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였다.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억지로 끄집어내고 싶은 친구도 떠오르지 않는 그런 오후. 저 멀리 상공에서 들려오는 여객기 소음만이 이따금씩 무거운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마치 자로 잰 듯 내 키와 일치하는 2인용 소파에 정수리와 뒤꿈치를 끼워 넣은 채 새하얀 천장과 대면하면서 이대로 있다간 정신병에 걸리던지 잠이 들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분연히 몸을 일으켰다.
5월의 어느 날답게 바깥세상은 눈부시고 무더웠다. 그리고 우리 집의 간유리 한 장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그래서 늘 못 미더웠던 창호가 ‘실상은 이렇게 훌륭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깥세상은 소란스럽고 분주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한가운데에는 제법 크고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었으므로.
홍콩의 많은 시장이 그러하듯 이곳 또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포스가 있다. 커다랗게 건물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글귀가 한자와 영문으로 건물 외관에 새겨져 있고, 현대식 건물 두 동이 브리지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브리지 아래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 널찍한 거리가, 그리고 그 사이를 공중 화장실과 정육점, 식당, 야채가게, 식료품점, 잡화점들이 나란히 양쪽으로 메우고 있었다. 시장이 있다 보니 동네는 언제나 활기찬 편이었다. 이른 아침에도 물건을 적재하고 나르는 상인들로 분주하고 대낮에는 물건을 소비하려는 인파들로 북적인다.
나른한 오후를 잃어버린 나는, 나만 따돌린 것 같은 그 활기가 실은 못마땅했던 나는, 응당 돌려받아야만 하는 채무라도 있는 사람처럼 전투적으로 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섣불리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하기 일쑤다. 매일 지나치는 공간인데도 주저하다가 더 이상 어색해지면 왠지 다시는 들어가 보지도 못할 것 같아서 태연한 척 애꿎은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거나 머리를 쓸어 올리며 숨 고르기를 해야만 했다. 스텝이 꼬이면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젠장, 이게 뭐라고 내가 이토록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까 두려워한단 말 인가. 그것은 마치 안 맞는 드레스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 오랜만에 클럽에 놀러 갔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과 흡사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나를 이토록 불편하고 긴장하게 만든 주범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초입부터 보이는 정육점이었다. 나에게 나도 모르는 공포증이 있었나? 일테면 피 나 살덩이 같은? 홍콩의 재래시장에서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나는 늘 외면하고 싶은 게 바로 정육점 풍경이었던 게다. 보다 신선하게 보이기 위해 켠 붉은 전등 아래는 부위별로 분해된 고기들이 갈고리에 끼워져 공중부양한 채 일렬로 걸려 있다. 대부분의 고기들이 냉장고 안에 들어있거나 이미 손질된 상태로 개별 포장되어 있는 우리네 방식과는 확실히 다른 진열 방식이었다. 희대의 살인마가 광기에 차서 인육을 전시한다면 바로 그와 같은 방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염병 사스가 창궐하기 전에는 정육점에서 살아있는 닭이 직접 거래되고 눈앞에서 신선하게(?) 닭의 목을 쳐주었다는 사실이다. 천만다행으로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잰걸음으로 정육점을 벗어나서 마켓 빌딩 안으로 뛰어들었다. 생선 비린내와 락스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자극했다. 빌딩 안은 냉방으로 이미 시원한 데다 지천으로 깔린 얼음덩이 때문인지 서늘하기까지 했다. 수산시장이었다. 늘어선 매대 위에는 이름 모를 생선들이 잘게 부서진 얼음을 요처럼 깔고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턱 밖으로 튀어나온 이빨이 사나워 보이거나 색이 화려한, 한눈에 봐도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이국적인 어종들이 이곳이 노량진 수산 시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수산시장이 있는 층은 꽤 흥미로웠다. 각종 생선들은 물론이고 신선한 패류, 난생처음 보는 커다란 갑오징어, 흡사 뒤집어진 바퀴벌레 같은 생김의 새우인지 가재인지 모를 갑각류, 철장 안에 갇혀 있는 살아있는 두꺼비 무더기와 붉은 귀 거북이나 자라는 오래전부터 축적된 살육의 흔적들과 공존해 있어 다시 한번 날 기겁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과 기원이 담긴 보양식 재료에 지나지 않겠지만, 나에겐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기껏 살덩이들을 피해 왔더니 이번에는 두꺼비와 자라가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쉴 틈 없이 머리통을 강타당한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동행자가 없었으므로 이 모든 것들을 혼자서 감당하며, 이따금씩 ‘헉’, ‘흡’, ‘하아’와 같은 신음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의연하게 시장을 다 둘러보았으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이유에 선지, 그것이 연이은 정신적 충격에 의한 필연적 행동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다시 원점에 있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 유입되고 유입된 물만큼 다시 물을 토해내고 있는 수조관 앞에 서서 수관을 부풀리며 자가 호흡하는 것으로 보이는 싱싱한 조개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가리비, 전복, 바지락, 맛살……익숙한 조개들을 보니 조금 편안해졌다. 종류별로 얕은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겨 있는 모습도 크게 낯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로테스크한 몇 가지만 빼면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주로 오일장이나 삼일장이었다가 식민지배 이후로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상설시장을 근래 들어 정부가 주도하여 현대화를 명목으로 재정비하는 양상마저 유사할지 모르겠다.
