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G. 플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를 읽고
# 서론
누구나 흔하게 하는 말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에 관하여 쓴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책 [과학콘서트]에서 포유류의 뇌신경세포의 활동으로 인해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이일 수 있다는 케빈 베이컨 게임을 설명하며, 그러므로 우리는 어쩌면 위험할 정도로 작은 세상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 웃으면 따라 웃게 되는 현상은 뇌에 있는 웃음감지영역 때문이며 혼자 재미있는 티비 프로그램을 볼 때 보다 여럿이 함께 볼 때 30배나 더 많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유가 웃음의 사회학적 기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여성들의 웃음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의미하는 경향성이 높으므로 토크쇼 방청석을 여성만으로 채우는 것이 웃음 유발에 더 효과적이라는 남모르게 심오했던 이유도 밝혀준다.
아동심리학자인 마이클 톰슨은 책 [아이들의 숨겨진 삶(Unerstanding the Social Lives of Children)]에서 자신의 딸이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불안정한 우정과 방금 막 생겨난 새롭고 견실한 우정으로 구성된 삼총사의 성사와 갈등 그리고 종말까지 과정을 서술하며 일종의 뒷담화의 출발지점이 여기에서 비롯되곤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그 문제를 새로운 사람에게 상의함으로써 이야기를 재생산시키고 심각하게는 집단적 따돌림을 가져오는 잔인성을 지닌 파벌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 모든 말과 행동은 절대 단절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점들로 찍혀 마침내 선으로 이어진 다는 것에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인간이 가진 내면의 욕망이 입의 말로 드러나고, 말은 자신도 몰랐던 의식을 내재화시켜 나가고, 여기에 사회적 상호작용이 보증이 되어 준다면 확신을 가진 행동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옳은가 그른가를 염두하기보다는 나에 대한 공격인가 아닌가를 먼저 따지고 보는 비이성적인 경향성을 띠는 경우가 많은 것 아닌가 싶다. 특히 상대에 대한 존중과 경청이 완벽하게 결여된 상태로 퇴화되어 가는 중인 이 시대에는 더더욱 말이다.
# 본론 - 책의 내용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자 저명한 도덕철학자인 해리 G, 프랭크퍼트의 책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IT)>도 매일 듣는 사람들의 소리 중에서 거짓말과 개소리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 초반부에 '개소리에 관한 이론, 개소리의 본질적 특징, 개소리의 본성 규명, 개소리가 수행하는 기능'이라는 말을 하며 우리 문화와 사회에 개소리가 너무나 만연하기 때문에 이 개소리를 진지한 검토 대상, 탐구 주제로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익살스럽고 신선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개소리와 가장 유사한 말로 협잡(Humbug)을 들며 협잡이 훨씬 정중하고 덜 강렬하다는 차이 정도만 있고 개소리와 큰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개소리'의 사전적 의미, 유산단어의 의미, 자신의 경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까지 언급하며 개소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리를 해 낸다.
"개소리는 일종의 허세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거짓말하기와 허세 부기리는 둘 다 부정확한 전달 또는 기만의 양상이다. (중략) 본질적으로 거짓말쟁이는 참이 아닌 것을 계획적으로 퍼뜨리는 사람이다. 빤한 거짓말과는 달리, 허세 부리기는 좀 더 특수하게는 거짓이 아니라 속임수의 문제다... 개소리의 본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짜라는 데 있다. 개소리는 진리에 대한 관심 없이 만들어진다. (중략) 거짓말쟁이는 스스로 허위라고 간주하는 어떤 사실을 사람들이 믿기를 바라고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진리가 중심 관심사가 아니다.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으며 자신이 하는 말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독자들에게 연습문제를 남겨 둔다.
"거짓말은 종종 모욕감이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반면, 개소리에 대해서는 불쾌하거나 거슬린다는 표시로 어깨를 으쓱하며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개소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왜 일반적으로 거짓말을 대할 때 보다 관대한지를 이해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 결론 - 책을 읽고 나서
'뭔 개소리야'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개소리'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만 알 뿐 내가 개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경우인지는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침팬지가 아닌 인간류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생각을 펼쳐서 들여다보며 일정 잣대를 두고 어떤 사상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들 속에 투영되어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탐구하여 말의 무게감뿐 아니라 내뱉는 말에도 이론이 있을 수 있다는 심오한 앎을 던져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뭔 개소리야"라는 말을 내뱉을 때 잠시 생각하게 되더라.
그러고 나니 어렴풋이 내가 생각하는 '개소리'의 의미를 대략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최근에 '뭔 개소리야'라는 말을 했던 뉴스는 이거였다.
"중국사람들 무비자로 한국에 들어와서 성인 아이들 상관없이 납치해서 장기매매를 한다고 하니 대한민국은 지금 큰일 났어요. 한국이 너무 위험해요. 중국의 무자비를 막아야 해요.."
(브런치 내 글에 정치적 이슈나 민감한 사회 갈등을 담고 싶지 않았지만, 재미있게 읽은 이 책 <개소리에 대하여>를 읽고 난 독후감을 쓰고 내게 적용하자니 맨 처음 떠오른 실상 예시가 이것이어서 어쩔 수가 없다.)
누구나 고유의 정치적 성향을 말할 수 있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런 황당한 소리를 들으면 자동으로 이런 말이 나온다.."뭔 개소리야.."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가가 일상과 말을 좌우한다. 쏟아지는 말들 중에 개소리를 구분하여 선동당하지 않는 건 나에 대한,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내 책임이 아닐까?
잘 구별하면서 살아야겠다. 그리고 나 역시 개소리를 하는 자로 취급받지 않도록 잘 분별하고 성찰하며 살아야 하겠다.
모든 일상을 경계하며 살 순 없으니 이제껏 내 삶의 경험과 가치관을 바탕 삼은 나의 양심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신호를 늘 던져주길 바랄 뿐이다. 그럴 때 나는 이를 지나치지 않고 내 속을 들여다보며 내 가치관을 보다 분명히 하거나 필요하다면 수정해서 더욱 튼튼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야겠다 싶다.
철학책이 이렇게 신박하고 재미있게 읽힐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