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논 (3)
아니, 상담 뒤에는 후자의 감정을 느낄 수조차 없었으니 상담 직후에는 둘 사이에서 선택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다시 갈림길을 마주하는 건 상담 이 주 뒤의 시점이었다. 제논의 저주파는 신경세포를 파괴할 만큼 강한 것이 아니었고, 신경세포의 배선을 살짝 건드려 신호의 흐름을 돌려놓는 방식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감정이 흐르는 파이프를 완전히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양동이에 잠깐 폭포처럼 떨어지는 두려움을 담아두는 식이었다. 이 주가 지나면 양동이는 가득 찼고, 두려움은 다시 흘렀다. 그때, 그러니까 다시 공포를 느끼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에 대한 묘사는 환자마다 달랐고, 하나같이 제논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숨이 턱 막힌다는 사람도, 공황장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사람도, 헤어나올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진다는 이들도 있었다. 언젠가 제논이 그 감정의 실체를 궁금해 했을 때, 시호는 이렇게 표현했다.
“ 너는 이해를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들어봐. 어두운 방이 있는데, 가구나 물건의 실루엣은 보이는데 딱 그 정도야. 답답하고, 안 보이니까 약간 무섭기도 하겠지? 그게 처음 오는 환자들이 느끼는 감정이야. 근데 우리가 상담을 하면 불을 켜주는 거야. 환하게 모든 게 보이는 방이 어두울 때 어땠는지는 기억도 안 나거든. ”
“ 그럼 이 주 뒤에 불이 다시 꺼지는 것이군요. ”
제논은 켜졌던 불이 다시 꺼지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감정과 무슨 상관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 그렇지. 근데 너 지금 잘 이해 못했지? ”
제논은 둥그런 얼굴을 느리게 끄덕였다.
“ 그래서 네가 이해 못할 거라고 한 거야. 사람은 켜졌던 불이 갑자기 꺼지면, 원래 느끼던 것보다 훨씬 어둡게 느끼거든. 어떤 실루엣조차도 안 보이는 칠흑같은 어둠. 원래는 어렴풋했던 공포가 이제는 사방을 가득 채운 거 같을 거야. 아마 그게 이 주 뒤에 환자들이 느끼는 감정이랑 가장 비슷할 걸. ”
시호가 며칠 뒤에 제논을 이해시킬 방법을 찾았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그의 시각 센서를 약간 손 봐줬을 때에야, 제논은 빛 뒤에 찾아오는 어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의 센서가 주변 환경에 따라 민감도를 조절했던 것과 달리, 새로운 센서는 인간의 눈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시호는 말했다.
그 눈으로 본 평소와 같은 어둠이 아니었다. 한때 가졌던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밝음과 대비되는 어두움. 환자들에게 이런 감정이 몰려든다면, 다시 찾아오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호가 환자를 나름 고르고 골라서 데려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시한부 환자가 원한다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시호가 먼저 환자가 지내는 곳을 방문한 뒤 상담을 받을 만하다고 판단해야 이곳에 데려왔다. 기준은 하나였다. 상담을 받을 정도로 죽음을 무서워하는가.
상담의 잔인한 점은, 한번 상담을 받고 이 주가 지나면 모두가 비슷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전에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가졌었는지와 상관 없이, 한번 물러갔다 찾아온 감정은 모두를 평등하게 이곳에 찾아와야만 하는 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시호는 이미 충분한 공포를 느끼는 듯한 이들에게만 상담을 제공했다. 그렇게 이곳에 처음 온 이들의 공포는 죽음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도, 유형도 다양했으나, 한번 상담을 받은 뒤에는 그마저도 비슷해졌다. 별다른 이유 없이 밀려오는 공포감. 그걸 피하는 방법은 다시 제논의 힘을 빌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제논은 금방 다시 시각 센서를 원래대로 복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서지윤도 그렇게 다른 모든 환자들처럼 다섯 번째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처음 왔을 때에는 이름 옆에 표시된 숫자가 육 개월이었는데,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든 숫자를 드러내듯 얼굴은 한결 더 말라 보였다. 달라진 점이 또 있다면 아주 드물게도 이곳에 일행을 데려 왔다는 점이었다. 벽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데다가,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이 뇌를 조작해서라도 두려움을 없애려 하는 것에 부끄럼을 느꼈는지 일행을 잘 데려오지 않았다. 가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보호자가 함께 오기도 했지만, 연인을 동반하는 경우는 제논의 기억 상 처음인 것 같았다.
