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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해대 진학기] 1. Prologue

1년 만에 학사를 딸 수 있다? 고졸 해기사의 고충과 나의 진학 계기

by 철야

2024년 11월, 나의 승선근무예비역 대체복무가 종료되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 모든 강제성이 사라지고 원하는 무수히 많은 길 중 하나를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라는 이름의 책임은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호주해양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찾기 전까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아마 많은 선배님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많은 후배님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 찾지 못한 자신의 길을 찾아다니는 모든 후배님들에게 있어 나의 이야기가 당신들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1. 해사고 출신의 고충


해사고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군 대체복무를 종료할 경우 나이는 일반적으로 만 22세에서 만 23세, 늦으면 만 24세이다.


승선근무예비역을 종료한 후에는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여섯 분류로 나뉜다.


1. 일반대학 진학

2. 육상 엔지니어, 선박대리점, 부식업체 등 업계 관련기업 취업

3. 해양경찰, 어업관리단, 해양환경공단, 선박교통관제센터 등의 공기업 또는 9급 해양계 공무원 지원

4. 자영업 등 창업

5. 워킹홀리데이, 고졸학력으로 일반기업 취업 등 기타

6. 승선 또는 해양대학 진학 후 재승선


전 세계적으로 선원 수는 감소 추세이며 이는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기에, 특히 중소선사의 경우 이력서를 넣으면 심각한 결격사항이 아닌 이상 대부분 취업하기에 선원으로서 생활해 온 사람들은 육상에서의 고충들에 대해 간과하기 쉽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육상에서의 취업은 취업난이라는 말이 몇 년 동안 떠나가지 않은 만큼 치열한 경쟁 속에 있으며, 전문직 특성상 업계를 벗어난 곳에서는 완전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해사고 출신에게 고졸이라는 신분은 더욱 치명적인데, 이 경우 업계 내 육상직에 취업하기도 쉽지 않다.


대표적인 좋은 해양공무원 및 공기업 직책인 항만국통제 검사관과 한국선급 검사관, 해양수산연수원 교원의 경우 준학사 또는 학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한다.


또한 대부분의 메이저 기업들 역시 학사 이상만을 고용하거나, 설사 고용된다 할지라도 고졸로서의 페널티가 암암리에 존재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어려움은 존재한다.


해사고는 마이스터고라는 특성상 수능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취업을 위한 NCS, 실무지식 위주의 수업을 진행한다.


본인이 해사고 3학년이었을 적에는 인문과목을 5과목만 수강했으며 그 마저도 수업차시가 많지 않았다.


기하와 벡터, 팩토리얼 같은 개념은 배운 적도 없고, 미적분은 미분을 찍어먹기만 해 보았으며, 영어 과목은 토익으로 대체되었다.


위와 같은 현실로 인해 해사고 출신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은 재직자 전형, 수시접수, 그리고 수험 후 정시접수가 있지만 모두 일정 이상의 결과를 얻기는 쉽지가 않다.


재직자 전형의 경우 우선 경쟁이 치열하며 갈 수 있는 학과의 폭이 넓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일부 대학들의 경우 고용상태를 유지하도록 요구하기에 승하선 일정이 불규칙한 해기사들은 아예 지원하지 못하는 곳도 존재한다.


수시 접수의 경우 본인이 재학중일 때 과에 60명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과목에서 석차등급을 지속적으로 좋게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수능시험을 준비하자니 아래부터 차곡차곡 준비해 온 인문계 출신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고, 이 마저도 추후 대학교에 진학해 4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취준기간까지 생각한다면 대기업, 중견기업에 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영업의 어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라 생각한다.


급여 수준 차이에 따른 어려움도 존재한다.


대한민국 상선해기사들의 일반적인 초봉은 4500만 원에서 5000만 원 사이이며, 원유•제품유선이나 화학제품운반선 같은 업무강도가 강한 선박은 초봉이 6000만 원까지 뛰기도 한다.(각주 1)


여기에 외항선취업자급여 비과세한도 500만 원과 의식주가 회사에서 제공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4년 대한민국 중위소득 월 2,228,445원과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가 난다.(각주 2)


이로 인해 많은 선원출신자들이 육상으로 나가 치열한 경쟁, 경제적 수준의 차이, 취업실패와 사업 실패등을 겪으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몇몇은 배로 돌아와 선원 생활을 다시 이어나가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배로 돌아옴', 즉 '돌배'라고 부른다.


