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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Aug 30. 2024

산골에서 에어컨으로 여름나기

  하늘을 놀이터 삼아 구름들은 분주하게 오고가기만 할뿐 좀처럼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연일 비 소식을 띄우고 있다. 하늘은 우리들의 간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구름 속에 묻혀있는 여름날의 뜨거움은 굽굽함으로 최고의 체감온도를 연일 갱신하고 있다. 산골의 산뜻한 밤기운도 까마득한 옛 기억의 한 페이지일 뿐, 한낮의 뜨거움 속으로 갇혀 버린 지 오래다.      

  3년 전, 우리의 산골생활은 한여름 햇살이 가장 뜨거울 때 시작 되었다. 빨리 집을 가꾸고 싶은 욕심하나로 한여름 햇살을 등지고 정신없이 몸을 놀린 결과 그해 겨울에는 온 몸의 진이 다 빠져나간 듯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산골생활 3년이 지난 지금은 일도 놀이처럼 하고 있다. 세속에서 해왔던 일에 대한 강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생활에서의 요령도 많이 생겼다. 화단이랑 텃밭도 처음보다는 일이 많이 수월해졌다. 어쩌면 내 스스로가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편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도시에서 살던 ‘빨리빨리’의 습성이 남아 마음에 몸이 휘둘려왔다면 이제는 자연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일상이 흘러간다. 

  뜨거운 여름날에는 아침 일찍 해가 뜨기 전에 마당으로 나서서 잠시 바깥일을 한다. 그리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 집안에서 더위를 피하며 나름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선풍기 바람으로도 더위를 견디기 힘들 때는 곧장 집 앞 계곡으로 달려가 발을 담그고 잠시 흐르는 물에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미처 오전에 다하지 못한 일을 갈무리한다. 굳이 마음을 먼저 내어 일을 만들 것이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이 평화롭다. 


  여름 휴가철만 되면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손님들의 방문이 잦다. 한 번 와본 지인들은 한 눈에 반한 풍광을 잊지 못해 해마다 먼 길을 달려온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대접하기에 바쁘지만 함께하는 시간 또한 즐겁다. 그런데 올 여름은 유난히 덥기도 하지만 집에 에어컨이 없다보니 손님이 온다는 사실에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은 더운 여름날에도 자연과 함께 잘 지내왔다. 그러나 올해같이 이렇게 무더운 날 에어컨 없이 손님을 맞는 다는 것에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차일피일 계속 미루기만 했다. 자연 속에 살면서 자연과 역행한 삶을 산다는 것이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무더운 여름날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가 넘어가는 오후에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온몸을 타고 내린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더위를 견뎌 내는 것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손님들이 온다는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니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 문득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마음이 움직일 때 바로 전화로 에어컨을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이 밀려 설치할려면 일주일이 걸린단다. 요즘 같은 때 그것도 다행이다 싶었다. 예정대로 일주일 만에 기사들이 왔고 설치하는 도중에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아 애를 태웠다. 우여곡절 끝에 어둑어둑 어둠이 깔릴 쯤에 설치가 마무리 되고 에어컨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던 한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에어컨을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이제는 한여름 더위쯤이야 끄덕 없어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오랜만에 쐬어보는 에어컨 바람이 낯설었다. 그동안 자연바람에 익숙해진 때문일까? 그것도 잠시, 금새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마음이 빼앗겨 버렸다. 더운 날, 자연에서 더위를 식히고자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도 역시나 에어컨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집 앞 계곡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는데...     

  어느새 가을 풀벌레소리가 아스라이 저 산 너머에서 들려온다. 가을이 오고 있음에도 한낮의 더위로 에어컨은 무심히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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