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카톡으로 하는 게 아니여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문>을 읽고

by 김태경

1444년, 세종이 기습적으로 공표한 훈민정음에 대 최만리를 필두로 한 대신들의 반발은 거셌다. 그들은 우리 고유 문자 사용이 불가한 이유 4가지를 조목조목 작성하여 왕에게 상소문을 올렸고, 이 상소문은 당시 유학자들이 사대(事大)와 권위(權威)를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증표로 실록에 남아있다. 하늘 같은 임금의 명을 반박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나, 임금이 어릴 적부터 신하들과 정기적으로 논쟁하던 경연(經筵) 제도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사형수로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중략)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머니의 짧고 단호한 이 편지는 안중근의 의거가 한낱 개인의 치기 어린 짓이 아님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준다. 어디 그뿐인가. 편지를 쓰며 멈추지 않았을 어미의 눈물과 자신의 죽음으로 고통에 남겨질 가족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아들의 비통함은 역사에 남아 길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기록은, 정확히는 편지는 서사(narrative)를 담고 있다.

학창 시절 절친과 썼던 교환일기는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았던 우정 서사의 매개체이고, 고작 삐삐밖에 없었던 시절 교회 오빠와 주고받던 손 편지는 내 철없던, 순수하고 풋풋했던 청춘 낭만을 드러내는 스토리의 상징물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편지만으로 모든 관계가 완전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간 말로는 못했던 중요한 마음을 전할 때 그 마음을 둘러싼 맥락과 상황, 마음의 진의를 묘사하기엔 더없이 좋은 매개체가 편지이긴 하나, 편지가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편지 내용이 먹힐만한 관계성에 있어 발신자와 수신자 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상호 교감과 편지의 항간에 대한 상호 경청이 없는 편지 서신은 일방적 스토킹과 다름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군인아저씨에게 보냈던 편지를 정말 편지라고 할 수 있을까..


프랑스 소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La Porte Étroite)>의 주인공 제롬과 알리사는 주구장창 편지를 주고받는다. 제롬은 어린 시절부터 2살 연상의 사촌누나인 알리사를 사랑해 왔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사랑 고백과 청혼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알리사는 아무도 모를, 자신만 아는 이유로 제롬의 고백과 청혼을 밀쳐내 버리고 만다. 나중에야 제롬에게 전해진 알리사의 일기를 통해 알리사가 왜 그토록 제롬을 밀어냈는지 짐작할 뿐이다.

알리사는 제롬보다 자신이 나이가 많은 것에, 동생 줄리에트가 제롬을 좋아하고 있다는 이유로 제롬을 거절하지만 사실 알리사는 사랑을, 쾌락을 주는 달콤한 유혹으로 인식하는 지나치게 청교도적인 규율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쾌락을 멀리하는 것 즉, 오직 덕성의 힘으로 이 감정을 단념하는 것이 완전한 신앙인이 되는 길이자 완전한 희생이라는 믿음에 자신의 감정을 맞추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알리사가 제롬에게 보낸 편지에는 온통 주변 이야기들 뿐이고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녀를 원하는 제롬의 입장에서는 이해불가한 내용들이 많다.


"제롬, 네가 르아브르에 체류하는 시간과 우리의 첫 재회의 시간을 너무 오래 끌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우리가 이미 편지로 주고받은 것 외에 또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그러니 학교 등록 때문에 28일에 파리로 가야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 이틀밖에 함께 있지 못한다고 해서 섭섭하게 여기지도 말고, 우리 앞에 한평생이 남아 있잖아?" (알리사의 편지 중)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냔 말이다.

제롬이 내 아들 같았으면, 알리사와의 편지를 때려치우라고 했을 것이다. 또 만약 알리사의 엄마였다면 왜 네 속을 보이지 않고 그렇게 꾹꾹 눌러 담고만 있느냐. 제롬의 고백을 받아줄 요량이 아니면 편지조차 그만하거라라고 따끔하게 혼쭐을 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청춘 남녀의 이루어지지 못한 연애소설이기도 하지만, 금욕이라는 지나친 자기희생으로 순수한 사랑을 놓쳐 버린 불쌍하고 어리석은 소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롬이 화자가 된 소설에서 알리사의 냉대와 우정, 사랑이 한꺼번에 담긴 편지들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한 작가의 섬세함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답게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40대 중반이 되어 최대한 문학적 관점으로 이 소설을 읽으려 해도 개인적으로는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요한 이야기는 제발 만나서 하란 말이다.

상대를 대면하여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하지를 말아라.

그러나 꼭 해야겠다 싶으면 할 말을 정리해서 글로 쓰고 말하는 연습을 해라.

마음이 편지로 전해질 것 같지만, 상대를 정말로 생각한다면 얼마큼의 편지를 주고 받든 결말은 만나서 짓도록 하자.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나는 연습하고 말하는 편이다)


결정적으로 연애 소설이나 영화에서 쪽지나 편지로 사랑 고백한 장면을 보고 뜬금없이 고백 해선 안된다.

또 카톡, 문자, DM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나 이별을 통보하는 것은 이 세상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용기는 안중근 의사처럼 자기희생을 해야 할 때, 사랑을 고백하고 끝낼 때 발휘되는 것이어야 한다.

안중근이 어머니의 편지를 뜬금없이 여겼겠는가.

모친의 삶이 편지에 담겨 있었기에 아들도 의연한 희생과 죽음을 감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대신들이 반대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훈민정음을 비밀리에 창제했을 것이다. 단지 상소문을 통해 대신들의 한계를 확인했을 것이고 동시에 훈민정음 반포계획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문>에서 알리사의 잘못은 자신의 진정 원하는 바를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제롬에게 자신의 상태를 유추할 만한 그 어떤 맥락도 항간도 주지 않은 그녀의 편지는 참으로 매정하고 불친절하다.

가엾은 알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