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꽃이 좋아질까?

속리산을 지나며

by 김태경

명절을 지내러 가는 길에 속리산을 지났다.

정확히는 충남 보은 속리산 국립공원과 목탁봉이다. 아직 단풍시즌이 아니어서 산의 나무는 여전히 푸릇푸릇했지만, 나뭇잎의 색이 어떻든 나무와 산이 선사하는 한결같은 풍경에 별다른 할 말은 부질없다.

추수를 앞두고 황금들녘이 된 논도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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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이가 들수록 자연친화적이 되는 걸까?

왜 예쁜 꽃을 보면 사진을 찍어대고 울창한 나무들을 보며 감동하며 바라보게 되느냔 말이다. 지금 보다 좀 더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이 같은 현상은 나한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내 주변의 친구들, 선배들의 카톡 프사는 자식들, 손주들, 아니면 거의 다 꽃이다.

나는 얼마 전에 한 꼬부랑 할머니께서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올라온 민들레 한 줄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내려놓은 채 허리를 숙여 민들레 사진을 찍으시는 모습을 멀찌기에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길을 지나며 그 민들레를 바라보았다.

"넌 참 대단하다.. 그 무자비하고 단단한 시멘트 틈새를 어떻게 뚫고 나온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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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이 들수록 자연이 좋아지는 가에 대하여..

이에 대하여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발달심리학자인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은 인간 태생부터 죽음까지를 8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각 단계마다 인간은 특별한 과업(심리적 위기)을 직면하는데 이를 해결해야 다음 단계의 과업 역시 잘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에릭슨이 주장한 인간 발달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8단계에서의 과업은 '통합'이다. 자신의 존재를 성공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자아통합(ego integrity)을 이루지만 실패로 받아들이면 절망(despair) 상태에 머물게 된다. 에릭슨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 인간은, 삶에는 어떤 커다란 질서와 의미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제까지 삶의 유익한 교훈을 꼽씹어 가며 생의 여정을 돌아보는 단계로 진입하게 되고 통상 진입 시점은 41세 이상이라고 한다.

사회생활이 노련해지고 자녀 양육의 과정도 거치고 부모의 노쇠함을 목격함과 동시에 내 육체의 나약함을 마주하게 되는 이 즈음이 되니 생각이 많아지지 않나. 인생에는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언제든 불현듯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시작되고, 과거 청춘을 회상하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도 예전보다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니 점점 자연친화적인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인 셈이다.


심리학자인 라우라(Laura Carstensen)의 사회정서적 선택이론은 인간은 연령이 높을수록 정서적으로 의미 있는 목표에 더 많은 활동과 자원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은 정서적 만족보다는 도전의 경험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크지만, 중 고령층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제한적 미래 시간 조망을 가지게 되면서 정서적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 수록 가족, 친구들을 통해 정서적 안녕감을 누리려고 하는 것이고 자연으로 걸어 들어가 자연이 주는 안정, 연속성, 조용함 등을 추구하고자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젊은이들이 거의 없는 것, 무뚝뚝했던 아빠가 갑자기 가족의 수발들기를 자청하는 것이 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심리학적으로도 설명하는 이론도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는데, 자연 속에 머물 때면 이 코르티솔 호르몬이 감소하고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강한 자극을 유발하는 도파민을 선호하지만 중년 이후의 우리 뇌는 자극보다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자극을 선호하도록 변한다고도 한다. 인간의 뇌 자체가 나이 들수록 자연의 리듬과 더 조화로워지고자 하는 생리학적 이유가 있으니 이 역시 자연이 마냥 편하고 좋아지는 현상과도 잘 들어맞고야 만다.


30대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40살이 넘어서부터는 산을 가고 바다를 가면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다.

"저 나무는 어떻게 봄인 걸 알고 저런 파릇파릇한 잎사귀를 내놓을까"

"저 꽃은 알아서 피고 알아서 지는구나, 나무 친구들과 꿀벌, 곤충들과 이야기하면서 피고 지는 건가?"

인간 세계는 복잡하고 피곤한데 산은 늘 그대로 있고, 수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공존하면서 푸르게 푸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분명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질서가 존재하고 있는데 내 주머니 채우고 내 입 채우느라고 외눈박이처럼 내 앞길만 보며 살고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점점 꽃과 나무, 울창한 숲이 좋은 이유가 호르몬 때문이든, 통합을 이루기 위한 인격 성숙의 과정이든 뭐든 간에 어디 하나 바라보며 정서적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하다. 자연스러운 성숙과 노화의 과정인 것 같아서 그렇다.

인간이, 인간이 만든 기술이 위대하다고 하나 우리는 단 1초의 시간도 늦출 수 없고, 태양을 단 하루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시멘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나는 민들레를 막을 수 없지 않은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거대한 자연 질서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 결국 나에게 쉼이 되고 충전이 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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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의 울창한 나무 숲이 참 좋다.

다음에는 진짜 산속 통나무집에서 머물러 보고 싶다.

나는 태생부터 행정적으로는 도시녀이지만, 심리사회학적/신경심리학적/사회정서학적으로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통합적 인격성숙과 정서적 안녕을 추구하는 성장 중인 인간이므로, 기회만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나를 툭 내 맡기고 실컷 충전한 다음에 다시 내 자리로 잘 돌아와야겠다 생각이 든다.

몇 개월 후면 꿀 같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것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봇물 터지듯 터지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 남은 몇 개월을 잘 살아보련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모두 원래가 자연인이었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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