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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Dec 12. 2023

어릴 때 나처럼

2019. 04. 22.

내가 어릴 때 초등학교 때쯤. 우리 아버지가 담배피시던 시절. 매일 아침 우리 아버지는 엄마에게 천 원을 받아가셨다. 그 당시 담배가 500원 하던 시절인가 천 원 하던 시절인가. 여하튼 우리 아버지는 매일 담배값으로 천 원을 받아가셨는데 아버지 생신인지 그냥 인지 문득 그 천 원마저 소중하게 받아가시는 아버지 모습에 가슴이 짠해진 어린 시절 윤희는.


편지봉투에 내 용돈 천 원을 넣고 몇 글자 끄적여서 (아마 생신이었는가 보다) 아버지 대우조선 작업복 안 주머니에 쏙 넣어두었다. 그때 그 봉투를 받으신 우리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제 서영이가 준 편지를 보고 그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한창 어린이날을 기다리던 서영이는 아마도 나에게 선빵을 날리는 건가 싶지만. 어쩜 어릴 때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가 싶어서 기특하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자기들도 용돈을 달라 해서 이불정리, 스스로 씻기, 학습시간 등 잘 지킬 때 주말 정산으로 용돈을 천 원씩 준다. 그걸 모아서 엄마 아빠에게 준 것이라 정말 귀한 돈이다. 민서는 언니라고 2천 원씩 넣어줘서 용돈이 하룻밤에 3천 원이 생겼다.


고맙다고 잘 쓰겠다고 서랍장에 잘 넣어두고 왔다.


요즘 휴직이 휴직이 아닌 거 같다는 민찬아비는 벽지학교 1, 3, 5학년을 동시수업 하는 기분이란다. 점심엔 조리종사원, 밥 먹고 나면 돌봄 전담사가 되는 거 같단다. 아이들 셋 온라인 개학에 맞춰 학습시킨다고 정신이 없단다. 새벽에 일어나 밥하고 반찬하고 과일 씻어놓고 나와도 집 나와 있으면 어찌 제대로 챙겨나 먹는지 걱정인데 그나마 민찬아비가 휴직 중이라 맘 놓고 나와서 일하고 있다. 둘 다 일하고 있었으면 정신없이 어찌 살았을까 싶다. 비록 엄마가 챙겨주는 거만큼 100프로 완벽하진 못 하겠지만. 항상 고마운 마음에 오늘도 잔소리는 넣어두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간다.


간혹 온라인 개학인데 선생님은 뭐해요?라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선생님도 무지 바빠서 돌아서면 4시 30분 퇴근이라는 현실이 참. 아이들은 없는데 일은 더 많고 시간은 더 빨리 가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얼른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수업이 행복한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 엄마들도 힘들고 학교도 힘든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덧붙임, 서영이가 준 편지를 보고 민찬아비는 '줌' 보기도 싫다는 한 마디를.


매일 아이들 화상 수업 줌(ZOOM)에 넌더리가 난 민찬아비의 하소연.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다행히 남편이 이식수술을 받고 집에서 휴직 중이었다. 매일 아이들을 집에 두고 출근하려니 마음이 쓰였었는데 그래도 남편이 때마침 집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생전 처음 하는 원격수업에 이방, 저 방에서 컴퓨터를 돌리며 아이들은 수업에 참석하고 있었고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던 민찬아비는 내가 할 역할을 혼자 다 하고 있었다. 아침에 밥 챙겨놓고 출근하면 퇴근시간까지 아이들 수업, 숙제를 도맡았던 아빠는 한동안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줌'이라는 글자만 봐도 넌더리가 난다 했다. 


그 역병의 고난 속에서도 아이들은 예쁘게 자랐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행동하는 타고난 마음씨는 아마도 엄마를 닮아서겠지. 자식의 좋은 점은 다 나를 닮고 나쁜 것은 다 배우자를 닮았다는 우주 불변의 법칙을  증명하듯 정신없던 코로나 시기에도 아이들은 잘 자랐다. 가끔은 험한 세상에,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어질 이 세상에 아이들을 내어 놓은 것이 잘한 일인가 고민될 때도 있다. 아이들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을 나만 누리고 갈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엄마가 되어서 보람된 시절. 다시 엄마가 되어도 아이들에게 받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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