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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하 Aug 14. 2023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sophiaLuv22-23.8.13(일)

                                                                                                                     

초등학생때 가장 궁금하고 알고싶었던 것이 있다. 어른들이 종종 "내가 10년 전에는 말이야"할때 그 10년의 의미가 너무 궁금했다. 당시 나이로 10년 전은 많아야 2-3살이니 10년 전의 일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내가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더 먹어 10년전의 일을 뚜렷이 기억할 수 있다면 그 10년의 의미를 궁금해하곤 했다. 내가 그 10년의 의미를 알 수 있다면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사는게 맞는 건지, 세상이 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

 

대학입시 현역때 원하던 대학의 바로 앞에서 순위가 끊겨 오기로 재수를 했다. 당시 재수 할 때 마음속엔 '내가 대학생이 되면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에 대해 더 알아가야지'하는 다짐이 있었다. 뭔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내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그 마음을 기억했다. 친구가 추천해준 멘토링 수업을 받고 '아, 내가 원하니까 진짜 내가 나에 대해 알수있는 기회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당시 멘토링 주제는 시간관리, 진로, 적성 등등 다양한 주제가 있었고 그 많은 주제 중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름아닌 '성경'이었다. 본래 유아세례를 받고 미사를 꾸준히 참여했지만 하느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냥 다녔었다. 그런데 재수때 처음으로 하느님께 의지하고 싶었고 의지하고 싶은데 믿음이 부족해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당시 성당에 계셨던 신부님이 큰 도움을 주셨는데 참 신기한게 신부님과 따로 면담을 하거나 도움을 받은게 아닌데도 그 분의 존재만으로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변화했다. 하느님이 마치 옆에 살아계시듯이 하느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대하듯 하느님을 생각하고 사랑하시는 모습이 너무 인상갚었다. 처음으로 "저 성단위에 계신 신부님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내어드리는데 나라고 일개 평신도가 되지 못할게 뭐가있나."라는 생각을 했고 나도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하느님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난날 좀 더 잘 살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지금이라도 내가 주님을 알고자했으니 난 뭘하든 다 잘 해낼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겼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그 순간 지녔던 순수한 기대와 열정이 생각난다. 그렇게 멘토링 수업을 받으면서 선생님은 인생을 살면서 '멘토'를 가지는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고 그 멘토를 성경에서 찾아보자고 제안하셨다.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고 멋지다고 생각한 인물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셉'성인이다. "꿈쟁이"라고 불리던 요셉은 영민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탓에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로 겨우 죽을 위기를 모면하고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간다. 이집트로 간 요셉은 또 거기서 모함을 받고 수감되어 옥살이를 한다. 후에 꿈 해석 능력과 총명함으로 결국 이집트(애굽)의 총리가 되는데 그래서 그는 인생역전의 대명사로 줄곧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가 눈에 들어온것은 그의 인생역전함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놀랐던 부분은 그가 옥살이하던 중에 고난의 날에도 하느님께 기도하고 청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억울한 인생인데, 억울한 옥살인데 어떻게 주님과 계속해서 친할수가 있지? 어떻게 계속해서 주님께 기도하고 청할 수 있는거지? 어떻게 불평, 불만하지 않을 수 있는거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라는 물음이 가득했고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에 놀라웠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고난의 순간에서도 주님께 불평, 불만하지 않고 한결같이 기도하고 청할 수 있는 믿음과 인성이 내가 그를 멘토로 삼고 싶고 요셉 성인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물론 지금도 변함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학생 초반에 지녔던 진짜 내가 원하던 것들이 흐릿해져갔다. 대학생 초기때 모습을 부모님이랑 동생에게 물으면 "그때는 천사였다"고 한다. "그럼 지금은 아니야?"라고 물으면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때는 말투부터가 완전 달랐어."라고 답한다. 내가 뭐가 달라진걸까..그냥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데 뭔가 나도 내가 어느순간 무언가를 놓쳤다는 느낌이 들고 그게 뭔지 너무 오래되어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항상 최선을 다했다. 주어진 일에. 학교수업, 과제, 시험, 멘토링수업, 대학교 청년성서모임에도 학교대표로 부대봉활동까지 하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너무 열심히만 살아서 그런걸까,,너무 나대로만 살아서 그런걸까,,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탓(?)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무언가 열정은 넘치고 이걸 가장 나랑 맞는 방식으로, 건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게 시험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험이 나의 적성에 맞는지 내가 진짜 이 일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너무 갑자기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앞만 보고 달렸다. 


생각은 사치라고 생각헤서 생각을 줄였고, 혹시라도 감정소모 할까봐 노래도 가까이 안하고 들어도 가볍고 통통튀는 노래만 골라들었다. 조금의 감정 기복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그렇게 살았다.


