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소녀의 삶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똑똑똑
시간이 되면 들려오는,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얼마 전에 간호사에게 쫓겨났던 소년이 창문 밖에서 씨익 웃고 있었다.
끼익
그러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창문을 열고, 그 좁은 틈새로 재주 좋게 비집고 들어왔다.
"안녕. 오늘도 좋은 아침이야."
"지금은 이미 낮인데."
"그런가? 그래도 인사에는 아침이 들어가야지."
자기 혼자 중얼거린 말에 소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하고 앉는다.
그 당당함에 소녀는 황담함을 느꼈지만, 굳이 티를 내지 않고 옆에 앉은 소년을 무시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눈은 펼친 책이 아니라, 옆에 앉아있는 소년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내가 밖에서 풍뎅이를 잡았는데 말이야..."
그날 이후로 소년은 소녀의 병실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찾아와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걸 자랑하려고 간호사한테 가져갔더니, 간호사가 당장 버리라고 기겁을 하는 거야~"
소녀는 침대에 앉아 관심 없는 척 책을 읽으면서도 소년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당연히 소년이 방에 찾아온 후로는 책은 한 장도 넘어가지 않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소년도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알고 봤더니, 내가 잡은 게 풍뎅이가 아니라 바퀴벌레라는 거야. 원래 바퀴벌레는 요만한 벌레 아닌가? 내가 잡은 건 엄청 컸다고."
오늘도 바보 같은 이야기였다.
며칠 동안 이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항상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조금 상식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세상에 바퀴벌레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일부러 놀라게 하려고 가져간 거잖아."
"아니야. 진짜 몰랐다니까? 막 크기가 내 손가락 두 개만 했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소년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여주는데,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것 치고는 새하얀 손이었다. 게다가 가늘고 길었다.
만약 손만 봤다면, 여자 손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버리러 갔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이 경험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년.
소년의 이야기는 영양가가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내가 읽는 책하고는 다르게 얻을 수 있는 지식도,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애당초 정말 싫었다면 창문을 열어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저렇게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찾아왔을 때는 정말 놀랐지만...
아니지, 두 번째 찾아왔을 때도 정말 놀랐었다.
그렇게 쫓겨났는데, 또다시 창문으로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
소녀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는 소년에게 창문을 열어준 것은, 그렇게까지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너무나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호기심에 평소에 모든 일에 조심히 행동하라고 했던 엄마의 말을 처음으로 어기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소녀는 이 병실에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었으니까.
어제 있던 일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침대 밑에 숨은 사실을 왜 일렀냐고 화를 내려나?
"안녕. 좋은 아침이야."
하지만, 소년이 뱉은 말은 인사였다.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마치 기계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인사를 하는 것 같은 어색한 인사였다.
"어... 안녕."
그렇지. 원래 사람이 만나면 인사를 해야지.
아무래도 너무 오랫동안 같은 또래를 안 만나서 그런가, 잠시 그런 기본조차 잊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인사 이후에 나온 내용은 역시나 기대하고는 달랐다.
"오늘 밥을 먹고 있는데 말이야."
갑자기 시작된 자기 이야기.
소녀는 갑작스러운 전개에 자기가 잠시 졸았나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소년은 자연스럽게, 정말 두 사람이 오래된 친구라도 된다는 듯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화를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년만 이야기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는 자기소개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소년의 이름을 몰랐다.
그리고 당연히 소년도 소녀의 이름을 몰랐다.
이름도. 나이도. 어디에서 살았는지.
그리고... 어떤 병으로 소녀가 이 방에 머물고 있는지.
소년은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오늘 경험했던,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을 떠들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낮이 되면 창문으로 찾아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사라지는 기행이 벌써 1주일이나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야!!! 이 녀석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여성의 고함소리에 소년이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아마, 이 소년을 찾기 위해 병동을 돌아다니는 간호사일 것이다.
벌써 1주일이나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난 이만 가볼게. 내일 보자."
"어. 그래..."
소년은 놀랍게도 문이 아닌, 들어왔던 창문으로 재주 좋게 기어나간 뒤, 나무를 타고 폴짝 뛰어내렸다.
"야!!! 거기 안 서?!"
간호사가 이미 소년이 도망친 것을 눈치챈 것인지,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이 소란스러움이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입가에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아침마다 찾아와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의사도.
이제는 지침에 익숙해져 버린 부모님의 표정도.
아직 어린 소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에게서는 그런 표정도, 기색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소녀에게는 굉장히 큰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내일... 또 보자..."
그렇기에 어느샌가, 지금 이 시간이 소녀에게 있어, 하루 중 제일 기대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