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1. 구름에 달 가듯이? -1

by 소라게




종아리로 스멀스멀 기어오른 것은 바퀴벌레였다. 기름진 등판 밑으로 여러 개의 다리가 바삐 움직인다. 그걸 보고 있자니, 머릿속 어딘가가 뚝 끊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집에 가고 싶다.


몇 번째 이 생각을 하는 건지 이젠 세기도 지친다. 차라리 이대로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가 되고 싶다. 돌멩이가 되면 이 무더위도, 짜증도, 냄새도, 피로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자꾸만 되감기는 이 질문도 멈추겠지.


대체, 나는, 왜?


중국의 쿤밍과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을 잇는 슬리핑 버스는 14시간째 달리고 있다. 실은 2시간 전부터 멈춘 뒤론 꼼짝할 기미가 없다. 출발한 뒤로 걸핏하면 서서 1시간씩 쉬고 있으니, 실제 주행 시간은 절반을 겨우 넘길까 말까. 게다가 말이 슬리핑 버스지, 내부는 닭장이나 다름없다.


중고 버스에 이층 침대를 3줄씩 놓아두고, 틈새마다 잡동사니를 잔뜩 쑤셔 넣어 정체불명의 눅눅한 냄새가 진동한다. 얼룩진 시트에 닿지 않으려고 열대 무더위에 긴팔과 모자까지 뒤집어쓴 나는 지금 절박하다. 하지만 이미 탄 버스를 무를 수도 없다. 그러니 그저 견딜 밖에. 부디 날이 저물기 전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하기만 바랄 뿐이다.


푹푹 찌는 버스 안은 텅 비었다. 버스에서 내리던 현지인 몇몇이 내게 손짓으로 먹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나는 배 아픈 시늉을 하며 고개만 가로저었다. 뭘 먹으면 화장실에 가야 할 텐데, 바깥 풍경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 화장실 위생에 뭔가 기대할 만한 상황은 결코 아니지 싶다.


차창 풍경은 절절 끓어오르는 화염의 색이다. 무성한 녹음마저도 짙푸르게 타오른다. 보고만 있어도 덥다. 그만 생각하자. 생각하는 것부터가 덥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고된데.


대체, 나는, 왜?


지겨운 의문이 또 혀끝에서 되감긴다.




공교롭게도, 한국을 떠난 날은 3월 1일이었다.

선조들이 외세로부터의 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날. 나는 현실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중국 텐진항으로 입항하는 국제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15킬로가 넘는 배낭과 나란히 3등 객실의 침대에 앉아 제일 먼저 한 일은 ‘잠자기’였다. 전날 저녁부터 인천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잠 한숨 못 잤다.


“가서 꼭 너 같은 놈들이랑 어디 실컷 어울려 봐라.” 라던 악담인지 배웅인지 헷갈리는 부모님과의 마지막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덩달아 나 몰라라 내던지고 온 현실이 그 위에다 으스스한 화음을 얹고 있었고. 그게 어떤 현실인지는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자.


한바탕 자고 난 뒤에는, 거대한 여객선 내부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갑판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망망대해의 먼 어둠을 멍하니 응시하기도 했다. 배 안은 육지와 분리된 또 하나의 세계였다.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특유의 술렁이는 공기는 내게로 옮아와 설렘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천진난만한 설렘은 톈진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막을 내렸다.


일이 꼬인 것은 중국 땅에 갓 발을 디딘 순간부터였다. 텐진의 기차 시간표를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나는 예정에 없던 베이징으로 가야 했다. 대도시는 피할 작정이어서 가이드북도, 기초 지식도 없이 덜렁 베이징 한복판에 떨어진 나는 공황상태가 됐다. 그러니까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제로(0)로 리셋돼버린 것이다.


그때부터의 중국 여행은 고문이었다. 네팔로 서둘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중국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중국에서의 지낸 보름간, 체중이 5kg이나 빠졌다.


20대 초반에 여행한 인도와 유럽도 이 정도로 생소하지 않았는데. 정작 바로 옆 나라인 중국은 지구 반대편 나라보다 더 낯설어 위화감마저 들었다. 한자에 대해선 까막눈보다 못한 내게 거리 가득한 한문 간판은 있으나마나였다. 아는 중국어는 간단한 인사말뿐이라, 누군가를 붙잡고 인사 이상의 뭘 물어보려 해도 상대는 간단한 영어 인사조차 소통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난 같은 길을 몇 번이고 헤매다 지쳐 숙소로 후퇴해 패잔병 같은 몰골로 잠들기 일쑤였다.