싱싱한 조개를 보니 입을 쩍쩍 벌린 조개가 수북한 바지락 칼국수 생각이 절실해졌다. 군침이 돌고 회가 동했다. 칼칼하게 끓인 칼국수에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줄 올려 먹을 수만 있다면 천하를 얻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정확한 종류는 알 수 없는 조개가 한 바가지에 60불인 모양이었다. 대충 모시조개같이 생겼고, 싱싱했으므로 시원한 국물을 뽑아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때문에 종류가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이미 나를 먹잇감 보 듯하던 주인은 알 수 없는 광둥어로 나에게 공을 들이고 있었고 내가 손가락으로 조개 바구니를 가리키자마자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그는 광속으로 바가지를 채 가더니 저울에 올렸다. 어차피 한 바가지를 살 예정이었는데 왜 저울에 올렸을까 의아했다. 묵직한 조개가 저울의 바늘을 거뜬히 내려놨고, 출렁거리던 저울침이 멈추기도 전에 주인 남자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한 바가지에 60불이 아닌 모양이었다. 곱하기 5를 해서 300불을 달라고 했다. 왜 곱하기 5인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광둥어를 하지 못하고, 그는 영어를 모른다. 계산기만 연신 들이밀었다. 조개 한 바가지에 5만 원이면 비싸다. 나는 단 한 번도 시장에서 만원 이상의 돈을 지불하며 조개를 사 본 경험이 없었다. 나는 ‘너무 비싸므로 사지 않겠다’고 얘기했고, 남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조개 한주먹을 더 올려주었다. 홈쇼핑 채널을 쳐다보며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별로네’라고 말하는데 쇼호스트는 끊임없이 마감임박을 외치며 사은품을 껴주는 형국이었다. 다만, 현실의 나에겐 꺼버리면 그만인 채널 선택권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막다른 골목과도 같았다. 이대로 돌아서기엔 뒤통수가 매우 찜찜할 것 같았고, 나는 기력이 없었으며, 마침 지갑 속엔 500불짜리 한 장이 들어있었다. 무기력과 평소와 다르게 넉넉한 지갑 사정 때문에 나는 별 수없이 300불을 지불하고 말았다. 받아 든 조개 봉지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칼국수가 아니라 조개구이라도 해 먹을 판이었다. 나는 주인 남자의 환대를 받으며 허탈하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우습게도 그 뒤로 나는 그 가게의 VIP가 되었다. 주인 남자는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도 나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겨우 한 모금 빨았을 담배를 비벼 끄고 나를 가게로 인도했다. 새로 들어온 전복을 보여주고 냉장고에서 갓 들어온 냉동 문어를 꺼내 보여주었다. 나를 구매력이 있는 잠재 고객쯤으로 생각했는지 가끔은 값비싼 랍스터나 가루파를 권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나 일 순위로 응대되었다. 그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미안한 기분이 들어 오징어라도 한 마리 살라치면 주인 남자는 새우 한 움큼을 덤으로 주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이사를 했다. 더 이상 정수리와 뒤꿈치가 딱 들어맞는 소파에 몸을 끼워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 조용한 주택가였고 자연스럽게 장은 주로 마트에서 보게 되었다. 슈퍼마켓에서 마일리지도 쌓고 가끔씩 괜찮은 사은품도 받아 챙기게 되었다. 자본의 힘은 이곳에서도 똑같이 유효했다. 주로 기저귀나 생필품, 간단한 식재료가 필요했으므로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여유가 생기자 다시 시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 홍콩의 재래시장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기농 야채가게가 생겨나고 특정한 농장의 야채만 취급하는 직거래 매장도 늘어나는 추세인 듯하다.
어느 날, 김치라도 담글 요량으로 유기농 야채가게에서 김치 거리를 휴대용 캐리어에 가득 담자 적잖이 당황하는 주인 여자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주인 여자는 쪽파를 한 움큼 얹어주며 “아 유 프롬 홍콩?”이라고 물었고, 나는 “노, 아임 코리안.”이라고 답해 주었다.
주인 여자는 “오, 코리안……”을 몇 번이나 되뇌며 한꺼번에 유달리 많은 야채를 사는 한국 여자의 정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오묘한 표정으로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얼굴에서 몇 해 동안 잊고 살아온 생선 가게 주인 남자가 오버랩되었다. 오랜만에 청양고추 썰어 넣은 칼칼하고 시원한 조개 된장찌개가 입맛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