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둠의 냄새를 맡는 데는 도사였다.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불행의 기운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단정하고 예의 바른 미소 뒤에서 위태로운 불안을 감지했고 건너편에 앉아 깔깔대고 웃는 얼굴 너머로 끝을 알 수 없는 공허를 읽었다. 아무것도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와중에 숨어있는 결핍을 간파했고 모두의 기대와 축복 속에서 그것이 곧 좌절되는 결말을 예견하기도 했다.
한낮에 인파가 북적이는 길을 걸을 때면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거리의 쓸쓸함이 눈앞에 그려졌고 축제가 막을 내린 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파의 뒷모습에선 오라처럼 발광하는 허무를 보았다.
잠깐 같이 산 적이 있는 친척 언니가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본인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는 그 불운한 잉태를 직감했다. 한동안 나를 괴롭게 한, 이유를 알 수 없던 메스꺼움과 구토는 언니가 중절 수술을 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수술을 하고 돌아온 날, 언니의 얼굴은 핏기없이 창백했지만 홀가분해 보였다. 그녀의 근심이 사라지자 나를 무력하게 만들던 불안도 덩달아 물러갔다. 하지만 이내 생명의 사그라듬이 가져오는 근원적 비애가 밀려들었다. 길을 걷다 가도 갑자기 눈물이 났고 자꾸만 알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 내게 봄은, 혼돈의 계절이다.
봄은, 얼어붙은 대지를 녹인 후 닫혀 있던 꽃망울을 터트리고 긴 동면에서 짐승들을 깨우며 낡은 것과의 작별을 가져온다.
거리는 가벼운 흥분으로 들썩이고, 오로지 날씨만으로 기분 좋은 날이 이어진다. 모두가 너그러워지고 대부분의 실수가 쉽게 용서되는 시기이다.
내가 태생적으로 골몰하는 우울과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들의 응축이다.
그러므로 봄은 나에게 위험하다.
모든 감각기관은 마취된 듯 예민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따뜻한 태양이 음험하고 차가운 기운을 덮어버리므로 나는 위험을 감지할 수 없고, 다가오는 불운에 대비할 수 없다.
그로인해 나를 어지럽고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하지만 봄의 힘은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위대한 것이라서 어둠을 향한 본능적 갈구를 가볍게 짓밟아 버린다. 본능은 결국엔 어찌 손써볼 수 없는 무력함을 느끼고 봄의 힘 앞에 주저앉고 만다.
감각들은 비로소 일을 쉬어도 좋다는 합법적 승인을 받는다.
한동안은 날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위험을 감지할 필요도, 불운을 대비할 필요도 없다.
마음이 드물게 평온해지는 찰나의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봄을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