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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Jan 12. 2023

개점휴업

캐디와 계절

"엄마, 이번 주에 눈이 올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날씨예보 보면 되잖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이 뭔가를 바라는 눈치다.

"아니, 엄마의 50년을 산 촉으로 봤을 때 어떨 것 같냐고요?"

"다른 건 모르겠고, 아무튼 기후가 점점 이상해지는 건 알 것 같다."

그렇다.

2022년 12월의 제주는 겨울이다.

이로써 본의 아니게 난 그동안 동반했던 고객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꼴이 되고 말았다.

제주가 섬이다 보니 비행기를 탄다는 설레임도 있지만, 예측불허의 날씨가 걱정거리가 되기도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라운딩을 하면서 날씨얘기를 빼놓지 않는 이유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좋지 않으면 좋지 않아서...

아들이 꼬마이던 시절, 내게 물었었다.

"엄마, 겨울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야?"

참 모호한 질문이었기에 나의 대답도 애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아들은 자라서 이젠 더 이상 묻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감각을 빌어 고객들에게 말하곤 한다.

"12월은 어때요?  골프 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죠?"

"아니요. 음... 제주는 12월은 늦가을쯤으로 봐요. 때늦은 꽃들과 억새도 볼 수 있거든요."

정말 확신에 찬 나의 말에 고객들은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마치 좋은 정보를 얻어 간다는 듯 득의양양하다.

그런데 22년의 12월에 때아닌 폭설로 골프장이 휴장을 했다. 그것도 연이어 주말에 2번이나...

나의 기후예측시스템도 갱신이 필요한 때인가 보다.


나의 일터가 야외이다 보니 기상조건과 계절적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몇 해 전만 해도 12월까지는 비교적 예약팀수가 있는 편이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숫자가 현저히 적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이 시기에 따뜻한 남쪽나라를 그리며 제주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기상악화로 골프를 치지 못하거나 원하는 일정대로 귀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제주여행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이 제주를 외면하게 한다.

그러니 이 시기가 되면 캐디들도 <개점휴업> 신세가 된다.

지나온 계절들을 돌아보며 자신이 개미였는지 베짱이였는지 평가할 시기가 온 것이다.

더운 여름, 얼굴에 사그락거리며 남은 짠 소금기와 맞바꾼 삶의 노고들이 하얀 눈의 결정으로 반짝거릴 시간이다.

누군가는 마음속에 품었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잠시 접었 놓았던 골프채를 다시 잡는다.

그동안 일 때문에 옆으로 비껴놓아야만 했던 것들에 정성을 쏟고 마음을 풀어놓는 때,  타인에게 맞춰있던 포커스를 나에게로 돌려주는 시간들을 마주한다.

비록 통장잔고에 앞자리숫자가 바뀌거나 뒤에 붙는 0(영)이 하나씩 사라진다 해도 그것들과 맞바꾼 것들이 우리를 채운다.

마치 농한기의 농부들처럼 말이다.

농부들이 다음 해의 농사를 위해 씨앗을 장만하고 농기구들을 정비하며 땅을 쉬게 한다.

그들도 고된 농사일로 닳거나 헐거워진 몸을 보양한다.

땅을 딛고 하늘에 기대어 사는 캐디의 삶도 농부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일출의 장엄함에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담뿍 받고 그걸 연료 삼아 드넓은 들판에서 하루를 이겨내면 일몰의 보드랍고 경이로운 빛깔이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길을 밝혀준다.

그나마 이것이 자연을 토대로 한 사람들이 받는  황홀한 위안이다.


지금 이맘때면 회사에서도 캐디들에게 교육과 여가를 겸한 활동을 하게 한다.

일종의 보수교육인 셈이다.

간혹 캐디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골프 칠 줄 알아야 캐디 할 수 있나요?"

캐디들이라고 해서 모두 골프를 칠 줄 아는 건 아니다.

전문직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무슨 라이선스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단, 전동카트를 움직여야 하기에 운전면허자격증은 있어야 한다.

지역 폴리텍대학이나 민영기관에서 캐디양성교육을 하긴 하지만, 사실 제주에선 유명무실하다.

각 골프장에 취업하면 경기팀에서 교육을 시키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골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룰은 양성교육기관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실제 골프코스의 세부적인 사항과 필드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골프장취업을 더 우선시한다.

물론 수준급의 골프 실력을 갖춘 캐디들도 많다.

나는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므로 골프를 치긴 하지만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다.

골프를 칠 줄 아는 동료들은 정규홀을 돌고 스코어를 제출하며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도 열린다.

그 외 아직 실력이 영글지 않아 정규홀 라운드가 어려운 직원들은 그린 전방 50미터에서 어프로치를 하고 그린의 각 코너를 시작점으로 하여 홀 인(Hole In)이 될 때까지 스코어를 기록하게 하여 경기팀에 제출하게 한다.

골프를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어프로치를 하고 퍼팅을 하겠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으나 그동안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즉 현장학습이 어디 가겠는가.

출발 전 연습장에서 일타강사(로우핸디의 캐디)의 가르침과 연습으로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아주 미세한 정교함을 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스코어가 아니다.

물론 스코어를 아예 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활동을 통해 고객들에게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주고자 하는 것에 역점을 둔다.

직접 어프로치를 하면서 그 기술의 어려움과 낙하지점을 직접 설정해 보고 쳤을 때 볼이 굴러가는 속도와 거리를 직접 느껴 본다. 그린 위에서도  실제 퍼팅을 해 봄으로써 더 감각이 예민해지고 활성화된다. 

내 몸으로 직접 체감해 보는 것이 이 활동의 주제인 것이다.

나 역시 직접 퍼팅을 해 보면 그동안 내가 보던 그린라이에 조정이 필요함을 느꼈다.

심상으로만 그리던 이미지를 직접 실전에 대입해서 답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우리는 그런 일련의 활동을 통해 고객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보는 기회가 된다.

고객들도 가끔 그린 주변에 캐디가 들고 있던 클럽을 모아 놓으면 먼저 끝나서 골프카로 이동할 때 클럽들을 직접 들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육중한 무게감에 대부분 놀란다. 생각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다니냐고... 걱정스러운 눈빛과 말을 건넨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일도 어차피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인 걸...

가끔 되새겨 볼 일이다.


농부들이 호미와 낫을 갈며 다음 해의 풍년을 염원하 듯, 우리도 우리의 감각을 더 뾰족하고 예민하게 벼리며 좀 더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이 충만하길 꿈꾼다.  

그렇게 우리는 이 감사한 계절을 지나고 있다.


늦은 밤,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내가 하얀 목화솜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 듯, 세상의 들판도 새하얀 솜이불을 덮고 잠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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