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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공 Apr 19. 2024

교보문고에는 혼자 가는 것이 좋다

서점과 책에 대한 가벼운 생각

 세상에서 집이 제일 편하고, 그저 집이 좋은 집순이도 가끔 외출하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이 좋으면 '오늘은 점심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보통 그 생각은 점심을 먹고 나면 희미해지고 3시쯤 되면 완전히 소멸한다.


 오늘은 외출에 대한 의지가 소멸하지 않은 귀한 날이다. 일명 < 홀로 외출의 날 >.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외출이라기보다 약속이란 말 더 적합한 것 같다.


 계획은 빠르게 세워졌다. 선물 받은 교보문고 상품권을 쓰기 위해 교보문고를 갔다가, 근처 카페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고, 동네로 돌아와 코인노래방으로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교보문고 평대에 갖가지 신간과 베스트셀러들이 진열되어 있다. 얼마 전 재밌게 읽었던 신간 소설책이 이제는 평대가 아닌 서가 끝쪽에 꽂혀 있는 것에서 세월을 체감한다. 도대체 어디서 이 많은 책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걸까?


 스무 살 초반까지도 책과 연이 없던 나는 20대 중반에 북카페에 취업하게 되며 책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사실 기꺼운 마음으로 친해졌다기보다는 직장에서 제 역할을 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말이 더 맞다. 그전까지는 책 표지를 보고도 이 책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잘 구분하지 못했을 정도이니까.


 책을 다루는 일을 하며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상상 이상의 많은 신간들이 매일 출간된다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매장은 약 3만 권 정도의 책을 보유 나름 규모 있는 서가였지만 공간의 제약 때문에 매주 10~20 종류의 신간만 새로 입고했다. 컨셉이 있는 독립 서점이 아닌 이상, 판매가 많이 될 만한 인기가 있는 작가의 책인지 또는 네임드 출판사의 책인지와 같은 것들이 책을 고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서점에도 진열되지 않는 무명작가들의 책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안 됐다. 이런 경쟁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멜론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보다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곳에서 종일 일하다 보면, 책의 내용보다 표지 디자인은 어떤지, 추천사는 누가 써줬는지,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인지 같은 것들을 훨씬 많이 보게 된다. 신기하게도 책 표지만 들여다봤을 뿐인데 그 책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왠지 잘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서가에 정갈하게 꽂혀있는 책 등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한다.


 내가 서점에 가는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다. 편의점처럼 사려던 물건 하나 달랑 집어 나오는 게 아니라, 수많은 책을 찬찬히 구경하며 눈에 담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서점에 가는 편이 낫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끌리는 책이 있으면 잠시 멈춰 서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된다.


 오늘은 한 시간 정도 서점을 둘러보다가 책을 한 권 골라 사들고 나왔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면 10% 할인이 되는 데다가 집 앞으로 배송까지 해주는 요즘 시대에도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단순히 책을 구매하는 행위 외에 서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은 느낌을 함께 산다는 의미가 있다. 종이 책의 수요가 점점 줄고 있고, 나 조차도 이북으로 더 많은 책을 읽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아직 오프라인 서점에 많은 발걸음이 모이고 있음에 안심이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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