2. 진학 계기


필자 본인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잠깐 내 소개를 하자면


2017년 3월 해사고 입학

2019년 8월 첫 상선 실습항해사 승선

2020년 3월 해사고 졸업

2024년 11월 약 30개월의 승선경력을 가지고 승선근무예비역 복무 종료


기업은 두 곳을 다녔으며 이중 한 곳은 대기업이었다.


처음에는 특례 종료 후 승선을 안 할 마음으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도전들을 준비한 적이 있다.


1. 회계사 시험 준비

2. 투자자산관리사, AFPK 시험 준비

3. 철도기관사 시험 준비

4.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 준비

5.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공부

6. 파이썬과 같은 개발자 공부

7. 3D 그래픽디자인 공부


결과적으로는 모두 도입부조차 넘지 못하고 실패했다.


현상유지편향이라는 말을 아는가?


현재의 상황에서 변화를 주려고 할 때 변화 후 기대치가 생각 이상으로 높지 않을 경우 리스크를 더욱 크게 보아 변화하려 하지 않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모두가 그렇듯, 이 현상을 나 또한 피해가지는 못하였다.


해기사라는 직업과 비교했을 때 위의 나열된 도전들은 성공 가능성이 무척이나 낮아 보였고, 또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현재 이상의 경제적 이득과 명성을 얻을 수 있는지 나에게는 미지수였기에 쉽사리 흥미를 붙이지 못하였다.


더불어 5년 동안 손에서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집중력과 책상에 붙어있을 체력, 그리고 정신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건 물론 승선 중에는 업무 때문에, 휴가 중에는 놀기 바빠서 등 직장인이라는 위치에서 나오는 다양한 변명거리들이 나를 새로운 도전으로부터 계속해서 떨어뜨려 놓았다.


그렇기에 나름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진 나로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스스로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특례 종료 후 호주 외딴 마을에 워킹홀리데이나 다녀오자라는 결정을 하게 되었었다.


이후 휴가동안 지게차 면허를 취득한 후, 호주생활에 관련해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현지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했고, 그 지인의 한마디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너 경력이 너무 아깝다. 와서 요트선장 같은 거 해보는 게 어때?"


처음에는 반신반의였다.


일단 호주 내항 면장과정이라도 알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AMSA(호주 해양청) 사이트에 접속하여 면허 관련 탭을 들어갔고, 교육수료기관 리스트에서 호주해양대학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호주해양대학에서 운영하는 과정 중에는 한국에 있는 해양대학들처럼 똑같이 해기사 양성 학사과정이 있었고, 대충 한번 쓱 볼까 하다가 STCW(각주 3) 면허 소지자들은 Pathway(편입, 엄밀히 말하면 다르기는 함) 과정을 통해 1년이면 학사를 취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고, 새로운 목적지가 나타나면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깜깜한 시야가 한 번에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의 상황보다 압도적인 메리트가 있고 리스크는 감수할 만한 현실성 있는 목표는 내 가슴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었고 그 이후의 모든 행동은 대학진학에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하게 하였다.


여러 선배님들의 조언을 듣고 정보들을 취합한 결과, 아래의 이유들은 대학진학이라는 목표를 더욱 확고하게 하였다.


1. 1년이라는 기간에 학사 취득, 단 졸업 후 취업비자는 발급되지 아니함

2. 영미권 국가에서의 유학이라는 언어능력 입증의 기회

3. 호주 상급 해기사면허 취득 기회


추후 더욱 자세하게 풀어 보겠지만, 학사취득만 보더라도 업계 내에서 커리어의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넓혀주고, 이러한 사실이 다시금 나의 열정에 불을 지펴주었다.


돌아보면 지난 1년 동안은 유학준비를 위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준비와 잘못된 준비방법 등으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럼에도 여러 선배님들과 동료들의 조언과 격려, 그리고 부모님의 지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나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혹여나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님들을 위해 이곳에서 유학 관련 정보뿐만이 아닌, 먼저 현장경험이 있는 선배로서 실무에서의 여러 팁과 스킬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스물다섯, 새로운 출발점에 선 저의 모습을 보러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처음 세상에 공개하는 글이기에 아직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각주

1. 필자 경험 및 2023년 기준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 선원평균임금 연보 참조

2. 보건복지부 기준 중위소득자료 참조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08010900

3. 선원의 훈련, 자격증명, 당직근무 기준에 관한 국제협약. 외항상선의 해기사가 되려면 해당 조약을 준수하는 면허를 소지하여야 하며, 대한민국 해기사들은 모두 이 조약을 준수하는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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