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속에서 이해받아야 할 예술, 인간 <국립현대미술관

나 혼자 간다 1탄 - 국립현대미술관 방문기

by 김태경

나 혼자 간다 첫 방문지는 국립현대미술관이다.

미술작품 관람을 많이들 하길래 나도 예전에 한번 와봤었다. 그런데 아들 둘과 남편과 함께 방문했던 터라 작품 감상은커녕 저게 그림이냐, 이걸 왜 보는 거냐며, 배가 고프니 나가자 재촉만 당했더랬다.

이번엔 딸린 식구 없이 나 혼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다. 그것도 평일 오전 10시 30분에 말이다.

휴직 끝내고 복직하고 나면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 가는 풍경 - 마냥 좋기만 한 하늘 & 지하철 곳곳에 존재하는 이명화 님

저녁에 비 예보가 있던 날이라 아주 화창한 하늘은 아니었지만, 기어이 미술관 관람 이유를 느껴 보고야 말겠다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청역으로 가는 동안, 지하철에서 이명화 님 같은 할머님들을 봤다. 정말로 전화기를 저런 식으로 들고 통화하셨고, 퐈려한 색의 옷과 짙은 화장에 껌을 턱운동하듯 씹으시며 유튜브를 보셨다. 다만 유튜브 볼륨소리가 상당히 커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분이 얼굴을 찌푸리더라. 허나 누가 뭐랄 것이냐 그 엄청난 포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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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5-09-15 111653.jpg


# 미술관 입장 - 진짜 자유로운 두 손

평일 오전(10시 30분경) 미술관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미술관을 나오던 2시경에는 사람이 제법 많더라). 두 손 자유롭게 두고 팔짱 끼고 관람하고 싶어 핸드폰만 바지 주머니에 넣고 사물함에 가방을 모두 넣었다. 이제 작품 감상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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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관람 - 한국 역사를 이해하고 보면 뭔가 느껴지는 현대미술작품들, 그리고 기발하고 신선한 작가들의 창작물

[한국현대미술전]과 [2025 올해의 작가상]이 전시 중이다. 커피값 한잔인 5천 원만 주면 미술관의 모든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일가족이 다 왔으면 금액이 부담스러웠을 텐데 혼자 오면 5천 원이니 주저 없이 콜~

(그렇다고 가족과 함께 다니는 것이 마냥 싫다는 말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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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미술 하이라이트] 전을 먼저 들어갔다.

벽에 걸려 있는 작품들을 몇 개 골라 그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근데 아무 느낌이 없더라. 작품 옆에 작게 설명되어 있는 내용을 한 글자도 안 빼고 꼼꼼히 읽었는데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도통 느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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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우리 아들 그림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들이 더 잘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음.. 뭐라도 느껴져야 할 텐데.. 가만있어 보자.. 아! 괜히 왔나? 근데 저 외국인들은 뭘 보고 있는 거지?'

'저 그림은 어릴 때 수업시간에 수업 안 듣고 내가 종종 그리던 그림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내 속에 분명히 숨어 있을 감성과 영감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도슨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나도 얼른 갔다.


[한국현대미술전]은 한국 역사적 시기에 따라 배치되어 있었다.

1950년대는 전쟁 발발로 창작자가 보고 그릴 것도, 기념할 것도 없던 시절이었고 이때 화가들의 그림은 매우 단조롭고 추상적이었다고 한다. 전쟁 후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의 그림은 일상 속 버려지는 재료들이 재료가 되어 작품이 되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표현의 방식이 디지털과 무대 위 퍼포먼스와 공간활용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의 화가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와 동떨어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 시대 속의 인간, 그 인간이 창작자로서 만들고 그린 작품들이었고 그로 인해 그 가치가 평가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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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미있게 봤던 것은 최근 연대기 작품인 김홍석 님의 <G5>였다.

2004년 개최되었던 G8 정상회담의 참여국 중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영국, 러시아, 일본, 미국, 프랑스의 국가를 한국인이 한국어로 번안해서 부르는 내용의 영상물이었다. 5명의 한국인 부르는 각 국국가의 가사가 정확히 들리긴 하였으나 내용도 감정도 하나도 와닿지가 않았다. 작가의 의도대로 교욱과 삶의 환경, 이데올로기를 통해 형성된 '국가'라는 집단 기억과 관습은 고유한 역사와 문화, 국민 정서가 녹아있구나, 그래서 다른 국가 출신이 다른 언어로 그 국가를 부를 때는 완전히 다른 맥락이 생겨나고 의미가 변형되고 왜곡되는구나 싶었다. 그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볼 뿐인데 인간과 국가, 국가성의 해체, 집단성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다니 감탄스러웠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작품들을 활용해서 교육하는 것이 지금의 방식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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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올해의 작가전]은 [한국현대미술전]과 달리 확연하게 확장된 표현 방법의 작품들이 많았다.

