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언니가 채소를 직접 키워보겠다는 소리를 할 때 나는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우리는 한국으로 치면 아파트 같은 곳인 콘도에 살고 있으니 작물을 키울 수 있는 뒷마당이 있을 리 없었다. 언니는 동네의 커뮤니티 가든을 신청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지자체에서 주말농장이나 주민공용텃밭을 운영하듯 캐나다에도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이 있었다. 한 달에 얼마씩 사용료를 지불하고 공동 정원 속 나무판자로 울타리를 둘러 구획을 나눈, 여기 말로 롯(Lot)이라 부르는 한 뼘 땅을 빌려 채소나 꽃을 심을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떻게든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게 미덕이라 여기는 비만인이자 대사증후군 환자에 불과했으므로 왜 사서 고생을 하려 하지? 그러니까 마트에 가면 언제든 쉽게 살 수 있는 채소를 왜 굳이 힘든 방식으로 얻으려 하지? 이딴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러니 가족 중 누군가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들 당연히 관심 밖이었다. 게다가 언니는 항상 식물에 관심은 있으나 키우는 기술은 영 젬병이어서 집에 들인 화분도 죽이기 일쑤였고 무슨 일이든 소란스럽게 시작하곤 했지만 꾸준히 하는 법이 없었다. 농사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못하리라는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밭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사다 심었다는 얘기를 초반에 듣긴 했지만 정기적으로 밭을 살피러 가는 모습은 볼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수확물을 집에 들고 온 적도 없었다.
작년 여름 어느 주말 아침에 언니가 갑자기 풀을 뽑으러 간다며 채비를 했다. 알고 보니 커뮤니티 가든 측에서 잡초로 무성한 롯을 제대로 정리하라는 경고성(?)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전과 완전히 다른 생활습관자가 되어 있었다. 비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개월 전부터 운동을 꽤 열심히 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일상생활에서도 일부러 움직이려 노력 중이었다. 하여 가만히 앉아 있느니 운동하는 셈 치고 밭에 가 일손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든에 도착했을 때 언니의 작은 롯은 말 그대로 황폐한 채 돌봄을 받은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물은 질긴 생명력으로 생존해 있었다. 방울토마토 나무에는 새끼손톱만큼이나 작지만 루비처럼 붉고 영롱한 토마토가 조랑조랑 매달려 있었다. 할라페뇨라는 이름을 가진 멕시코 고추나무에는 손가락 한 마디도 채 안 되는 크기라 할지라도 종자 특유의 작달막하고 도톰한 모양새를 갖춘 고추가 열려있었다. 잘 가꿔진 다른 롯의 크고 탐스러운 작물에 비교해 한없이 초라한 열매들이었지만 나는 알 수 없는 감명을 받았다. 그 안에서 발산하지 못한 채 잠재되어 있는 어떤 힘을 직감적으로 느꼈는데 아주 작은 숨구멍만 터 주면 기다렸다는 듯 생명력을 한껏 터트릴 것이 분명했다.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가엾은 생명을 구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고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무성한 풀이 제거되고 마침내 검은흙이 드러나자 땅은 씻고 난 아이의 얼굴처럼 말갛고 산뜻해졌다. 만지면 푸스스 흩어지던 먼지 같은 흙은 물을 흠뻑 먹자 빵반죽처럼 부드럽게 부풀어 올랐고 축 늘어져 있던 잎사귀는 생기를 찾았다. 말끔해진 땅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개운했다. 집에 돌아온 뒤 한동안 인터넷을 검색하여 작물 키우는 법을 찾아보았고 다음 날부터 부지런히 정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 일을 진심으로 즐겼다. 아니, '즐기다'는 표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랑에 빠졌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매우 인색한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한치의 망설임도 들지 않았다. 어떤 대상을 향한 감정이 이토록 신속하게 정립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텃밭 가꾸기는 내 기호나 취향과는 영 동떨어진 일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피부는 검게 타들어 갔고 온몸은 땀범벅에 흙과 먼지를 뒤집어썼으며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건 예사였다. 이 같은 혐오 요소가 지금에 와서 괜찮거나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텃밭에 가기를 멈출 수 없었다. 까다롭고 완고한 나로 하여금 이 모든 단점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무언가 거기 있었다.
