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타의에 의해 가까워져야만 하는 인간관계가 있다. 시작은 순수한 자발성은 철저히 배재된 채 보통은 필요나 계약에 의해 맺어진다. 그 성격은 매우 피상적이어서 맺고 끊음이 단발적이고 그다지 중요치 않게 취급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일이란 복잡 미묘하여 시작은 비슷하지만 전개가 다른 양상으로 뻗기도 한다. 내 경우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그랬다.
나는 언어와 문화가 제각각인 이민자로 이루어진 낯선 나라에서 수년째 어린이 집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둘 혹은 세명의 교사가 한 반을 맡기 때문에 파트너와 함께 일하는 팀워크가 필수인 직업이다. 그러니까 나는 좋든 싫든 한둘의 동료 교사를 비롯해 여덟 명 혹은 열두 명의 아이들과 주말을 제외한 주 5일을 하루 일곱 시간 반 동안 항시 붙어 지내는 생활을 한다. 이 관계에는 서로에 대한 호감이나 취향과 성향의 일치 같은, 자의적 선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갑자기 하나의 배에 몰아넣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떠나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렇게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 갇힌 채, 서로 부딪히고 공유하고 논쟁하고 협력하고 의지하는 과정을 거치며 어느새 각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로에게 스며든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동료 교사의 남편과의 갈등이나 사춘기 자식의 반항적 태도와 같은 집안 사정을 포함하여 친인척의 결혼과 장례 같은 대소사는 물론이고 사소하게는 지난 주말 어디에 가고 누구를 만났으며 무엇을 했는지 조차 알게 된다. 때로는 정도를 넘는 온갖 투정과 불만과 애로사항을 들어주는 상대방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도 한다. 학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천진한 아이들은 어젯밤 목격한 부모의 다툼이나 주워들은 어른들의 내밀한 대화 내용을 불쑥 입 밖으로 꺼내기 일쑤였고 아이의 낮잠용 침구 사이에서는 세탁하면서 실수로 딸려온 망사로 된 티팬티나 화려한 패턴의 남성용 삼각팬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그들의 속옷 취향은 물론이고 어떤 옷의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주로 사용하는 세탁세제가 무엇인지, 장을 보러 가는 마트가 어딘지와 같은 평소 생활상을 알게 된다. 반듯하게 착착 개어져 용도 별로 라벨을 단 지퍼백에 담기거나 혹은 드라이어에서 바로 꺼내 뭉텅이 채로 아무렇게나 쇼핑백에 쑤셔 담겨 오는 여분의 옷들을 통해서, 또는 가정 통신문의 준비물을 얼마나 세밀하게 챙겨 오는지와 같은 단서로 학부모의 성격과 생활 습관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아이들에 관해서는, 각자의 식습관이나 잠투정이나 언어 발달 상황이나 선호하는 놀이와 장난감의 종류나 잘 드러나지 않는 신체적 특징과 배변습관에 이르기까지, 어떤 때는 부모보다 더 속속들이 파악하게 되는데 이 경우 또한 기계적인 임무 수행의 한 부분이었으므로 부자연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런 관계에서 이질감을 느끼곤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저절로 맺어진 것이 아닌 그저 형식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사적인 정보가 넘치게 들어오는 게 버거웠다. 완벽한 타인인 내가 그들의 내밀한 사정을 예측할 수 없이 맞닥뜨리는 사고처럼 알아버리는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편 이 관계는 순전히 물리적인 시간 덕분에 서로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 추억이 층층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깊이나 강도와 상관없이 연결고리는 한없이 약해 빠져서 계약된 기한이 다하거나 상황이 바뀌면 그대로 단절돼 버리곤 했다. 그 과정에 어떤 단계적 절차는 기대할 수 없었고, 어찌 보면 너무도 차갑고 냉혹하게 끝나고 마는 것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이런 관계의 맺고 끊음은 미세한 균열을 남겼다. 이를 두고 상처라 표현해야 하는지 망설여지는 이유는 그 단절이 매번 아쉽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되려 홀가분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허무함은 밀려들었다. 이토록 거침없이 다가와 품에 안기고, 나를 따르고 내 관심과 칭찬을 갈구하던 아이는 정확히 일 년 후 가을이면 여지없이 내 곁을 떠나고, 몇 주가 지나면 진급한 반의 새로운 교사를 따르기 시작하며, 이후로는 가끔 복도에서 마주쳐도 무심한 눈길을 보내곤 했다.
나의 경우는 또 어땠냐면, 학기가 시작되고 물밀듯 들어오는 신입생과 그들의 학부모와 새로 파트너가 된 동료 교사에 대한 정보를 전산에 입력하듯 수집, 저장하느라 바빴고 머릿속 공간에 점차 여유가 없어지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지난 추억이나 감정의 여운은 뒤로 말끔히 비워야만 했다. 모든 것을 억지로 주입해 놓고는 한 순간에 빼앗아 가버리고, 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듯한 이 과정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정보의 수집과 처리가 일 년 단위로 기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가혹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 통합적인 과정 속에서 나는 매번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 이 균열을 상처라고 표현하기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내게 있어 관계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관계란 어떤 진심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이를테면 신뢰나 믿음이나 공감과 같은, 우리가 믿는 절대적 가치가 바탕에 깔려야 한다고, 그리고 만약 단절되어야 한다면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주체적인 결정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직장에서의 관계에 이런 비현실적 신념을 투입시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인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여하튼 그랬다. 자꾸만 마음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러다가 언젠가는 마음 한켠이 완전히 산산조각 날 수도 있겠다고, 나는 겁이 났다.
직장에서 나는 점점 말을 잃어 갔다. 마음속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았고 동료나 학부모의 수다는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딴생각을 했다. 아이의 작고 예쁜 담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다가도 이내 고개를 돌렸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통통한 볼을 쓰다듬다가도 멈칫했다. 이별에 무덤덤해지려 노력했고 내적 친밀감은 오히려 위협이었으므로 필요 이상의 애정이나 관심은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잘못되었는지 균열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점점 지쳐가고 있는데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에 와서도 도통 알 길이 없다. 그저 인간의 삶이란 외적이든 내적이든 시간의 흐름이나 물리적 이유에 의해 낡거나 닳거나 깨지거나 부서지거나 손상되는 게 당연한 거라고, 그러니 이 균열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섭리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