인공지능이 만능인 것처럼 소란스럽지만, 돌에 케첩을 뿌리면 인공지능은 핫도그로 인식하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전시작품도 있었고, '그 돌은 늘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는 시시포스의 신화 중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 나가는지를 우화스럽게 표현한 재미있는 영상물도 있었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현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경고, 풍자도 담겨 있는 듯한 작품들이 마냥 신기했다.


창작가의 작품들은 그 작품만으로 가 아니라 작가가 존재했던 당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바라봐야 작품에 담긴 메시지와 의도가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동주의 시들과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훈의 <칼의 노래>, 한강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도 당시 역사적, 문화적 상황과 맞닿아 있음을 당연히 여겼으면서도 미술작품 역시 그렇다는 걸 몰랐던 내 무지가 부끄러웠다.

또한 그저 파란색으로만 칠해져 볼 것 없는 작품이구나 했던 그림이,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100억이 넘게 팔리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매우 남다르고 특별한 작품처럼 느껴지는 경험도 하고 왔다.


# 전시 관람 - 물방울에 담긴 작가의 평생생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 [김창열] 전시관이었다.

미술분야 문외한이라 몰랐던 작가인데 이 분의 인생이 담긴 영상, 그리고 그 인생을 온통 바쳐 몰두하여 그린 물방울의 그림을 상당히 인상 깊게 보았다.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월남 한 이후 유년기와 청년기를 해방과 분단, 전쟁이라는 격동기 한복판에서 보내며 '너무 많은 죽음과 끔찍한 잔인함을 봤다'라고 회고했던 김창열 작가는 나라와 사람들의 인생 곳곳에 남은 상흔들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고, 우연히 투명한 물방울을 본 어느 날 그토록 찾던 피사체였음을 직감하고 영혼과 시간, 온 에너지를 들여 아름답고 다양한 물방울의 모습을 작품에 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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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작품 속 물방울은 영롱하고 예뻤으며 실재하고 있는 듯했다. 김창열 작가도, 그의 삶도 잘 모른 채 물방을 그림을 봤다면 "우와 진짜 잘 그렸다"하고 말았겠지만, 작가를 알고 나니 물방울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상흔과 슬픔, 아련함과 소망, 생명이 들어있는 듯했다. 돈이 많았다면 한 작품을 사서 우리 집 벽에 걸어두고 오며 가며 감상하고 싶다 할 정도였다. 허나 훌륭한 미술작품을 살 돈도 없고 이 아름다운 물방울 걸어 놓을 만한 여백의 벽도 없으니, 오히려 충분히 감상하고 가자 할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관람하는데 대략 4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미술 분야는 내게 어려우나, 다만 한 가지 배운 것은,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 듯, 극작가가 주인공들을 통해 관객에서 말하듯, 글을 쓰는 작가가 종이에 인쇄된 활자로 말하듯, 시인이 단 몇 행으로 인생을 말하는 것처럼 그림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 감독이 이제까지 어떤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그 시인이 살던 시대가 어떠했는지를 참고로 하면 그 영화와 시가 더 잘 이해되듯, 그림 역시 그림에는 쓰여 있지 않은 그림 작가의 인생과 철학을 조금이라도 알고 본다면 미술작품을 통해서도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이 되는 듯하다.

내 아들이 엄마, 아빠를 그린 그림 속에서 내 모습과 아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아무 맥락 없이 소란스럽고 위험한 사람도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현재 상황과 이제까지 삶의 발자취 위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의 행위들은 그의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받아야 할 권리도 존재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가 이 시대와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동행자로서의 최소한의 마음가짐이 되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될 테니까 말이다.


# 집으로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 역시 가볍고 좋았다.

다른 이의 창작물을 통해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깨닫는 경험은 정말 귀하고 소중한 일이다. 잠시동안의 작품 감상이었지만, 이런 경험들이 내 마음과 생각에 축적되어 좀 더 나은 일상을 살아가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비록 집에는 아들들이 손 닦고 여기저기 털어 버린 물방울과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설거지 통의 물방울들 뿐이지만 이 역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즐겁고 아름다운 맥락들이므로 누군가에게 코딱지만 한 깨달음이라도 줄 수 있는 삶이 되길 또한 바란다.


# 나 혼자 간다 1탄: 국립현대 미술관 방문기 결론 -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작품 설명과 함께 할 것.

국립현대미술관 좋네~

미술작품이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설명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팔짱을 끼고 보는 것은 설명을 듣고 난 이후에 하면 더 유익한 듯~


나 혼자 간다 2탄은 인왕산 초소 책방으로 가 보려고 한다.

애들 데리고 가면 집 앞에 있는 산, 카페 두고 왜 여기까지 온 것이냐 할 테니.. 혼자 가련다 ^^


p.s 혹시 나 혼자 가면 좋을 만한 곳, 회사 다녀 못 가는 데 혼자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살짝 추천 바람요 ~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