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길에서는 산의 소리를, 홀로움 속으로

<인왕산 초소 책방 카페>을 다녀와서

by 김태경

나 혼자 간다 2탄이다.

지난 1탄 <국립현대미술관> 방문기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너무 무겁게 글을 쓴 것 같아서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원래 첫 작정한 마음이 그런 거니 내 야심은 살짝 뒤로 두고, 즐겁고 편하게 써 볼 심산이다.


이번에는 인왕산에 다녀왔다. 정확히 말하면 인왕산에 있는 초소 책방 카페.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인왕산은 처음이다. 인왕산에 오르면 보이는 경복궁도, 청와대도 다 가 봤는데 정작 서울 중심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인왕산은 처음이다. 인왕산 초소 책방 카페는 SNS에서 꼭 가봐야 할 북카페 목록에 항상 있길래, 인왕산도, 산속에 있다는 카페도 가볼 겸 해서 집을 나섰다.


#1. 집을 나서며

인왕산을 가기로 한 전 날, 친구들과 간만의 친목도모 시간을 가졌다. 다들 애기 엄마들이라 아침 일찍 만나 점심 먹고, 티타임 가지고 집에 돌아왔는데 수다의 양이 상당했으므로 피곤했다. 인왕산 가는 당일, 아이들 학교 갈 때 나와 인왕산으로 향하는데 아무도 가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거기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나는 피곤한데 그냥 집에 있는 건 어떨까 치열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빗방울이 약간 떨어지는 건 결정적이었지.. 하지만 난 지지 않고 입을 앙 다물고 계속 걸었다.


회사다니며 9 to 6의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근 17~18년을 오전 9시-저녁 6시로 일하고, 야근도 밥 먹듯 했는데 고작 8개월의 휴직 기간 동안의 루틴이 몸에 배어 버렸으니 말이다. 게다가 고작 이틀 연속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왔을 뿐인데 피곤한 것을 보면 인간의 적응력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이 적응력은 언제나 게으른 쪽의 방향을 우선한다. 내가 그 증거이다.


#2. 인왕산 초소 책방으로 가는 길

빗방울이 떨어져서 그런가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더 좋았다. 나 혼자 뚜벅뚜벅 천천히 걸어가면 되니까.. 서울 도심지에 있는 산에 작은 계곡이 있는 게 신기하고 사방으로 나무도 울창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써야 했는데, 우산을 쓰면 쓰는 대로 우산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더 해져서 상쾌했고

나무가 많은 길을 가면 우산 없이도 나뭇잎들이 빗방울을 대신 맞아주니 나무들의 보호를 받으며 걸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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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평일 아침에 이런 호사가 또 있겠나 싶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 올라갔다.

마을버스에서 내리기까지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는데 산속에 들어와 이어폰을 꽂고 있자니 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에 왔으면 우리 집 소리를 들어야지. 뭐 좋은 거 있다고 귀를 막고 있어. 산에선 산의 소리를 듣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조금만 올라가면 무무대 전망대가 나오는데, 서울 시내 전망이 훤히 보였다.

저 빌딩들 사이에 있으면 높은 빌딩 보며 빽빽하다 빽빽해.. 하며 한숨쉬었었는데, 높은 곳에 올라와 보니 마치 산 아래에 레고 블록으로 만들어진 장난감 도시가 있는 것 처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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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왕산 초소 책방에서..

전망대를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인왕산 초소책방 : 더숲이 나온다.

책방이라고는 하지만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코너가 만들어져 있고,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는 카페였다. 오전 10시쯤 되었는데 이미 2층 테라스에는 자리가 없어서 1층에 비를 피해 앉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소금빵과 따뜻한 라테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앉아 숲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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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이어폰을 빼어두는 공손함도 필요하다.

어른들이나 선배들과 대화할 때는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는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표현이자 상대에 대한 기본 예의이다. 산에서도 그렇다. 일부 등산하시는 분들이 핸드폰으로 유튜브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산행하시기도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게 거슬리고 불편하다.

나는 산에서 산의 소리를 듣고 싶다.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 예능 속 시덥지 않은 말들을 들으며 복잡했던 머릿속을 잠시 마비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산속에 들어와 가만히 앉아서 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 더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음악, 유튜브, OTT를 듣느라 지쳐 있을 내 귀 입구에 그냥 산의 소리가 들어가게 놔두는 거다. 나는 이걸 공손 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공손하게 앉아 있으면 바람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가 들리고 저쪽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도 어느덧 산이 들려주는 소리 가운에 하나처럼 들린다.


#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잠시 홀로움 느껴 보기

그렇게 산 소리를 듣다가 가방에 넣어간 최재천 교수님의 책 <숙론>을 읽었다.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로 소개되는 최재천 교수님이지만 그분의 책을 읽으면 사회학자가 쓴 책이나 다름없게 여겨진다. 다만 자연 생태에 대한 오랜 관찰과 연구 탓에 염세적이거나 비판적이기만 하지 않고 생명을 향한 예찬과 희망이 담겨 있는 따뜻한 시선이 바탕이 되어 있어 학부모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던져 주곤 한다.

토론을 배우고 해 본 적 없는 성인, 시험 점수만 중요한 교육제도, 다양성과 창의성을 말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이를 위한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는 사회 제도들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면 좋을지 본인이 배우고 가르친 경험들을 토대로 말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홀로움'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적인 창의성은 주로 홀로 있으며 몰입할 때 나타난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


18년 가까이 정신없이, 종일 치열하게 일하다 휴직을 택하고 전업주부로 사는 일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물론 80% 이상은 이런 호사스러운 일상으로도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넘치도록 감사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계속 배워야 할 것 같고, 무엇이든 목표를 정해 두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데 나만 딱 멈추어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아주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동시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쓴 책 속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읽었고, 글을 쓰며 내 머릿속 생각들을 서랍장 정리하듯 정리해 나가려고 애썼고, 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가정을 꾸려갔다. 그래서인지 나는 황동규 시인의 말을 빌어 최재천 교수님이 쓴 '자발적 외로움', '혼자서도 충분한 홀로움' 이라는 말에 위로와 공감 받은 것 같았다.


<숙론> 책을 반 정도 읽고 다시 길을 나섰다. 카페에만 2시간 좀 넘게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자하문 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포장된 길이 아니라 흙길이 걷고 싶어 오솔길들이 나오면 걸어 들어가곤 했다. 길이 없을 것 같은 곳에도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무사히 산을 내려와서 감명 깊었던 윤동주문학관을 거쳐 집으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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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주어진 인생을 꿋꿋하고 바르게 살아갈 생각이라면,

나에게만 머물러 있던 시선을 돌려서 공손함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들어보고, 그 속에서 내 모습을 천천히 관찰해 보는 홀로움의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꼭 휴직해야만 얻을 수 있는 시간은 아니고 주말에도, 하루 중 잠시라도 괜찮다.

자발적으로 외로워 보기 위해 애써보자.

뭐든 그냥 주어지는 건 세상에 별로 없으니까...


나 혼자 간다 2탄도 유익했다. 장소 선택이 좋았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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