꿈속이라고 편했을 리 없다. 매일 밤을 침대 속에 웅크려 악몽과 싸웠다. 하룻밤 새 누구 하나 사라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중국의 거대함에 납작하게 짓눌려 부서질까 봐 두려웠다. 내가 꼭 난파선처럼 느껴졌다. 대양을 철저히 홀로 헤매는 침몰 직전의 난파선.


일일이 다 늘어놓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은 중국에 대한 나의 대책 없는 무지였다. ‘중국’하면 따라붙는 수식어 ‘광활함’과 몸소 겪는 ‘광활함’의 간극은 엄청났다.


지역 간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소통의 불능이야말로 중국 여행의 최대 난관이었다. 아무리 내가 중국어라곤 니하오 밖에 모른다지만, 그마저 안 통하는 지역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중국은 별개 언어를 쓰는 소수 민족만도 70여 개가 넘는다는 사실은 중국 여행을 다 마친 후에야 알게 된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중국의 마지막 여행지 쿤밍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쿤밍에서는 ‘차화빈관’이라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는데, 여길 찾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원래는 터미널과 가까운 근처 여관에 묵을 생각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했다며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르질 않나(리모델링해서 나더러 뭘 어쩌라고?), 차선책으로 봐 둔 다른 숙소는 아예 없어진 상태였다.


별 수 없이 최후의 선택지로 남겨둔 차화빈관까지 가야 했다. 하지만 버스를 타자니 엉뚱한 곳에 내릴까 무섭고, 택시를 타자니 그동안 바가지를 쓴 전적이 심히 화려하여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15kg 배낭을 멘 채, 차화빈관까지 꾸역꾸역 걸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날 하루만 체중의 1kg은 가볍게 날아갔을 거다.


도착한 첫날부터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쿤밍은 나와 상성이 맞지 않았다. 봄의 고도(古都)란 별명에 기대를 걸었지만, 옛 쿤밍은 시대변화의 노도에 밀려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고풍은커녕, 대도시 저만 가라 할 미끈한 빌딩들이 대로변마다 즐비했다. 그리고 여느 도시들처럼 화려함의 그늘 속엔 비루먹고 슬픈 것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빌딩들이 점령한 거리로부터 몇 발자국만 벗어나면, 쿤밍의 모습은 완전히 돌변했다. 눈부신 빌딩들은 흔적 없고,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골목 안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지어진 지 수십 년은 된, 보수도 공사 마무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서민 아파트들. 베란다에 널린 낡은 옷가지와 건물 외벽을 변색시킨 싯누런 녹물에서는 남루함이 버젓이 드러났다. 불투명하고 육중한 압력에 억눌린 듯한 사람들의 무표정은 발전이란 명목의 무자비한 현대화 저변에서 가파르게 마모되고 도태되는 삶의 표상이었다.


도시의 허공 곳곳엔 그들을 감시하듯 붉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어둡고 농밀한 광기로 번들거리는 필체는 폭력적인 기세를 내뿜었다. 이따금 뉴스를 통해 본 북한의 풍경에서 간혹 저런 느낌의 선전문구를 본 것도 같았다.


나는 괜히 목이 움츠러들고 숨통이 조여와, 현수막 밑을 지날 때면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단순히 거리를 걷기만 해도 이런 압박감을 느낄 줄이야.


일정이 자유로운 나는 여행 비자 기간이 허락하는 한 쿤밍에서 쭉 머물다 다음 나라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틀째만에 마음을 바꿔 다음으로 향할 나라를 결정하고 비자가 나오는 즉시 중국을 떠나기로 했다.

내 여행의 최종 목표는 네팔에서의 장기체류다. 그러나 네팔까지 가는 경로는 전부 미정이다. 여정을 지도라고 한다면, 큼직한 랜드마크만 정해두고 각 랜드마크를 잇는 경로는 자유롭게 고르는 것이 내 여행 방식이다.


중국에서 네팔로 향하는 (태국을 포함한) 경유국에 대해서는 베트남과 라오스를 두고 고심했다. 여행의 최종 목적은 네팔에서의 장기체류다. 하지만 네팔까지 가는 경로는 전부 미정이었다.

베트남을 거치면 태국까지 다소 우회하는 대신, 캄보디아를 거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라오스는 보다 쉽게 태국에 진입할 수 있고, 일단 유난히 이국적인 어감에서 베트남보다는 더 강한 매력을 느꼈다.


