로스쿨 학생들은 당연하게 성장에 욕심내고 논리에 집착하는 게 좋다. 회사에서는 다들 현실에 안주하고 결과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급여를 받는 직원 입장이고, 효율적 업무를 위해 철학적인 고민은 잠시 넣어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당장 돈 벌고 안정을 찾는 것보다 내 성장이 여기까지 사실이 괴로웠다. 또 납득이 되지 않는 일에 순응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여기에 회사에 선임 선배들이 많아 육아나 사내 정치 같은 이야기뿐이라 대화에 끼기 어려웠던 것도 내 힘든 회사생활에 한몫했다.


이번에 로스쿨에서 학회를 하나 가입했고, 동문회에 초대됐다. 덕분에 학회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특이한 교수님들만 골라서 수강한 것도 알게 됐고, 선배들로부터 자료도 많이 받았다. 또 여기 로스쿨 내에 출신 대학 동문회에 늦게 초대됐는데, 다들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소속감 있는 생활과 선배들과의 교류도 기대된다. 스터디까지 하나 참여하니 본격적으로 다시 학생 생활을 하는 게 실감 난다. 로스쿨이라고 해서 경쟁이 치열할 줄 알았는데, 일단 서로 응원하고 돕는 분위기인 것 같아 다행이다.




드디어 지난 회사 생활 동안 고대했던 학생 생활 시작이다. 공간도 사람도 시스템도 서울과 지방, 직장인과 학생이라는 변화 때문에 혼란스러운 게 많다. 당장 힘든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지만, 그래도 총평을 하자면 좋다. 더 나은 내 모습을 꿈꿀 수 있고, 조직과 타인에게 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내 자리를 찾은 것 같다.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어려운 일도 많겠지만 하나하나 잘 해결해나가면서 적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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