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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킹 Feb 28. 2024

정말 힘든 건 공부가 아니었다

[로스쿨 생활기 #12] 실무수습을 나갔다



 이번 겨울방학에 실무수습을 나갔다. 이 지역에서는 꽤 규모가 있는 법무법인이었다. 처음에는 비싼 밥을 아무렇지 않게 사먹고, 폼나는 일을 하는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곧 내 미래일 것 같아 설렜다. 그런데 이제 2주 간의 실무수습이 끝날 때쯤 되니, 나는 왜 3년의 공부를 더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스럽다.




1. 예전에 회사 다닐 때 기분이 느껴진다.


2주 정도 로펌에 출퇴근을 하면서 직장인 체험을 했다. 내 지도관 변호사님은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고, 나는 다른 변호사님한테 언제 출퇴근을 할지 물었더니 9시부터 5시라는 답을 들었다. 특별히 내게 주어진 일이 없어 바쁘게 움직이는 사무장님, 주임님들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냥 내 공부를 했다. 가끔 지도관님이 와서 읽어보라고 기록을 주시고, 생각을 묻곤했다.


참 평범하고 무난한 것 같은데 나는 괴로웠다. 옛 직장을 떠올리게 하는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왠지모르게 눈치보이는 느낌. 내가 이질적인 존재 같은 느낌. 아무도 왔냐고 하지 않고 가라고 하지도 않는 이상한 상황에서 밉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또 아주 잘 보일 필요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 어쩔 줄 모르겠는 사회생활 조직생활의 묘한 감정이 다시 느껴진다.


2.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실무수습 초반에는 이 법무법인에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업무 강도는 세 보였지만 그래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업무가 힘들면 다른 부분에서 스트레스는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직생활이 다 비슷한가보다. 오히려 대기업에 있을 때는 윗분들이 조직문화라는 걸 신경썼는데, 이곳은 작은 왕국이다보니 더 윗분들의 감정을 잘 살펴야 했다.


그래도 나는 돈 안 받는 실무수습생이라는 마음으로 조금 자유롭게 있었다. 오늘 일찍 개강한 수업이 있어 미리 말씀드리고 오전에 수업을 듣고 출근했고, 여느때처럼 5시를 넘겨 퇴근했는데 다른 파트너 변호사님이 보시고는 왜 퇴근시간이 아닌 6시에 퇴근하냐는 말을 들었다. 물론 다른 직원 분들은 6시에 퇴근했지만, 나는 처음에 5시쯤 가라는 말을 들었고 특별히 할 일도 없어 퇴근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트너 변호사님들이 퇴근을 안했을 때는 나는 조금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내가 대기업을 퇴사하고 선택한 로스쿨 3년동안 전과 달라진 건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게 아니라 줄어든다는 사실 뿐이었던걸까.


3. 급여가 적어도 감정소모가 적은 회사로 가야겠다.


어차피 나는 1억원을 넘는 연봉을 주는 대형로펌으로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설프게 월에 몇십 더 받자고 내 감정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은 피해야겠다. 변호사가 되면 받는 연봉은 그래도 하한선이 있으니 생활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이 문제인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내가 문제라는 걸 안다. 내가 약간 비꼬는 말에도 크게 상처를 입고, 부족한 평가를 받으면 감정이 불안정해지는게 문제다. 로스쿨 공부를 2년 간 하면서 거의 잊었던 그 사람 사이 힘든 감정을 이번 실무수습을 통해 다시 느끼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우등생 모범생 취급을 받으며 커 왔다. 그 부작용으로 5년 전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모자란 취급을 받거나 내게 실망하는 듯한 태도를 견디는게 힘들었다. 혼나면서 큰다는게 나는 어렵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성과를 관리할 수 있는 법 공부를 하게됐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는 남들이 나를 좋게 보지 않는걸 괴로워하고 있다. 심지어 나를 괴롭게하는 그 회사가 특별한 연봉을 주는 것도, 큰 명예를 안겨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3년을 돌아 다시 그 위치로 가게 되는 것 같아 슬프다. 마치 특별하지 않은 이성을 만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데, 잊었전 구애인과 힘들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기분이다.




문제가 있는 듯한 취급을 받는 것. 이걸 내가 못 견디는 것 같다. 학교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을 받아도 어떻게든 버텨졌는데, 그저 1학점을 얻는 것 외에 기대할 것이 없는 실무수습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약간의 태도 관찰을 당하는 것 자체에서 지쳐버린다. 여기서 더 나아가 월급을 받으면 어떤 시선을 감당해야할지 두렵다. 차라리 공부하는게 낫다. 아직 학생 신분이 1년 남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번 실무수습으로 얻은 교훈은 함부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욕심부려서 힘든 회사 가지 말 것, 공부하는 지금이 좋은 때라는 것이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어서 사는게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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