자신을 ‘류’ 라고 소개한 그는 시호보다도 독특한 이름을 가졌지만, 외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외모 덕분에 어색하지는 않았다. 언제라도 불을 지를 것 같은 햇빛에 탄 것이지, 일부러 태닝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잘 어울리는 흰머리가 분위기를 더했다. 적어도 그는 생김새와는 다르게 친절한 태도를 유지했는데, 제논은 그것이 그의 연인이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류는 자신이 안쪽 방에도 함께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고, 시호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그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다. 정확히는 굳이 그와 싸우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한 것에 가까웠다. 상담은 상투적인 대화가 전부였고, 사방에서 나오는 저주파는 방 전체를 관통했으나 제논이 조준하는 그 지점, 서지윤의 머리가 있는 위치가 아니라면 어떤 효과도 없었다. 류는 서지윤의 상담이 궁금해서라는 이유를 댔으나, 제논은 십 여 분 내내 한번도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신기한 듯 방을 둘러싼 기구들에 관심이 팔려 있었고, 특히 자신을 쳐다보는 제논 쪽으로 자주 시선을 돌렸다. 다섯 번 쯤 눈이 마주쳤을 때, 시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 안 하고 뭐해? 상담 거의 끝났는데. ’
서지윤이 떠나면 시호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다. 제논은 저런 외국인 같은 남자 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숨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급히 저주파를 조준했고, 항상 그렇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시술은 끝난 뒤였다. 안부 인사나 벽 안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는 진즉에 끝내고 이야기거리가 슬슬 떨어져가던 시호는 제논이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자마자 어색하게 상담을 마무리했고, 이 주 뒤에 또 보자는 말을 덧붙였다.
제논은 서지윤과 류가 상담 비용을 결제하고 나가자마자 시호가 잔소리를 시작하려고 시동을 거는 것을 눈치 챘다. 제논은 급하게 화제를 돌릴 만한 이야기를 찾았고, 그 결과로 떠올린 건 그나마 가장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던 류의 방문이었다.
“ 저 남자, 뭐하는 사람일까요? ”
그러나 시호의 반응은 제논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그녀는 제논의 머리에 장난 섞인 주먹을 날리면서 말했다.
“ 뭐긴 뭐야, 그냥 남자친구지 뭐. 잘생겼던데. ”
"..."
“ 안 그래도 그 사람이 돈 원래보다 훨씬 많이 내고 갔어. 덕분에 서지윤이 남은 날을 잘 보낼 수 있다면서. ”
제논은 조금 멈칫했다. 그것은 좀 의외의 사실이었다. 시호는 상담 비용을 한번에 받지 않고 매번 받았는데, 어차피 돈을 안 내면 상담을 못 받으니 안 낼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사악한 사업가같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매번 나누어 내는 비용도 그렇게 저렴하지는 않았고, 특히 벽 안의 사람에게는 더 비싸게 받았다. 그 돈보다 많이라면 거의 시호와 제논의 일주일치 생활비는 될 텐데, 연인을 위해서 그 정도의 돈을 고민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제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시호가 다시 한번 머리를 쥐어박았다. 통증같은 건 없었지만 그녀의 주먹은 왠지 모르게 얄미웠다.
“ 그만큼 사랑하는 거겠지, 뭐. 왠지 부럽다. ”
오늘의 손님은 서지윤이 마지막이었다. 일주일 중 가장 상담이 적은 날이 월요일이었으니, 내일부터는 하루에 한 건보다는 많은 작업을 해야 할 것이었다. 시호는 피곤하다면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자고 말했다. 물론 제논은 밥을 먹을 수 없었으니, 저것은 저녁 식사를 차리라는 ( 그리고 설거지도 하라는 ) 소리였다. 이럴 때면 제논은 시호가 자신을 만든 것이 상담을 위한 것인지 그녀의 심부름을 시키기 위한 것인지 헷갈렸다. 솔직히 후자의 이유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냉장고 안에는 딱히 먹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제논은 함께 마트에 다녀올 것을 요청했다. 그런 건 씻기 전에 말하라는 볼멘소리를 하긴 했으나, 제논은 시호가 마트를 꽤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냉장고도 수시로 고장나곤 하는 벽 밖에서 신선한 음식은 벌레들의 만찬거리가 되기 쉬웠으니 마트에는 가공식품 말고는 구할 수가 없었지만, 시호가 매일같이 마트를 찾는 건 맛 좋은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마트는 시호가 마음 편히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마트 주인인 준, 그리고 마트 직원으로 처음 시호를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마트에 눌러 앉아 함께 생활하는 수민이었다.
