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개 행복과 내 불행의 상관관계

by 모모루

마음이 힘들 때면 인스타그램을 연다. 이 방법은 좀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소셜 미디어가 개인의 행복도를 반감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고 나 또한 이 주장에 이견이 없다. 게다가 나는 남의 일상 따위 관심 없다. 더 솔직히는 SNS에 매달리는 사람을 보면 깊은 결핍이 느껴져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 맥락에서 우울할 때 인스타그램을 본다는 말은 모순적이고 언행불일치로 들릴 수 있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팔로우하는 인스타그램은 사람이 아니라 개가 주인공이다. 세 마리의 고양이와 두 마리의 거북이(이 마저도 개와 동거하는)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의 일상을 올리는 계정이다. 내 개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으므로 남의 개를 염탐하고 싶은데 그러기에 인스타그램만큼 좋은 통로는 없다.





개를 바라보는 내 시각은 유난스러운 구석이 있다. 어떤 사람은 연애나 결혼을 못해서 혹은 아이가 없어서 그렇다고 측은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남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단정 내리는 편협한 시선에 반응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싶지 않다. 유기견을 구조하는 일을 두고 그럴 바에 어려운 사람을 먼저 도우라는 훈계질도 많다. 이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어찌나 오만한지. 세상이 온통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이기적인 발상만 보더라도 할 말을 잊는다. 세상에 해가 되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다면 바로 인간이다.

반면에 개는 존재 자체만으로 축복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더라도 세상에 이롭다. 개에 대한 찬사라면 몇 시간을 떠들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진난만하고 다정한 성향 때문에 개는 사람과 함께 사는 쪽으로 진화되고 말았다. 결국 불행을 자초한 셈인데 그들의 운명을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의 처분에 맡겨 버린 것이다. 하여 개는 존재 자체로 슬프다. 나는 인간이고 개는 개이기 때문에, 오직 그 이유만으로 나는 모든 개에게 부채감을 느낀다.

각설하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를 사랑한다는 소리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개에게 어김없이 눈길이 간다. 뇌 속에 특수한 레이더가 장착되어 있는지 어디서나 개를 찾아낸다. 내 개, 남의 개 할 것 없이, 품종견이건 잡종견이건 크던지 작던지 상관없이 모두 사랑하며, 사납고 까칠한 개조차도 그들의 행동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인스타 속 개의 삶은 인플루언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행복해 보인다. 충분한 돌봄과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전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견주가 타인의 관심이나 상업적 수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개를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 전체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지 못하듯 견생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인스타 속 보이는 모습이 실은 특정한 부분만 골라 짜깁기되거나 연출된 장면 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상관없다. 적어도 추위에 떨고 굶주린 상태로 길을 떠돌거나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신세 보다야 낫다. 개의 안위가 견주의 재정 상태와 마음의 여유에 크게 좌지우지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이가 행복하려면 부모가 행복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개로 인해 돈을 벌고 남의 관심을 사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만족한다면, 그 이유 때문에라도 개를 소중히 여겨준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무엇보다도 개는 주인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을 돈벌이로 이용하는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없다. 개가 그 잔혹한 사실을 평생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본질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러니까 세상에 사랑이랍시고 존재하는 감정 속에 순도 백 퍼센트 무결한 속성들로만 채워진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자기 자식도 버리고 때리는 판에 고작 개 한 마리라고 생각한다면? 팍팍한 현실 속 마음 하나 돌볼 여유도 없는 지금과 같은 세태 속에서 어쩌면 고작 개 따위를 소중히 여기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 있다. 다행히도 사람 아이를 양육할 때 신경 써야 하는 복잡다단한 과정과 달리 개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프로세스는 꽤 단순한 편이다. 잘 먹이고 재우는 일을 제외하고 하루 두세 번의 산책이면 대부분의 개는 만족한다. 기본만 잘해도 그만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스타에 자신의 개를 자랑삼아 올리는 행위 정도는 충분히 면죄부를 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속 사정이 어떨지 전혀 알 수 없는 남의 인스타 속 개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개의 귀여운 외모적 특징이나 사랑스러운 습관이나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순간을 잘 포착한 사진과 개가 활짝 웃는 얼굴로 드넓은 잔디밭과 해변을 달리고, 피곤해 곯아떨어져 자는 모습을 찍은 쇼츠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너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개의 행복과 나의 불행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세상의 어떤 부분은 제대로, 올바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불공정과 불운이 넘치는 이 세상에도 사랑받아 마땅한 대상이 사랑받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산다는 건 이토록 외롭고 허망할 뿐인데 그래도 어떤 생은, 하물며 자칫 하찮은 취급받기 십상인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애정과 관심으로 채워지기도 한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그거면 됐다. 나의 작은 불행, 외로움 따위 어떻게든 다독이며 살아볼게. 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그걸로 됐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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