나는 이 둘 사이에서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라오스를 선택했다. 결정의 이유는 단순했다. 라오스 영사관 주소가 차화빈관 주소와 같았던 것. 더는 도저히 어딜 신나게 나다닐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영사관을 찾느라 3일이나 차화빈관 인근 거리를 우왕좌왕했다. 라오스 국기가 걸린 건물을 찾아내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다녔지만 거리 어디에도 라오스 국기 비슷한 헝겊 조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서툰 손짓 발짓으로 나마 열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열 사람 죄다 다른 곳을 가리켰다. 한국에서 스크립 해온 가이드북 쿤밍 섹션은 일치하지 않는 정보가 많았다. 2년 전 출판한 뒤, 개정만 거친 가이드북은 중국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가이드북 지도에는 없는 8차선 도로가 떡하니 뚫려있는가 하면, 기존의 숙소들은 재건축을 하거나 아예 사라진 경우도 많았다.


나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옮겨진 영사관의 위치가 누락된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았다. 물론 진짜 이유는 레이첼을 만나고서야 알았다. 라오스 영사관은 내가 헤매고 다니는 내내 차화빈관 게스트하우스 로비 구석 한켠 작은 사무실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첼은 자포자기한 채 아침이나 먹자고 나온 4일째 숙소 로비에서 만났다. 싱글 여행자가 으레 그렇듯, 그즈음 나도 자리만 있으면 낯선 사람과도 적당히 마주 보고 앉아 식사하며 수다를 떨 만큼 낯이 두꺼워진 참이었다.


딱 하나 남은 2인 테이블에 마주 앉은 우리는 가벼운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상하이 근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선생으로, 쿤밍에는 휴가차 와있는 중이었다. 나는 영어로라도 모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자 혀의 고삐가 풀려 그간의 고생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얼마나 숨도 안 쉬고 한풀이를 했는지, 식사가 끝날 무렵엔 목이 살짝 쉬었다. (그 하소연을 잠자코 다 들어준 레이첼에게 새삼 감사하다)


내 곤란한 사정을 들은 레이첼은 식사가 끝난 뒤, 유창한 북경어로 직접 로비 리셉션에 라오스 영사관의 위치를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직원의 답변을 들은 레이첼은 어리둥절하고도 놀란 표정을 한 채 말했다.


“영사관은 이 안에 있다는데?”

“… 어디 안에?”


처음엔 잘못 이해한 줄 알고 되물었다. 그러자 레이첼은 로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사무실 문 앞까지 날 직접 데려다주었다. 나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여기?! 내내 여기 있었다고?!”

“그랬다는데.”


난감해하면서도 애써 웃음을 삼키는 레이첼을 보니 말문이 턱 막혔다. 어떻게 상상이나 했을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영사관이 으리으리한 호텔도 아니고(그렇다 해도 이상하지만) 중급 게스트하우스 건물의 초라한 사무실 한 칸을 빌려 세 들어 있으리라고 말이다!


그간 내가 들인 수고는 다 헛수고였던 것이다. 사람이 어이없음의 정도가 지나치면 화가 나기보다 그냥 푸시식 허탈해지는 모양이다. 얼빠진 채, 털레털레 영사관 안으로 들어가 라오스 비자를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참 심사가 복잡했다. 4명 남짓한 사무실 직원 숫자도 그렇고, 정말로 정말로 좁은 내부도 그렇고……, 땅이 너무 커서 주체를 못 하는 중국에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이들이 차지하는 면적이 딱 저만큼이라니……, 마치 이토록 광활한 땅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쪼그라든 나 같아서 공연히 서글퍼지려 했다.


레이첼의 도움으로 라오스 비자 문제는 해결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중국을 떠날 준비가 마무리됐을 뿐, 정작 중국에서 지내는 현실은 첫날에 비해 나아진 게 없었다. 특히 중국 여정을 시작하면서부터 날 애먹인 문제가 그랬다.


바로 음식, 음식이 문제였다.


중국 내륙의 음식과 내 입맛의 궁합은 절망적이었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이국적인 음식에 대해 거부감이 크지 않은 편이다) 메뉴가 모조리 한자라서 어림짐작조차 할 수 없고, 종업원을 불러 물어본들 말이 통해야 말이지. 어쩌다 운 좋게 사진이 붙어있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뭐라도 시키면, 특유의 강렬한 향신료 때문에 내가 대체 무슨 재료의 음식을 시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또 윤리적인 이유는 아닌, 오직 입맛의 문제로 육식을 하지 않는 나라서, 행여 육고기가 든 음식을 시킬까 봐 식당에는 못 갔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가벼운 서양식 아침식사, 가게에서 산 빵이나 과자 따위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평상시에 그렇게 먹어도 살이 내릴 판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종일 걷는 여행 중에 그랬으니, 몸 상태가 어떻겠는가. 당연히 나날이 야위어 갔다.


