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증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by 모모루

나는 번번이 비현실감을 느끼곤 했다.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한순간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몇 년째 출퇴근하고 있는 익숙한 도로 위나 매일 아침 개와 함께 하는 산책길에서, 또 어떤 날은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거나, 무언가를 사고 계산을 하는, 아주 잠깐의 사이에서 현재 머물고 있는 공간이나 하고 있는 행위가 어쩐지 비현실적이고 가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하루 일곱 시간 반을 붙어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아이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손을 움켜잡을 때나 헝클어진 머리를 묶어주는 동안 참을성 있게 앉아 있는 작은 뒤통수를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흠칫흠칫 놀랐다. 교사 미팅에 참석하거나 학부모와 상담을 하거나 수업계획서와 가정통신문을 작성하고 제출하는 내 모습은 꼭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 반복적인 습관과 익숙한 일상이었으므로 마치 물 흐르듯 흘러갔는데 그 자연스러움조차 괴리감이 들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영혼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는 듯했다. 두발은 공중에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만 정신을 차리고 두 발을 현실의 바닥에 단단히 딛으라고 명령하듯 되뇌곤 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정신을 차리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기, 그뿐이었다. 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다른 일에 집중하면서 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기분은 바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 있는 동안에는 잠시 뒤편으로 물러가 있다가도 다시 찾아왔다. 이쯤 되니 비현실감을 느낄 때가 원래의 내 상태처럼, 그 감정을 느끼지 않을 때가 예외적인 순간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이 증상을 특별하고 신기한 경험으로 여기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좀 낭만적이라고도 생각했는데 이 기분이 끌어올리는 불안과 위태로움에 기대어 이런저런 감상적인 글을 끄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의 계획은 비현실감에 관한 아주 그럴듯한 글을 쓰자,였고 '비현실'이라는 표현을 대체할 만한 다른 단어가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연관 검색어에 떠 있는 '이인증'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전까지 이인증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히 비현실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궁금증이 일어 클릭해 보았고 실소가 터진 건 그다음이었다.


이인증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신과 분리된 느낌을 경험하는 것. 자기 지각에 이상이 생긴 심리적 증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 같은 느낌, 제삼자가 되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 등을 포함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증상이다.
정신분석 문헌에서는 이인증을 “자아가 불안에 직면해서 다양한 방어를 사용하는데, 그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할 때 나타나는 심리 내적 갈등의 결과”로 보고 있다(Arlow, 1966, p. 459).



이인증의 증상은 내가 겪고 있는 문제와 거의 맞아떨어졌다. 한마디로 이 미스터리 한 기분의 정체는 일종의 불안장애 증세였다. 불안에 떠는 게 일상인 나 같은 인간에게 불안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으나 비현실감조차 과도한 불안으로 발생한 병증이라는 사실만큼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어떤 전체적인 감상과 정의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신비로운 심리적 체험은 과학적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병리의 범주로, 그리고 내 정신 건강이 어쩌면 심각한 수준 일 수도 있다는 냉혹한 현실의 문제로 전환돼 버리고 말았다. 글에 담고자 했던 기존의 의미는 순식간에 퇴색해 버렸고 한껏 부풀어 올랐던 열정도 사그라들었다. 나는 어떤 신념 체계가 무너졌을 때나 느낄 법한 허탈감에 사로잡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우습게도 딱 그 순간 인터넷 창에 떠 있는 읽다만 문서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증상은 이지적이고, 민감하고, 다정하고, 내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인격의 소유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이걸 위로랍시고 하는 소린지 놀리려는 소린지 잠시 부아가 치밀었지만 이런 기분이라면 그저 순수한 위로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이전 05화남의 개 행복과 내 불행의 상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