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산 넘어 산, 당신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by 김태경

인트로

40살이 훌쩍 지나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당혹스러웠다.

좀 더 어릴 때는 "노인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소년 마놀린의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고, 상어가 쫓아와도 생을 기어이 살아내겠다는 노인의 포부가 멋지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완전히..


줄거리

쿠바섬 어딘가에 혼자 살고 있는 산티아고는 젊은 시절 힘세고 가장 좋은 고기잡이 솜씨를 가진 어부였다. 하지만 이제 노인이 된 그는 작고 허름한 오두막에서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듯한 생활을 하는 고독한 어부로 살고 있다. 사람들과의 교제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그가 관심 있는 것이라곤 누더기 같은 돛을 단 작은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 일과 신문에서 야구 경기 결과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노인에게 잠시동안 고기잡이를 배우던 소년 마놀린과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이다.

다른 배들은 출항할 적마다 고기를 잡아 들어오고 있지만 노인은 84일째 고기를 못 잡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40일가량 배에서 함께 있었던 마놀린은 부모의 성화로 이미 다른 배로 옮겨 탄 뒤였다.

85일째가 되는 날, 노인의 낚시 줄에 청새치가 걸린다. 족히 1500파운드(약 600kg)는 되어 보이는 청새치는 노인의 배보다 컸기 때문에 노인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감힘을 썼지만 결국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청새치에게 끌려가면서 노인은 청새치가 지치기를 기다리기로 했고 사흘이 지나서야 노인은 거대한 청새치에 작살을 박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청새치를 배 옆에 갖다 붙이고 밧줄로 묶어 끌고 가는 중에 청새치의 피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노인은 상어와 사투를 벌이지만, 상어 한놈에게 청새치의 4분의 1을 뜯어 먹히고, 또 다른 놈에게는 반을 뜯어 먹히고 만다. 마침내 노인이 해안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노인 배에 붙어 있는 청새치의 머리와 꼬리, 남은 뼈들로 그가 엄청난 고기를 잡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인은 자신의 오두막으로 가서 마놀린이 가져다준 설탕을 넣은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잠에 든다. 며칠간에 사투 끝에 노인에게 남은 것은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 뼈와 밧줄을 잡고 당기느라 만신창이가 된 손뿐이었다.


감상평


# 인생은 산 넘어 산..

대학입시가 가장 어려운 것인 줄 알았는데, 취직하기는 더 어렵다. 취직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회사생활도 만만치가 않다. 복잡한 사랑의 감정은 결혼으로 해피엔딩 될 줄 알았는데 결혼이 주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임신 중에는 엎드려 잘 수만 있으면 참 좋겠다 했지만 출산하고 나면 뱃속에 있을 때가 좋구나 한다. 아기 어린이집 보내는 것이 세상 어려운 결정이었는데 초등학교는 더 쉽지 않고,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가면 머리 큰 아이와 씨름하며 아이 미래 염려에 내 품 안에 자식이 좋은 거구나 생각한다. 자식들 취직과 결혼은 내 일이 되고, 내 나이 들어 체력 저하를 느낄 때쯤이면 노쇠한 내 부모님을 마주하게 된다..

더 해보라고 하면, 더 자세히 쓰라면 하루종일도 할 수 있다.

인생은 평지가 아니라 산들의 연속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산은 더 무거워지는 듯하다.

無고기로 84일이라는 시간이 노인에게는 높은 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어부 인생 최고의 대어를 만났고 전력을 다해 그를 낚는다. 이제 산을 넘어갈 일만 남았는데 고기를 지키기 위해 내 목숨을 던져야 할 상어 떼를 만나다니.. 상어 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런... 젠장'이라고 말했다.

노련한 전투력으로 상어로부터 목숨을 구했건만 인생 최대어를 몽땅 뺏기고 만 것이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거야..

산을 넘었더니 상처뿐인 영광만 남았다. 인생은 산 너머 산이다.


# 성과 없는 장인 정신과 솜씨, 투지와 활동력, 난 저렇게 안 살 거야..

노인이 지금 시대 어업회사에 속했다면 그는 해고당할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느 날은 일하러 나가서 몇 날 며칠 돌아오지도 않고 타고 간 배는 거의 아작 내고, 상처 투성이로 돌아왔는데, 결국 또 결과물은 없다. 잘해 보겠다는 의지는 사내 탑 티어이고 퇴근도 안 하고 밤낮없이 일하며 일에 몰두하지만 열심히 하는 게 잘하는 건 아니다. 그저 회사의 자산을 축내고 시간을 허비하는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는 직원 취급 당하고 말 것이다..(너무 심한가..)