맙소사. 야위다니.


욕실 거울에 몸을 비춰보면서도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희미하게 드러난 갈비뼈 밑으로 아랫배가 움푹 꺼지고, 혈색은 나날이 누렇게 떠 그야말로 환자의 낯빛이었다. 평생 체력 좋고 혈색 좋은 얼굴로 살았건만, 거울 속의 나는 낯설다 못해 그냥 다른 사람이었다. 자신만만함이 지나쳐 무던하기까지 하던 표정은 위축된 채 지치고 불안해 보였다. 잘 먹지 못한 눈동자는 흐리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 마디로 몰골이 처참했다.


사정이 이러니 결론은 뻔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땅을 뜨자.


신청한 라오스 비자는 3일 만에 발급되었다.




아까의 바퀴벌레는 이제 이층 침대 바닥, 즉 내 머리 위를 빨빨 기어가고 있다. 종아리에 있던 녀석을 진저리를 치며 떨쳐낸 뒤로 어디 갔는지 안 보여서 더 불안했는데, 어느새 저기 가 있었다. 나는 후닥닥 몸을 일으켜 비어있던 옆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러다 그만 발 밑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짐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몸이 휘청하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묵은 때로 얼룩진 침대의 시트가 슬로모션으로 시야에 들이닥친다. 나는 저 시궁창에 기어이 맨얼굴을 박고 마는 걸까……!


아찔한 그 순간,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나의 어깨를 잡아 일으킨다. 돌아간 고개 앞에 낯선 얼굴이 있다. 머리를 말끔히 뒤로 넘긴 이국의 남자다.


"You, ok?"


그가 묻는다.


남자는 동남아 특유의 억양이 섞인 영어로 자신을 29세의 사업가인 통 카오라고 소개했다. 미끈하고 넉살 좋은 미소는 확실히 사업가의 그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순한 눈동자는 그런 면모를 단숨에 그런 기색을 지운다.


“어쩌다 이런 곳을 혼자 여행해요?”


그가 묻는다. 나는 잠시 생각한다. 그러게. 어쩌다 나는 여기까지 왔을까?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카오의 고개를 슬쩍 기울어진다. 하지만 더 뭔가 묻지 않고 천진하게 웃으며 묻는다.


“많이 덥죠?”

“푹푹 찌네요. 그런데 대체 여기서 뭘 하느라 2시간이나 안 움직이는 거예요? 루앙프라방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아세요? 제때 도착할 수 있긴 한 건가?”


그의 탓이 아닌데도 불쑥 짜증이 치밀어 속사포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카오는 바깥을 향해 고개를 쭉 빼더니 말했다.


“내가 한번 가서 알아볼까요?”


알고 보니 천사셨네, 천사셨어.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 나는 사양도 않고 냉큼 답했다.


“네!”


카오는 산뜻하게 미소 짓더니 버스를 나갔다.

나는 그 사이 바퀴벌레가 사라진 원래의 내 침대 좌석에 벌렁 누웠다. 뭐라도 알 수 있다는 안도감이 너무 커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깜빡 졸다가 별안간 밖에서 들린 함성 소리에 벌떡 잠이 깼다.


카오는 물론이오, 승객들은 여태 돌아오지 않은 채다. 일부러 로밍을 하지 않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니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을 때로부터 30분 정도가 지나있다.


뭐 얼마나 힘든 걸 알아온다고 아직도 안 오지?

상황을 알아보겠다며 나간 카오마저 돌아오지 않자, 다시 불안이 고개를 든다. 혹시 큰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차창 밖을 내다봤다.


저만치 버스에서 약 15미터쯤 떨어진 곳의 휴게소(를 빙자한 가정집)에 버스 기사와 카오를 비롯한 몇몇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 무리의 미어캣 떼 마냥 모두 한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어째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싶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은 때때로 비슷한 타이밍에 다 같이 움찔거리거나, 이따금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놔.”


스포츠 경기 관람임이 틀림없다. 특히, 축구. 느낌상, 저건 높은 확률로 축구다.


기껏 알아오겠다며 나간 카오는 버스 기사 옆에서 더 열을 올리고 있다. 더운 지역의 느림에 대한 미학(…)은 익히 들어 알지만, 남의 일로 건너 들을 때나 미학이지, 직접 겪어보니 환장하겠다.


나는 체념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이로써 명확해진 것이다. 루앙프라방에 제시간에 도착하긴 글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늦어서 아침에 도착하는 편이 낫겠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이어폰에서 도리스 데이의 Que sera sera가 흐른다. 가사가 지금 심정과 찰떡이라 피실 피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래, 될 대로 되라지. 알 게 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