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조차 못 버리는 이유

by 모모루

그것은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빗자루였다. 직경의 길이가 십 센티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사이즈로 오렌지 색 조악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브러시와 손잡이 이음매 부분에 분홍색 플라스틱 리본 장식이 달려있었고 손잡이 가장자리에 단차를 두어 그 또한 하찮을 만치 작은 쓰레받기를 끼울 수 있었다. 이런 작은 빗자루를 어디에 쓸 수 있을까 굳이 사용할 만한 구석을 생각해 보자면 책상 혹은 화장대 위의 먼지나 지우개 가루를 털어낼 때 일듯 한데 그런 경우라도 요즘 잘 나오는 작은 핸디형 청소기를 사용하는 편이 더 나을 듯싶었다. 더군다나 빗자루는 내가 산 게 아니었고 몇 년 전 한국에 갔다 돌아온 언니의 짐가방에 실려 온 것이었다. 해외 생활자가 고국에 들렀을 때의 관행대로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파는 잡화점에 들른 언니가 이것저것 분별없이 사들고 온 수많은 물건들 중 하나였다. 어쨌거나 그 빗자루는 사 온 당사자인 언니조차 구입 목적이 확실치 않았으므로 존재감을 잃은 채 집안을 떠돌게 된 터였다.





원하는 입자의 크기대로 다이얼을 돌려 맞추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커피원두를 갈아주는 전동 커피 그라인더는 기능의 탁월함에 있어 내가 대단히 칭찬하고 애정하는 기구였지만 단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용기를 입구에 아무리 바짝 갖다 붙여도 미세한 커피 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따라서 사용한 뒤에는 검은 가루가 바닥 여기저기 흩어져 떨어졌고 특히 분쇄된 커피가 쏟아져 나오는 입구를 중심으로는 분말이 마치 스웨터 위에 엉겨 있는 먼지처럼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부직포 형태의 먼지떨이로 청소해 보았지만 커피가루의 무게는 먼지보다 상대적으로 무거워서 정전기로 끌어당겨 붙잡기엔 무리가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것을 쓸어 담는 기능 또한 기대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라인더는 언제나 완벽히 청소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고 그 모습은 꽤나 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부엌의 서랍장을 정리하다 작은 빗자루를 발견했을 때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이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형태가 못마땅하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멀리 한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고 작은 물건이 낯선 이국의 땅에서 버림받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설령 싸구려 빗자루에 불과하더라도 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변에 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줘야겠다 생각하고 일단은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빗자루의 처지가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꼭 오랫동안 임시 보호하며 돌보던 애완동물에게 적당한 입양처를 찾아줘야 할 때 들 법한 기분이 들었다. 말하자면 적당한 감정의 거리를 둠으로써 언젠가 찾아올 이별에 대비하면서도 끝까지 품어주지 못한 데서 오는 죄책감과 좋은 반려인을 찾아줄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와 어떤 존재의 거취가 순전히 내 선택에 달려있다는 다소 무거운 책임감과 하지만 결국 모든 결말은 어떤 운에 좌지우지될 것이라는 무력감이 마구잡이로 혼재되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고작 빗자루 하나를 두고 하기에는 불필요한 생각과 과장된 감정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나란 존재는 매 순간 쓸데없는 걱정과 고민을 사서 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버린 것이었고 그 점만큼은 스스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토록 심란한 와중에 문득 커피 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는 전동 그라인더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잽싸게 다시 서랍을 열어 빗자루를 꺼내 들었다. 머리를 스쳐 지나간 예상과 기대가 맞다면 그것은 굳이 낯선 누군가에게 생사의 존폐를 맡길 필요가 없을 터였다.

나는 빗자루를 가져다가 그라인더 구석구석을 털고 쓸어 보았다. 조막만 한 솔의 사이즈는 어찌나 찰떡같은지 미세한 틈새 구석구석 빠짐없이 침투해 박혀 있는 검은 가루를 떨구어냈고 싱크대 상판 위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도 싹싹 쓸어 낼 수 있었다. 작은 섬처럼 봉긋이 모아진 커피 분말을 세트로 딸려 있던 쓰레받기에 받아내 그대로 쓰레기통에 탁탁하고 털어 넣으니 세상 간편하게 청소가 끝났다. 그라인더와 주변은 말끔해졌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었다.






내가 소유물을 애정하는 방식은 물건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아주 맹렬히 사용하는 것이다. 눈으로만 감상하거나 아껴가며 아주 특별할 때만 꺼내 쓰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까 나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면 어떤 물건이든, 크거나 작거나 비싸거나 저렴하거나 고급이거나 싸구려 거나 상관없이 대단히 쓸모 있게 쓰여서 일상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는데 일조해야 했으며 종래에는 그 물건을 선택한 안목에 대한 확신을 제공해야만 했다. 어찌 보면 모든 대상의 존재가치를 오로지 활용가치의 유무로만 판단하는 냉혹한 태도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마도 유년시절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면 그 과정에서 쏟은 진심 따위는 조금도 인정받지 못하는 성과중심주의를 주입받으며 자랐기 때문이지 싶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환경이 그랬던 탓이고 본래 타고난 심성은 따뜻한 편이었다.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채워주는 물건이 하찮고 별것 아닐수록 애정의 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봤을 때 그러하다. 사실 이런 태도는 비단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나는 대체로 소외받는 것에 항상 신경이 쓰였다. 초라하고 연약하고 값싸고 흔하고 하찮은, 등등의 이유로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하던 대상이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받게 되면 대단히 뿌듯했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이타심 넘치는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그런 인격자이고 싶은 바람은 항상 마음에 품고는 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전혀 그런 부류가 못되었다. 나란 인간은 평범한 일상에서 밀려드는 자질구레한 문제만으로도 고군분투하는, 남의 안위까지 걱정할 여유는 눈곱만큼도 가질 수 없는 심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따라서 소외받은 대상이 자꾸만 신경 쓰이는 이 심리는 마음속 그릇이 간장종지만 한 나로서는 도무지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기저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몹시 궁금할 지경이었다. 특출 난 인류애나 박애심을 타고난 아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 바람일 뿐이었고 자세히 들여다본 내면 밑바닥에는 어떤 숭고한 특성도 찾을 수 없었다. 고질적인 애정결핍의 잔해만이 발견될 뿐이었다. 나는 소외당하는 불쌍한 존재에게 자신을 철저히 이입시키고 있었다. 그런 처지가 전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나를, 내 진심을, 내 가치를 언젠가 누군가는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만이 깔려있었다.

내가 하찮은 물건의 숨겨진 용도나 능력을 알아봐 주듯, 그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소유물이 되듯이, 나도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누군가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말이다. 아마 물건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쯤 되니 좀 서글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원인이 무엇이 됐건 어떤 대상에게든 따뜻한 관심으로 전달된다면 결과적으로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분노조절장애나 묻지 마 범죄 같이 세상에 해가 되는 방향으로 분출시키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됐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일 잘하는 내 물건들을 열심히 칭찬한다. 아침에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갈면서는, 너같이 편리한 도구는 다시없을 거야. 아침마다 갓 갈아낸 신선한 커피의 향을 맡을 수 있다니! 덕분에 하루의 시작이 더없이 훌륭하구나.

작은 빗자루로 주변에 흩날린 커피 가루를 싹싹 쓸면서는, 쪼끄만 게 일을 아주 야무지게 한단 말이지. 덕분에 그라인더가 말끔해졌어. 아주 훌륭해.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 혹은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은 절대 모르겠지만 나만큼은 잘 알고 있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잖아. 잘하고 있어. 그걸로 충분해. 훌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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