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와 양화진선교사묘원을 다녀와서
연휴 내내 질척이던 가을비가 그쳤다.
오늘은 청명한 가을하늘을 우산 삼아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을 다녀왔다.
종묘와 양화진 선교사 묘원이다.
# 종묘- 죽은 왕들의 영혼에게 바치는 거룩한 공간과 의식
1395년 조건 건국 후 태조는 궁궐 바로 옆에 종묘를 지었다. 후대 왕들은 선대 왕의 영혼을 모심으로 왕실의 정통성과 권위를 내보이고 부국강병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다. 종묘에는 조선의 왕 27명 중 25명의 신주(神主)가 모셔져 있다. 종묘에 없는 연산군과 광해군은 후대 왕들로부터 왕으로 여김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25명의 왕은 업적에 따라 정전과 영녕전에 위패가 모셔진다. 정전이 본전(本殿)이라면 영녕전은 보존전이다. 재위기간이 짧고 중요업적이 없던 왕은 영녕전에 모셔지는데 대표적인 왕이 정종, 단종, 사도세자이다.
종묘는 왕실의 중요기관답게 왕과 왕세자가 다니는 길이 구분되어 있으며, 신하들의 출입문도 별도로 있다. 정전은 영녕전은 지붕과 기둥의 높낮이를 달리함으로 본전으로서의 위엄을 띨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건축물이기도 하다. 왕은 정전에는 1년에 4번, 영녕전에는 2번 직접 제례를 지냈는데 전날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시작으로 가장 좋은 채소와 갓 도살한 육류로 의례를 치렀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신 종묘, 철저한 유교를 따른 규범적이고 엄정했던 왕의 제례의식, 왕의 의식을 축으로 악기와 노래 춤이 어우러진 제례악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 지구 반대편 가난한 이들을 제 발로 찾아와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 성인(聖人)들
합정동에 위치한 이곳은 1890년 J, W 헤론 선교사가 최초로 묻히면서 시작된 공동묘원이다.
1800년대 후반, 가난한 조선 땅을 밞은 외국인은 두 종류였다. 산업혁명과 유럽혁명, 제국주의 바람을 따라 수교라는 이름으로 염탐하러 들어온 정치인 외국인과 복음(Good News) 전파를 목적으로 제 발로 찾아온 선교사 외국인. 혹자는 선교사 역시 제국주의의 한 수단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선택적 죽음, 즉 순교의 이야기를 살피고 나면 '제국주의'는 인간의 욕망이 담긴 하찮은 글자 따위로 여겨진다.
헨리 G.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1858~1902년)는 목포로 가는 배를 탔다가 충돌사고로 45세에 사망, 양화진묘원에 묻혔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 근대 교육기관인 배재학당 창설자이며 민주 독립운동 육성을 목적했던 협성회를 조직하여 서재필과 함께 교내 토론대회를 개최하여 민족 계몽을 독려했다. 그의 아들이 조선을 떠나지 않고 일제 강점기까지 배재학당의 교장을 역임했다는 것과 그의 딸 역시 자진하여 조선으로 돌아와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아펜젤러의 죽음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Jan. 1863~1949)는 한국 YMCA의 창설이사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과 재정권을 박탈당한 고종황제의 미국 밀사이기도 했다. 미국의 배신으로 실패했지만, 헐버트는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조선을 침묵하기만 하는 미국 정부의 불의를 규탄한 미국인이었다. 1907년 헤이그 밀사 파송단에 포함되기도 했던 그는 조선에서 일본에 의해 추방당해 유럽 각지를 방황하다 84세가 된 1948년에야 대한민국 땅을 밟았고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양화진 묘원에 남았다. 그는 건국훈장 독립장 수장자이기도 하다.
이 묘원에 묻힌 외국인들은 부자 나라에 벼슬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조선에 남거나 조선으로 돌아온 그들의 자식도 부모가 남긴 유산을 챙기러 온 것이 아니었다. 숭고한 사명의식과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할 무언가를 잇기 위한 책임감이었다. 이 묘원에는 15개 국적의 417명이 안장되어 있다.
# 그래서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은 산자에게 달려있다.
죽은 자들의 생애로 삶을 반추하며 최상의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오직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조선왕조 500년은 질투, 거짓, 욕망을 발로로 잔인하고 매정했지만 애민과 효, 충정의 사건들이 존재한다.
양화진묘원에는 현실 너머 이상과 구원을 염원한 젊은 선교사들의 순결함을 담고 있고, 그들의 기꺼운 죽음은 대한민국의 후대를 위한 씨앗이 되었다.
모든 인간이 어미의 고통을 거치는 것처럼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은 자들에게 지고만 무수한 신세를 가끔은 끄집어내어 자문(自問)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의 죽음으로 산자를 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