처음에는 순전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장년이 되면 너 너 할 것 없이 등산을 하고 농사를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하는 현상을 볼 때마다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특정 시기가 되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호르몬이 자동으로 분비되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사십 대에 접어들었을 뿐이고 나이를 운운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텃밭에 열과 성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렸을 때 그들이 보이는 반응이란 하나같이 당사자인 나만큼이나 어리둥절해하며 "갑자기 왜?"라는 질문을 해댔는데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나 보지." 따위의 불분명하고 영혼 없는 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얼렁뚱땅 얼버무리는 짓은 도무지 내 성질과 맞지 않았다. 이토록 강렬한 감정과 희소한 경험의 이유를 별생각 없이 통설과 통념에 따라 결론짓고 싶지도 않았다.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농사를 통해 알게 된 건 내가 지독한 결과중심주의와 성과만능주의로 점철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농사의 몇몇 특성은 이런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물을 주러 갈 때면 하룻밤 사이에도 새순이 돋아나고 잎이 무성해졌으며 열매가 여물었다.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매 번 놀랄 정도였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처럼 넘치는 보상이라니!
세상은 불운과 행운으로 뒤범벅된 변수로 가득했고 모든 결과가 쏟아 부운 시간과 노력의 총량에 비례한 만큼 따라오리라는 기대는 번번이 좌절됐다. 반면 농사는 땀 흘리고 고생한 대로 비교적 정확한 결실을 내주는 흔치 않은 프로세스로 돌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있는 보상이었다. 이는 가계에 도움이 되기까지 했는데 돈을 주고 채소를 구입할 일이 현저히 줄은 것이다. 고단하게만 여겼던 육체노동도 여러모로 이득이 됐다. 밭에서 두어 시간만 보내도 하루 할당량을 훨씬 웃도는 신체활동을 채울 수 있었으므로 더 이상 운동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두거나 지루하게 러닝머신 위를 달릴 필요가 없었다. 농사의 이러한 일타쌍피스러운 요소는 극강의 효율충인 내게 더없는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일을 마치고도 밭에 주저앉아 무성한 식물을 한동안 바라보곤 했다. 타들어가는 태양볕 아래 흐드러진 짙은 초록빛, 가지가 휘어질 듯 주렁주렁 매달린 크고 작은 열매, 삽으로 조금만 파 들어가도 지렁이가 꿈틀대는 검고 비옥한 흙과 그것이 물에 흠뻑 젖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 진한 흙내음의 조합을 감상했다. 움트는 생명력이 뿜어내는 활력과 생기는 얼마나 강력한지 옆에만 있어도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평안해졌다. 몸의 피로감조차 기분 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어떤 치유의 힘이 있었다. 자연의 생태에서 이루어지는 우주적 작용 속에서 나란 존재는 한낱 먼지처럼 작게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는 실체가 어쩌면 꿈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무의미한 욕망은 아닌지,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도 결국 스스로 만들어 낸 허상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토록 심각하고 무겁게 생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먼지처럼, 딱 그만큼 가볍게 살아도 상관없을지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하찮은 내가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고 물을 주는 사소한 행위로나마 자연의 섭리에 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비록 먼지에 불과하더라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썩 쓸모 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긴 겨울을 통과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봄이 기다려진다. 매년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 바라는 건 전과 다를 바 없지만 이번만큼은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인지 그 시간을 다소 수월하게 넘기고 있다. 태양이 얼굴을 내밀어 대기가 따뜻해지면 언 땅이 녹을 것이다. 그 땅에 어떤 씨를 뿌릴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