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었다.
아이가 어느덧 세 살이 되었다.
요즘 문득, 지난 3년 동안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자주 되묻게 된다.
출산 후 찾아온 호르몬의 변화,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산후 우울.
그 우울은 내게서 기쁨을 앗아가기보다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만들었다.
아이를 두고 발길을 돌릴 때면 눈물이 났고,
일을 계속해야 할지, 그만두는 게 맞는지,
그 고민조차 피로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 일을 사랑했지만,
엄마로서의 역할도 온전히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양쪽을 다 붙잡기엔
내 마음이 너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승진도 했다.
기뻐해야 마땅한 그날,
사람들로 붐비는 칸틴 한가운데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을 처음 느꼈다.
수백 명의 같은 유니폼, 같은 동선, 같은 표정들 속에
나는 조용히 멈춰 서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지?
혹시, 나 말고도 누군가는 언제든 이 자리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이 나의 기점이었다.
단지 산후 우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기쁘고 벅차야 할 육아의 시간은,
어딘가 갑갑하고, 억눌린 감정들로 가득했다.
무언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아직 시작도 안 해본 것 같은데
삶이 제동이 걸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는 무엇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일까?’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꽤 괴로웠다.
나는 아이디어만 많고, 실행력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이상하게도 "꼭 해야만 해"라는 생각이
내 안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만큼 무게도 컸고,
그 무게는 내 몸을 조금씩 병들게 했다.
승진 이후 쏟아진 새로운 업무,
엄마로서의 책임,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미래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압박.
몸은 점점 버거워졌고,
염증 수치는 올라가고,
없던 천식 증상이 시작되었으며
매일 밤 잠들기조차 어려웠다.
혈액암을 의심해 심장과 뇌 CT, 수많은 검사를 받았다.
서랍엔 약봉지가 가득 쌓였고,
몸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무기력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과 구토 증상,
홍콩 레이오버 중에는 결국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고통은 계속됐다.
GP, 응급실, 여러 검사를 전전했지만
이렇다 할 원인은 찾지 못했다.
그때 한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공황장애 같아요.”
그 순간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던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눌러왔던 불안, 고민, 갈등이
내 몸을 조용히, 그리고 깊게 병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피어나야만 했다.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니라,
더는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내가 나로서 다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물론 여전히 시행착오는 많고,
그 과정에서 나에게 실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은,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부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