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맛: 부사의 마법 8
우리는 종종 말을 하면서, 명확하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런 말들이 있다. 무책임한 듯하지만 교묘하게 진심을 전하는 부사들이다.
이 다섯 단어는 말끝에 살짝 끼워 넣기만 해도 의미가 흐려지면서 동시에 강해진다.
듣는 이는 “그래도 당신 말이 맞았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쩐지 그날 이상하더라."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지."
이 말은 이미 징후를 느꼈지만 말하지 않았던 사람, 또는 말했지만 그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의 언어이다.
‘어쩐지’는 사후 확신형 부사이다. 지금의 결과를 거꾸로 돌아보며 “사실 그때부터 그랬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도 얄밉게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어."
"은근히 신경 쓰이더라."
이것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은근히’는 감정의 농도를 낮춰 부담 없이 꺼내는 기술이다. 그래서 부드럽지만 진심은 더 강하게 남는다.
말하는 사람은 약간 빠져 있고, 듣는 사람만 혼자 설레게 되는 마법이다.
"괜히 그 말 했어."
"괜히 혼자 울컥했네."
이것은 실제로 말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움직였다는 고백이다.
‘괜히’는 감정이 앞섰음을 말할 때, 자신을 탓하면서도 동시에 이해를 요구하는 단어이다.
누군가 ‘괜히’를 썼다면, 그는 지금 살짝 후회하고 있고, 조금은 위로받고 싶어 하는 상태이다.
"대충 그려봤어."
"대충 이해는 했어."
이 말의 진짜 뜻은 완벽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감은 잡았다는 것이다.
‘대충’에는 자신감과 겸손이 동시에 들어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틀리지도 않다는 확신이다.
그림을 대충 그린다는 것은 사실 머릿속에 완성본이 있다는 뜻이다. 대충이 안 되는 사람은 ‘대충’도 못한다.
"얼핏 본 것 같아."
"얼핏 들었는데 말이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이미지나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는 뜻이다.
‘얼핏’은 불확실한 정보에 살짝 기대면서, 자신의 감각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부사이다.
그래서 이 말을 꺼낸 사람은 대체로 진실을 말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 다섯 단어는 말의 여백을 만드는 부사들이다.
‘어쩐지’는 사건의 퍼즐을 맞추는 말이고, ‘은근히’는 감정을 낮춰 담는 기술이며, ‘괜히’는 감정 앞에서의 변명이고, ‘대충’은 감각의 효율을 믿는 태도이며, ‘얼핏’은 기억의 테두리를 살짝 비추는 조명이다.
그들은 말을 흐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정확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어쩐지 그날 너 표정이 이상했어.”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는 말은, 아주 많이 기대했다는 말이다.”
“괜히 한숨이 나오더라. 너도 그렇지?”
“대충 감만 잡아도 되는 일이 있고, 정확히 해야만 되는 일이 있다.”
“얼핏 보인 것 같아. 그런데 왜 이렇게 선명하지?”
이런 부사들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은 말을 ‘사는 것처럼’ 하는 사람이다.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은,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다음 9편은 “시간을 요리하는 부사들”이다. ‘슬슬’, ‘곧’, ‘막’, ‘이미’, ‘이제야’ 같은 ‘시점의 감각’을 말맛으로 풀어내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