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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Nov 21. 2022

누가 싼 똥인가

본격  화장실 미스터리 추적극

2교시가 끝나고 중간놀이 시간이었다. 우리 층을 청소해주시는 김여사님이 속상한 얼굴로 나를 찾아오셨다.


최근 남자 화장실에 누가 자꾸 똥을 싸고 물을 안 내린다는 것이었다. 특히 오늘 아침에는 화장실 변기들을 매끈하게 닦아놓자마자 똥을 벌려놓아 더욱 속상하다고 하셨다. 오늘로 벌써 6번째, 똥의 아담한 크기로 봐서는 저학년이 틀림없으니 학생들에게 지도 좀 해달라고 하셨다. 작년에도 이런 일이 있긴 했는데 여사님이 몇 주간 주시하다가 남자 화장실에서 잠, 물을 안 내리고 나오는 포착해서 학생에게 직접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번 똥의 크기와 생김새로 보건대, 지금은 6학년이 된 그 남학생 확실히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덧붙이는 한 말씀.


그런데 이상한게요. 똥을 닦은 화장지가 없어요. 변기 안에든 휴지통에든 똥을 쌌으면 닦은 종이가 있어야 하잖아요. 화장지가 없고 똥만 있어요. 매번 그래요.


옆에서 듣고 던 몇몇 남자 선생님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굴까?


이런 일은 전체적으로 애매모하게 지도하는 것보다 당사자를 콕 찍어 개인적으로 지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똥의 크기가 작다면 우리 1학년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매번 닦지도 않고 바로 바지를 올린다면 팔이 짧아 뒤 똥꼬까지 손이 닿지 않는 탓에 집에서 엄마가 대신 닦아주는 게 습관이 된 1학년일 것이다. 우리 반 총 5명 중, 남학생은 단 2명. A는 덩치가 크고 먹성이 좋아 급식도 3번은 기본으로 받아먹는 아이니 그렇게 작은 똥을 눌 리가 없다. 더구나 사건 발생 시은 1교시 수업 시작 이후인 8시 30분부터 9시 10분 사이. 오늘 A는 1교시 중국어 수업 도중에 학교에 도착했고 쉬는 시간에는 교실에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노는 모습을 내가 줄곧 지켜보았고 2교시 영어시간에는 쭉 교실에 앉아있었다. 등교한 이후로 화장실에 간 적 없는 A, 아웃. 그럼, B? 야무진 엄마가 꼼꼼하고 바르게 키운 의젓한 B가 그럴 리가 없다. 또 B는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을 2년간이나 다녔으니 B가 그랬다면 유치원 시절부터 진작에 김여사님의 '똥프로파일'에 올랐을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반은 아니다.


2교시 수업을 끝내고 마침 교무실로 들어온 2학년 아가씨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1교시에 2, 3학년 합반 중국어 수업을 하신 왕선생님을 함께 찾아가 오늘 수업 도중 화장실 간 학생이 있는지 물었다.   


오늘 수업 중에 화장실에 간 2학년은 없어요. 아, 3학년 C가 두 번이나 갔네요.


헉! 덩치가 작고 행동이 유난히 허술한 C. 1학년과 가위바위보를 해도 자신이 지면 꼭 다시 하자고 우기는 미심쩍은 형아다. 우리는 3학년 선생님을 찾아갔다. 깜짝 놀라며 하시는 말씀,


C가 중국어를 너무너무 싫어하거든요. 내 시간에는 절대 화장실 안 가는데, 중국어 시간이라 일부러 그랬나 봐요.


다시 김여사님께 자문을 구하니, 


C는 아니에요. C는 제가 (똥 모양을) 잘 알아요.



단서를 잃고 잠시 미궁에 빠진 추적.

소변기가 공개되어 있는 남자 화장실의 구조상, 누군가가 문을 밀고 좌변기 칸으로 들어갔다면 화장실에 있는 누구나가 그의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혹시 용의자나 목격자가 있나 하는 마음에 우리 반 아이들에무심한 듯 물었다.

"혹시 오늘 아침에 화장실 다녀온 사람 있나요?"

남학생들의 눈빛을 살핀다. 흔들리는 기색이라곤 없다.

"전 안 갔어요. 집에서 쉬 싸고 왔어요."

"나도 안 갔는데, 왜요?"  

"오늘 여사님이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시는데 글쎄, 어떤 사람이 똥을 누고 물을 안 내려서 남자 화장실에서 똥 냄새가 엄청 많이 났대요."

"지금 여사님이 이 똥의 주인을 찾고 있어요. 물을 안 내린 게 벌써 여섯 번째거든요."

여사님의 구두 증언(작고 동그랗고 거무스름)을 토대로, 칠판에 최대한 사실적으로 똥의 몽타주를 그린다.  참에 편식 지도도 한다.

"야채를 싫어하고 고기와 과자만 좋아하는 사람인지 똥이 검고 엄청 딱딱하대요."

A가 튀어나와 자신의 결백을 과도하게 증명한다.

"전 아니에요. 제 똥은 이렇-게 생겼거든요."

앗, 급하게 손에 집은 게 하필이면 빨간색 마커펜이다. 칠판에 자신의 얼굴만 한 빨간 고구마를 그려놓았다. 이 아이 혹시 치질이 있는 건 아닐까, 과연 크기도 하구나! 이에 질세라 B도 말라깽이 바나나 2개 그리며 자신의 똥은 노랑색이니 절대 자신일 리가 없다고 했다. 여학생 D도 얼른 나와 자신의 콩알 똥 3개를 그렸다. "야, 그건 햄스터 똥이잖아!" 다른 아이들이 너무 작다며 핀잔을 준다. 이쯤에서 '남자' 화장실에서 일어난 일임을 다시 강조다. 이어 선생님 똥도 그려준다. 푹 퍼진 설사 똥이다. 아이들이 '으!' 하며 인상을 찡그린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이 설사 똥이 변기 안에 있으면 다른 사람 기분이 어떨까?"

"깜짝 놀라요."

"너무 드러워요."

"바로 토 나와요."

"맞아요. 자기가 눈 똥은 자기도 더럽고 냄새나는데 남이 보면 어떻겠어요? 우리, 소변, 대변보고 나면 꼭 물 내리는 거 잊지 말아요."


그렇게 사건을 미종결로 묻어 둔 채, 찜찜한 1주일이 지났다. 혹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났는지 김여사님께 조심스레 여쭈어보니, 활짝 웃으시며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지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2학년 선생님의 지나가는 말씀.

누가 남자 화장실에 똥을 누고 물을 안 내린다고 했더니 남학생 E의 눈빛이 흔들리더란다. 다들 나서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큰 소리로 외치는데, 평소 그 반에서 휑설수설 가장 말이 많던 E만 웬일인지 아무  없더란다. 선생님이 괜찮다는 듯 E의 어깨를 다독이며 부드럽게 한마디 하셨단다. "똥 싸고 나면 물을 꼭 내려주세요."


그렇게 '케이스 클로즈드'.



*이미지 출처

-베르너 홀츠바르트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사계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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