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은 달리기

나혼자 러닝 시작!

by 김태경

러닝(Running)이 대세라고 한다.

연예인들이 마른 몸매가 돋보이는 운동복을 입고 달리는 멋있어 보이는 사진이 유행이 되기도 했고, 폭염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2월에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이제까지 아침에 동네 공원에서 빨리 걷기를 해 왔다. 하지만 마라톤과 복싱을 즐겨하는 친구가 '야 걷는 건 운동 아니야. 뛰어!'라고 조언을 해 주어서 동네 공원에서 빨리 걷기와 살짝 뛰기를 추가했었다. 며칠 전에 만난 그 친구가 또 이런 말을 했다.

"야 나는 서울 살면 한강 가서 뛰겠다. 왜 그 좋은 데를 안 가고 공원에서 뛰냐"

그래서 서울에 사는 것이 런닝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채고, 그렇다면 주저할 이유가 무엇인가 싶었다. 무엇보다 3~4달 있으면 회사 복직해야 하는 신세인데 더 미루지 말자 마음 먹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강으로 가서..나 혼자서..


나는 젊은 아가씨는 아니므로 달리기 복장에는 신경이 안 쓰였다.

대신 달리기 어플은 깔았다. 사람들이 많이 쓴다는 나이키 어플과 삼성 헬스 어플을 휴대폰에 설치해두고, 아이들 등교 시간에 같이 나가 마을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10분을 못 미쳐서 가면 한강대교 인근에 도착한다. 오전 9시. 이게 나 혼자 한강 러닝의 첫날이었고 이 글이 연재될 화요일까지 총 7일 매일 러닝을 하고 있다(주말 제외).


-1일차: 마을버스타고 한강대교가기-노들섬 한바퀴 뛰기(2.5km)-다시 마을버스타고 집 가기

-2일차: 마을버스타고 한강대교가기-한강대교에서 샛강역까지 뛰기(노들로, 3km)-걸어서 집 가기

-3일차: 집에섭부터 샛강역을 지나 한강대교 입구까지 뛰기(노들로, 4km)-마을버스타고 집 가기

-4일차: 집에서부터 샛강역으로 가서 여의도 생태공원 뛰기(4km)-마을버스타고 집 가기

-5일차: 집에서부터 샛강역으로 가서 여의도 생태공원 뛰기(4.3km)-강변서재 독서-마을버스타고 집 가기

-6일차: 마을버스타고 한강대교가기-샛강역까지 뛰기(노들로, 3.2km)-걸어서 집 가기


고작 1주일 뛰었고, 뛰었다고 해야 하나 싶을 만큼 짧은 거리이지만 내 평생 이렇게 매일 뛴 것은 처음이다.

달리기라는 게 매력적일 수 있겠다는 걸 코딱지 만큼은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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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를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

결혼식 준비할 때 피부관리를 받았었다. 20대 후반이었고 피부관리할 만큼 돈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결혼이라는 특수상황은 돈을 쓰게 했고 몇 차례 피부과에서 누워서 관리를 받아보니 '아 관리받으면 이런 느낌이 느껴지는구나 좋다..' 싶었다.

웨딩 드레스 투어도 마찬가지다. 공주님 같은 드레스를 입으면 다 예쁘다고 해 주고, 미용실 디자이너가 공 들여 헤어스타일 꾸며 주고 예쁘게 화장해 준 후에 "오늘 제가 본 신부님 중에 제일 예쁘세요"라고 말해주면 나는 정말 내가 제일 예쁜 주인공이라고 느낀다. (물론 그 디자이너는 그 날 그 말을 모든 신부들에게 했겠지만 그때 그 순간은 그녀가 오직 내게만 하는 말로 들린다)

달리기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내가 나를 위해 굳이 버스를 타고 햇볕을 머리에 둔 채 헉헉 거리며 달리는 수고를 할지언정 내가 나를 스스로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 말이다.

달리기 시작 5일차에는 여의도 국회쪽으로 가서 한강뷰가 통으로 보인다는 카페 <강변서재>에서 책을 한 시간 반 가량 읽고 왔다. 그날 읽은 책은 해리 G.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와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문]이었는데 그 날, 그 느낌의, 그 장소여서 그런가 경치 좋은 카페에서 맛좋은 커피 한잔을 두고 책을 읽으니 새삼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호사가 참 감사하고 소중하다 생각이 들었다. 책도 금방 술술 재미있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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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두 발로만, 보고 들으며, 정직한 달리기

러닝머신에서도 뛸 수 있다. 러닝머신에서라도 뛰면 다행이다.

하지만 실외 달리기는 러닝머신 위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게 있다. 머신에서는 머신에 붙어 있는 모니터로 텔레비전을 보며 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재미도 없고, 특별히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실외에서 뛰는 것, 특히 넓은 한강변이나 풀이 무성한 샛강변을 달리는 것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을 수 있고, 햇볕이 주는 비타민 투하도 가능하며, 무엇보다 다양한 것들 볼 수 있어서 좋다.

여러 모습으로 뛰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정말 잘 뛰는 사람이 많구나 게으름을 이기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이렇게 많다 싶기도 하고, 노들섬을 뛰다 지나친 한 외국인과는 손인사를 나누며 확실히 문화가 다르다 생각도 해 본다. 나이드신 분들도 제법 많이 있다는 것을 보며 한강 달리기가 청년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도 보게 되고, 한치의 속도 변화도 없이 동일한 보폭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참으로 성실하다 싶었다.

비가 온 후 무성히 자란 나무와 풀들도 볼 수도 있다. 특히 생태공원으로 지정된 샛강 주변은 그닥 인위적인 가꿈이 별로 없는 탓에 그 어디 보다 안 예쁘지만 그 자체가 주는 자연의 풍성함이 아름다웠다.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지만 달리기는 참 정직한 것 같다.

어떤 기구나 트레이너의 도움 없이 오직 내 두 발로 땅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니까.

저기까지만 일단 가자, 1킬로미터는 마저 채우고 잠시 멈추자며 나 자신과 계속 말하면서 달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흐르고 해가 뜨겁게 느껴지지만 정직하게 두 발을 내 딛으며 저 멀리에 눈을 두고, 조용한 가운데 내 숨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시간이 마치 일기를 쓰는 시간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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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들을 끌어들이고 싶은 충동과 나 혼자 달리고 싶은 욕망의 충돌

이 좋은 운동을 남편과 아들들도 하게 해 주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같이 달리기를 시작해야 하고, 서로의 속도도 맞추어주어야 하는데 그러자니 그냥 나 혼자 달리는 걸로 하자 싶은 생각도 든다.

쯧, 그래도 좋은 건 알려주고 같이 해야지. 곧 시험이 끝나는 큰 아들과는 같이 달리기로 했다. 출발만 같이 하고 다 뛰고 만나는 걸로.(15살 아들은 혼자 뛰고 싶어 한다).


9 to 6의 삶을 사는 직장인, 게다가 일하는 엄마라면 평일날 달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몇 개월 후면 내게 벌어질 일이다. 그때 어떻게 할지는 그 때 가서 생각하고 선물처럼 찾아온 가을을 만끽하면서 뛰는 취미를 유지하며 즐겨보려고 한다.


근데 글을 쓰고 보니 좀 민망하네..

고작 열흘도 안 달렸고, 3키로, 4키로 달리는 주제에 달리기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런 글을..

참..이 양반 어디까지, 언제까지 하는지 한번 두고봅시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