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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Nov 24. 2022

정기휴일

캐디와 사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지 11년이 넘었다.

이름값 높은 아파트는 없지만 유독 이층 집들이 많다.

오래된 마을이라 네 토박이들이 일가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네이니 인구밀도는 제법 높은 편이다.

학교, 병원, 은행, 마트, 세탁소, 빨래방, 공원, 해안산책로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세월이 감칠맛을 더하는 노포 맛집들도 많다.

그와 더불어 빈 공터라 여겨지는 곳엔 어김없이  설치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갖가지 운동기구들이다.

행정적인 수혜인지 , 주민 자치활동의 산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마운 일이다.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바라는 기특한 마음들이 마을 곳곳에서 보여,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마을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내가 머무르는 공간이 더욱 포근하고 아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아니 주기적으로 예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간다.

그곳은 우리 집과 제법 거리가 있어서 차를 타고 가거나 숨을 헐떡이며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한다.

 미용실을 찾아다.

한 동네에 치킨집만큼 많은 게  미용실이라고 는데  나는 여전히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옛 곳을 찾는다.

20년이 넘는 인연이 닿아 있는 이른바 단골 미용실이다.


그 세월만큼 미용실  안에도 고스란히 세월의 흔적들이 배어 있다.

미용의자가 있는 곳은 유독 특정 위치의 바닥이 파여 있다.

손님들의 앉은키에 따라 의자를 오르고 내리며 미용실 원장님이 발로 디딘 탓에 힘을 준 발꿈치가 닿는 부분의 돌바닥이  잦은 마찰로  판화의 음각처럼 곡선의 입체를 만들었다.

세련된 인테리어도 아니고 최신형 미용 기계는 없어도 다방식 레자 소파엔 늘 손님들이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여성 원장님 혼자 운영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이 일을 자처한다.

원장님이 머리를 손질하고 있노라면 누군가는 싸리 빗자루로 잘려나간 바닥의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누군가는 미용실 입구 빨래 건조대에 바삭하게 잘 마른 수건들을 걷어다 개키고 있다.

원장님도 마다하지 않고, 도움을 주는 이들도 별다른 말없이 마치 각자의 일인 양 자연스럽다.

나 또한 그곳에 들어서면 귀에 꽂았던 블루투스 이어폰도 빼고  그들의 무리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든다.

항상 가방에 이어폰과 책을 넣고 다니기에 어디서든 기다리는 상황이 되면 그 틈을 이용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쓰지만 그곳에서 만큼은 모든 걸 중단하고 그곳에 동화된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운이 있다.

연중무휴, 미용실을 시작하는 시간도 마치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손님들의 사정에 맞춰서 탄력적으로 운영을 한다. 가격고시제에 따라 가격표가 게시되어 있으나 그건 그냥 검사용일 뿐...

고객별로 원장님이 정해 놓은 금액이 다 다른 듯했다.

머리손질을 다하고 요금을 지불할 때면 원장님은 마치 경매사처럼 손가락으로 금액을 표시한다.

거스름돈을 거슬러 줄 때도 다른 손님들이 보이지 않게 등을 돌려 손에 꼭 쥐어 준다.

뭔가 내밀하게 나를 대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다.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원장님의 고도의 경영전략일 수도 있지만 귀엽고 정겹다.


 늦 봄, 내리쬐는 햇볕이 좀 따갑기는 했지만 그날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미용실을 찾았다.

자전거길 마의 구간이 있다.

오르막 경사가 너무 심해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도 헥헥거리는 경사에다  그날은 햇볕에  달궈진 땅의 열기까지 더해져 얼굴이 붉게 부풀었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도착한 미용실 문이 잠겨 있었다.

그리고 문에 하얀 팻말도 걸려 있었다.

'정. 기. 휴. 일.'

이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휴일이라니, 그것도 임시휴일도 아닌 정기휴일이라니...

고생스럽게 찾아간 헛걸음의 원망이 금세 걱정으로 변했다.

'원장님에게 무슨 일이 있나?'

그녀는 아침에 미용실 나오는 것이 너무 좋고 설레어 눈을 뜨자마자 일터로 나온다고 하신 분이 정기적으로 쉼을 갖겠다는 공식적인 선포는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알록달록 용실 사인볼이 실바람에 돌려다 이내 멈춘다.

돌려야 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내가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결정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출퇴근 거리도 예전 직장보다 3배나 차이나서 출퇴근 시간도 많이 걸림에도 옮긴 이유.

일을 하는 것의 목적은 소득창출일 테니 좀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의 이직은 가장 큰 동기가 될 수 있지만 나는 그보다 이 회사가 정기적으로 휴장일을 정해놓았다는 것이 더 큰 매력이었다.