그래서 이 노인을 보는 젊은이들은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돈을 투자해서 큰 배를 사고, 기술 좋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최첨단 레이다망으로 고기가 있을 법한 곳만 찾아다녀야지 저렇게 무식하게 다니니 84일 동안이나 고기를 못 잡는 거지..

어리석고 바보 같은 한심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난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 인생이 쉽지 않아.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모든 수고에 반드시 성과가 있어야 하고, 산을 넘을 적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면 실패가 없는 게 맞느냐는 말이다.

노인이 커다란 생선의 뼈만 가지고 돌아온 것만 생각한다면 한심하고 닮고 싶지 않은 노인네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헤밍웨이는 이야기는 85일째 날 출항 전 잠깐과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잠깐을 제외하고는 바다 위에 홀로 전투 중인 노인의 독백으로 채워지고, 마치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처럼 그를 관찰하는 듯한 세밀한 묘사로 채워진다. 마치 내가 노인의 배에 같이 타고 있으면서 그가 펼치는 노련하고도 직설적인, 매우 극사실적인 행동들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앙상한 뼈만 남은 거대한 청새치에 대한 안타까움과 노인이 벌이는 사투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한 인간이 고작 오래된 작은 어선과 작살 몇 개로, 끝도 없이 넓기만 한 바다를 집 삼아 헤엄치는 600kg의 고기를 낚는다고? 상어와 싸운다고?

인생 여정이 마치 바다 위 노인의 고군분투와도 같은 듯하다.

노인은 청새치에 배 채로 끌려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노인은 사실 그다지 기분이 좋지가 못했다. 낚싯줄을 버티고 있는 등이 이젠 아픈 수준을 넘어 믿기 힘들 정도로 무감각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보다 더 힘든 일도 숱하게 겪지 않았나. 노인은 생각했다. 이쪽 손은 살짝 벤 정도고 다른 손의 쥐도 풀렸어. 두 다리도 이리 멀쩡해. 게다가 식량 문제라면 내가 저 물고기보다 유리하지 않나.."


헤밍웨이는 노인의 고독한 사투의 현장으로 독자를 데리고 가서 노인의 사투를 목격하게 하며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노인이 벌이는 사투를 봐. 인생이 이런 거야. 다 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고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만은 없어. 인생은 쉽지 않아. 이 넓은 바다 위에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 그래도 나는 해 볼 것 같아. 노인처럼.. 이왕 바다에 나왔는데 뭐라도 해야지. 나는 알 거 아냐..

그렇다고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다.

노인이 청새치의 반이라도 가져가보자 하며 상어 떼를 떼어냈던 것처럼, 내게 주어진 인생의 바다 위에서 내가 이제껏 배운 온갖 삶의 경험들을 동원하여 노력해 볼 것이다.

다만, 청새치보다도 더 거대한 바다의 질서가 있음을 알고 필요하다면 어느 순간에는 청새치를 끊어내는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저 청새치는 내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너른 망망대해에서 제 발로 나를 찾아온 녀석이 아니던가.


내 배 옆에 거대한 청새치의 살점은 없을지언정, 뼈라도 달린 채 집으로 돌아간다면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는 것도 나름 위로가 된다. 사실 큰 위로가 된다. 비록 이제껏 본 적 없는 고기를 가져오진 못했지만 내가 배 위에서 벌였던 사투를 짐작해서 알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노인과 바다>는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도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면,

중년 시절 <노인과 바다는>는 인생은 산 너머 산이고 열정과 도전 정신은 오래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산을 넘는 동안 내게 남겨진 상처와 군살들로 다가올 산을 의연히 맞이하는 것이 삶의 지혜인가..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그리고 결과물 만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는 걸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 노인을 향한 경이로움이 생겨난다.


오늘도 사람들은 자기 삶이라는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며 살아간다.

온갖 독백을 내뱉으며 마음을 다독여보고, 때론 유체이탈하여 나를 바라보는 독자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

바다 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