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괴식일기
잘 끓어오르는 뚝배기 안의 된장찌개. 고추장 없이 오롯이 집 된장으로만, 다른 살코기 없이 달래 혹은 해산물을 넣고 채소와 두부로 오래 끓인 것을 난 좋아했는데, 아빠의 입맛과 퍽 달라 종종 엄마를 고민하게 했다.
딸과 남편 사이에서 엄마는 대부분 딸을 고집했고 찌개를 퍼 올리며 불평하는 아빠에게 간결한 말로 입을 다물게 했다. “네 딸이 좋아해.”
다른 찌개들보다도 나는 특히 된장찌개를 좋아했다. 다른 특별할 것 없는 그 된장 맛이 오래 내 혀를 사로잡았고 덕분에 엄마는 주에 한번은 된장찌개를 끓였다. 그것은 아마 당시 아빠에게 소소한 불행이었을 테다. 모녀의 입맛이 비슷해 특히 상에 자주 오르는 날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딸 노릇을 해오니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다. 가족 간의 사랑에는 얼마간의 체념과 의무가 필요하다. 아빠가 입맛에 맞지 않는 된장찌개를 견뎌야 하듯이 엄마에게도 그러한 의무들이 있었는데 그날은 조금은 벗어난 날이었다. 다른 가족들이 일정이 있는 탓에 엄마와 나만이 집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양푼을 꺼내들었다.
된장찌개 안의 채소와 두부(속칭 건더기), 계란후라이, 참기름. 평소보다 욕심껏 밥숟가락을 떠 양푼 안으로 던지듯 넣고 엄마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숟가락 각개전투를 벌였다. 각자 구역에서 열심히 퍼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같은 지점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쯤 양푼을 비울 때쯤 엄마가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알려준 또 하나의 괴식.
문득 회사 앞 백반 집에서 떠오르는 것이다. 조미료맛이 전부인 끓어오르는 된장찌개를 밥숟가락과 함께 들어올리곤 저녁 메뉴를 정한다.
좋아, 오늘은 이거다.
조리법은 매우 간단하다.
1. 적당히 끓인 된장찌개를 준비한다.+여기서 오래 끓여 채소가 물렁하면 할수록 좋다.
2. 큰 면기에 밥을 덜고 된장찌개 건더기와 국물을 넣는다.
3. 밥 위에 날달걀(혹은 계란노른자)와 마가린(혹은 버터)를 넣는다. 버터 양은 숟가락 반숟갈 정도, 본인의 취향따라 달리 덜어넣는다.
4. 잘 섞어 먹는다.
엄마가 학생일 때 할머니가 자주 해온 그 괴식은 괴식이라 부르기엔 얼마간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당시에 엄마는 학교까지 가던 버스도 전철도 없어 새벽 같이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어스름한 하늘을 보며 일어나 4남매의 도시락를 쌌다. 이따금 어린 이모의 투정을 달래느라 등교 시간에 맞춰 아침을 내주기에 시간이 촉박했고 딸아이가 빈속으로 새벽길을 나서는 건 볼 수 없을 테다. 그런 날에 할머니는 이 된장밥을 내주었다고 했다.
아픈 것이 있어도 혹 자식이 걱정할까 꾹 참다 응급실에 실려가셨던 할머니. 혹 전화 한 통이라도 했다가 바쁜 아이들에게 피해갈까 명절날만 손꼽아 기다리시던 할머니. 할머니와 전화 통화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요즘따라 나의 모습이 보인다. 응, 엄마. 미안해. 다음에 꼭 갈게.
본가에 간만에 들르다가도 다른 일정 탓에 결국 금방 집을 나온다. 원망스러운 마음을 누르고 네 할일 먼저 챙기라며 뭐라도 손에 쥐어주는 엄마의 모습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의 사랑이 고스란히 마주잡은 엄마의 손으로 전해진다.
감사해요, 할머니.
(사진출처: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