일 년 내내 휴무 없이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 달 개인적으로 휴무일을 신청해야 하고 그것도 경기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정말 긴요한 일이 있어야 맘먹고 쉬어야 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그와 상관없이 매주 지정된 요일에 쉴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해 주는 느낌이었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고, 또 그와 반대로 미리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

돈으로 살 수 없는 만족이며 행복이다.

휴장일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골프장이  과감히 수익을 포기하고 매주 휴장일을 정해  코스관리에 전념하겠다는 각오로 읽혀 회사의 품격을 스스로 올리는 매개가 되었다.

실제로 휴장일에는 골프 경기는 운영하지 않고 호텔과 리조트 운영만 하며 각 골프코스의 관리가 대대적으로 행해졌다.

캐디들은 그날을 이용해 그동안 축난 몸을 돌보며 병원 진료를 받거나 그동안 제쳐두었던  집안일을 하밀린 잠을 자며 체력과 정신을 보충한다.

tv에서 유명 배우가 자신의 무명시절,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선배에게서 들었던 말이라며 전한다.

무명이다 보니 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 후배를 격려하기 위해 했다는 말.

" 배우는 일(연기)을 안 하고 쉴 때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는 말이 자신에게 큰 울림이었고 그 후로 등산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밖으로 나가 세상을 구경하며 조바심과 불안을 이겨냈나던 말은 내게도 음에 잔잔한 물결을 만들었다.

조금은 결이 다른 말일지도 모르나 우리는 현장에 나가면 매일 현금으로 돈을 번다.

그 금액이 작지도 않다.

비록 체력과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면 그의 보상은 돈이라는 것이 그 값을 대신한다.

그러니 집에서 하루라도 내가 자의로 쉬는 날이면 눈앞에서 허공에 돈이 날아다닌다.

오늘 근무를 했으면 얼마를 벌었을 텐데 하며 쉬는 것에 전념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스트레스만 더 받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부분이 돈 욕심에 일을 쉬지 않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분명 과하게 소진해 버리면 다시 회복하기엔 그 보다 더 많은 값을 치러야 한다.

충전을 필요로 하는 전자기기들도 50% 이상 소진되기 전에 재충전을 해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정기적 휴무일은 불가피하게 쉬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온전히 '쉼'에 전념할 수 있다.

나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못' 버는 것이니 울할 것도 아까울 것도 없다.

참 유치하고 욕심에 어쩌지 못하는 게 사람이구나 싶다.

차라리 나만의 못난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그 제도가 여전히 유지되면 좋겠지만 지금은 좀 변형된 형태의 선택 휴장제를 시행하고 있다.

의무 휴장이 아닌 회사의 상황에 따라 매달 휴장일수와 요일도 바뀐다.

이마저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다행이지만, 좋은 제도는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유지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바람을 대신한다.

'명문'이라는 이름값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일 테니...


다시 미용실을 찾았다.

헛걸음했던 사연을 풀어놓으며 자연스럽게 어떻게 정기휴일을 결정했는지 물었다.

"매일 혼자 일을 하다 보니 손님들 기다리는 것 보면서 밥을 제때에 챙겨 먹을 수도 없고..

에고 ~그러다 보니 위가 많이 망가졌다고 하더라고요. 손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관절에도 염증이 생겼다 하고...

이젠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쉬어 보려고 마음은 먹었는데 또 쉬어보니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더라고.. 몸은 집에 누워있는데 정신은 가게에 와 있는 거야. 오늘 문 열었으면 돈이 얼만데,,, 하면서.

이 놈의 욕심이 문제라... 하하하."

그래도 쉬니까 이건 좋더라. 우리 동네 통물 식당 콩국수를 드디어 먹었어. 내가!  그걸 하나 먹으러 갈 시간이 없이 살았으니 나도 참... "

다시 그때를 상기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녀의 '드디어'라는 단어가 가슴에 얹혀 올랐다.

그 8천 원짜리 콩국수를 드디어 먹게 되어 행복했다는 소박한 진심.

'드디어'라는 단어에는 계속 마음에 품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  사소한 것도 할 수 없는 일상이 과연 통장에 적힌 숫자의 나열로 영혼의 허기를 달래 온 것인가?


갑자기 동료들의 쉬는 날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쉬는 날에는 일부러 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온전히 그들의 시간을 만끽하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음이다.

매일 자신보다 고객들의 마음과 행동만 보살피던 그들이 정작 자신들은 어떻게 보살피고 있는지 그 휴일의 일상이 궁금하다.


그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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