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것이 지나간다
그가 쓰러진 들판은 저녁별이 내려앉는 곳이었다.
발끝부터 스며드는 어둠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숨을 붙잡으려 애쓰는 모습은
마치 아이가 물 위에 손글씨를 쓰는 것처럼 허망했다.
그때 죽음이 왔다.
긴 옷자락에 별들을 수놓은 그가
한 줌의 모래를 들고 다가앉더니
"이것이 네가 흘린 시간의 무게다" 하며
그의 가슴 위에 살포시 놓았다.
"내 시간은 벌써 바람에 날렸는데"
그가 속삭이자 죽음은 창문을 열었다.
창밖에는 어둠이 아니라
온갖 빛으로 물든 새벽이 서있었다.
"저기, 네가 잃어버렸다고 우는 것들이다."
그가 고개를 돌리니
한때 그의 품에서 사라진 것들이
모두 이름 없는 꽃으로 피어났다.
사랑도, 슬픔도, 분노도
뿌리 내릴 흙을 찾지 못해 떠돌던 것들이
이제는 신의 뜰에서 서로 잎을 스쳤다.
죽음이 그의 눈을 감기려 할 때
마지막으로 땀방울이 튀었다.
"이건… 아직 내 것인가?"
"아니, 이제 저 장미덤불의 이슬이다."
마지막 숨이 하늘로 흩어지는 순간
신이 내민 손바닥 위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한 송이 피고 지는 꽃이었음을 알았다.
그 모든 뿌리와 잎과 향기가
다시 별빛이 되어 내리는 것을 보면서.
/나일주
스물 가까운 느림의 노래를 여기서 멈추려 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의 무게가 아니라, 그것을 견디며 피어난 꽃의 향기일 것입니다.
서툰 시들을 읽고 격려해 주시고 애송하여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