깨달은게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할수록, 일을 열심히 할수록 나도 모르게 중요한걸 놓치고 변할수 있다는 것을. 열심히 공부할수록 욕심이 생겼다. 성공하고 싶고, 돋보이고 싶고, 뒤쳐지기 싫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잘나가고 싶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다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내가 재수를 결심했을때 지녔던 본연의 마음이 어느순간 사라져버렸다.


현실적인 것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맞고 성실하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왔다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다만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고 열심히 살고자 너무 그것에만 치열하게 노력했더니 

예전에 간절히 지녔던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너무 잊고있었고

오늘 정말 갑자기 그리고 간만에 지난날의 나를 꺼내본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이제는 10년 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10년의 세월'이라는 의미를 궁금해했을 때의 그 호기심가득한 마음은 남아있지 않다. 그냥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이젠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까?


10년, 20년, 30년 후에 중년이 되어서 노년이 되어서 늙어서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되어야할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차를 몰고 유명해지고 인정받으면

그대로 잘 살았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을까?


만약 시험에 떨어지고 돈을 조금밖에 못 벌고 좋은 차를 못 몰고 지나가는 행인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진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난 나를 너무 잊고 살았다.


초등학교 고학년때 영어학원에서 정말 멋진 선생님을 뵈었다. 원래 서울에 사시는데 지방까지 내려와서 학원 강사를 하신 걸 보면 정말 신기한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학원 면접(?)을 보러 오신거고 그때 나와 친구가 선생님을 보자 달려나가서 '우리 선생님이 되어주세요'하고 엥긴것이 귀여워서 두 학원 중에 고민하다 이 학원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2년 정도 영어를 가르쳐 주셨는데 사실 배운 내용이 잘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냥 학생들이랑 친구같이 진짜 같은 초등학생같이 잘 놀아주고 뭔가 되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이 귀감이 되었고 나도 10년 후에는 저런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당시 선생님은 아주 큰 꿈을 가지고 계셨고 후에 유학을 가셨는데 자신의 인생을 멀리 바라보고 자신이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큰 꿈을 마음에 품고 계획하고 나아가는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멋지시다. 언제나 응원하고 무엇을 하시든지 잘 하고 잘 살고 계실 거라고 믿는다.


아마 그분이 나의 첫 번째 멘토가 아니었다 싶다. 

처음으로 하느님 앞에 무릎꿇고 "저도 10년 뒤에는 그 선생님처럼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내가 그런 사람을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사람이 되길 무엇보다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성모상 앞에서 기도손으로 간절히 바라던 때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 꿈을 이뤄주셨다. 나는 지금 내가 정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일상이 되고 당연해서 기도가 이뤄진것을 감사해하지 않을 만큼. 진짜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되고 싶은 어른이란 이런 차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나는 다시금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딱 떠오르는 생각은 나는 우리 부모님같은, 특히 우리 엄마같은(아빠도 배울점이 많지만 뭔가 엄마가 독보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는 자기애가 정말 강하시다. 항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은거라고 생각하시고 모든 상황에서 좋은 부분을 명확히 발견하신다. 힘들고 나쁜 상황속에서도 그럼에도 다행인부분,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가져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인지하시고 항상 비판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신다. 나의 일에 대해서 엄마와 의논하고 엄마가 나를 대할때 엄마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어둠 속에서 특히 반짝이는 보석같은 존재. 엄마가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욕하거나 불평, 불만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살아있는 성요셉과 같은 분이 바로 내 가까이 계신 엄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가장 큰 자랑이면서 따라가기에 너무 벅차다고 생각되는 존재다. 


나도 내 인생을 그렇게 디자인하고 살아가고 싶다. 나를 항상 아끼면서 나를 가장 소중히 생각하고 내가 가진것, 나에게 주어진 것이 가장 좋은것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삶. 내가 가장 귀하고 스스로 귀하게 여기면서 현명하고 행복하게 사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뒤쳐지는 느낌이 들때마다, 좌절하고 싶고, 무너지고 싶을때마다 엄마가 아빠가 나를 대하고 나를 생각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를 이렇게 대해야 겠다 하고 다시금 마음을 잡는다. 지금이 내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배우는 과정인것 같다. 그리고 주님은 항상 나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고 나를 나보다도 더 사랑하시니 성요셉과 같이 어느순간에나, 힘들때나 기쁠때나 주님께 기도하고 한결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내가 성요셉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일 수도 있으니. 내가 그를 멋지다고 생각한것이 그가 이룬 업적이 아니라 그가 끝없는 고난과 역경의 순간 속에서 지녔던 한결같고 신실한 믿음과 기도였다는 것을 기억해야지. 그리고 나 스스로도 정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라는 것을 몸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고 내가 멘토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성정을 가진 어른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해야지.


살아가면서, 성장하면서, 이뤄가면서 잃지 말아야할것이 있다.

내가 나인것, 어려울 때 나를 지켜주고 도움을 준 은혜, 내가 있기에 세상이 있다는 자기사랑.


어떤 사람이 되든,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고 한결같은 올곧은 마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기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선하야.   




                                                                                                                             (play list. 내 맘에 오시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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