준은 친구보다는 삼촌에 가까운 중년에, 깎은지 오래된 수염과 잘 어울리는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언제 찾아가도 그는 시호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처음 제논을 봤을 때부터 관심을 보였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논과도 친해졌다. 제논은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만큼 자신이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와 함께 있으면 시호가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곤 했다. 수민은 육 개월 쯤 전에 들어온 신입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골목의 맨 구석에 위치한 마트는 손님으로 붐비는 일이 절대 없는 데다가 일찍 문을 닫았으니 준은 아르바이트를 한 명만 고용했다. 덕분에 수민은 마트에 머물다시피 했고, 결국에는 이곳에서 생활까지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시호와 달리 준도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시호와 제논을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신기하다는 감탄을 연발하면서 제논의 몸을 마구 두들겼는데, 시호의 익숙한 주먹보다 훨씬 센 위력에 제논이 균형을 잃고 넘어질 정도였다.
오늘도 마트에 있어야 하는 손님은 없고, 준과 수민은 고장난 오락실 기계 몇 대를 가지고 시답잖은 내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시호는 자연스레 내기에 참전했고, 제논이 대충 먹을 거리를 골라 계산을 맡길 때쯤 당당하게 내기를 이겨 음료수를 얻어 마시고 있었다. 방부제가 가득 들어갔을 법한 사과 주스였지만 냉장고에 오래 있었던 덕에 시원해보였다. 분위기를 보니 셋은 오랫동안 떠들 작정인 듯했다. 급기야 준은 구석에 숨겨둔 조그마한 냉장고를 뒤져서 맥주 세 병을 꺼냈다.
“ 야, 이거 귀한 거야. 알지? ”
술을 구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었지만, 기분 좋을 때면 매일 꺼내는 맥주 정도에는 약간 과한 그의 생색을 둘은 유쾌하게 받아주었다. 술에 취하면 가장 말이 많아지는 건 준이었다. 그는 “ 나 때는 말이야 ” 를 습관처럼 내뱉었는데, 그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는 절반 정도가 과장 섞인 말이었지만 나름 재밌었다. 준의 말을 들으면서도 제논은 시호가 저렇게 취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술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취해도 시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 제논을 포함한 셋은 시호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어차피 수확이 없을 것이라는 걸 안 지 오래였기에 굳이 묻지 않았다.
오늘따라 양념을 많이 친 준의 모험담이 끝나자 시계는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중간에 다른 이야기도 많았지만 세 시간을 떠들었다니. 아플 입이 없는 제논도 못할 짓이었다. 이야기의 중간 무렵부터 제논의 어깨에 양발을 올리고 있던 수민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의자에 앉아 제논에게 발을 올리는 자세가 편하다는 걸 깨달았고, 제논도 체념하고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이 세 명과 함께 있을 때 또 좋은 점이 하나 있었는데, 제논에게 잡일을 잘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은 넷이서 뒷처리를 나누어 맡았고, 그러면 정리는 눈 깜짝할 새에 끝났다.
제논과 시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품을 연발하는 마트 사람들에게 내일도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밥을 먹으려는 시호의 원래 목적은 아까 마트에서 끊임없이 뭔가를 주워 먹느라 해결해버렸으니 마트에서 사온 음식들은 대충 냉장고에 쑤셔 넣어둘 예정이었다. 시호는 오자마자 씻는 것도 까먹은 채 잠들었고, 제논도 슬슬 충전이 필요할 정도의 배터리 상태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제논은 오랜만에 시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전원을 껐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니라 휴면 비슷한 상태였으나, 내일 아침 일어난 시호가 전원을 켜주기 전까지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