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름에 달 가듯이? -2
어둠이 깊은 새벽.
루앙프라방이 종착지인 슬리핑 버스의 승객의 남은 승객은 이제 나뿐이다. 짐들이 그득 실려 있던 틈새도 텅 비었다.
나는 창밖을 흐르는 어둠을 응시했다. 산길 커브 한복판에 장승처럼 서있던 거대 야생 코끼리의 출현으로 살 떨리는 급정거가 있었던 것, 도착 예정시간을 반나절이나 넘긴 것만 제하고는(?) 그럭저럭 순탄하다 볼 수 있는 여행길이 아닐까. 수년 전, 인도 여행 중에 탔던 슬리핑 버스에서는 승객 한 명이 간질발작을 일으켰다가 그대로 사망했고, 길에서 죽은 시신을 선뜻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시신을 버스 통로에 눕힌 채(하필 바로 내 옆 통로였다…) 4시간을 오롯이 병원만 찾아다녔다. 그것에 비하면야 양반이지.
휴대폰 시계는 새벽 2시 25분을 갓 넘기고 있다. 기사에게 언제 루앙프라방에 도착하느냐는 질문을 다섯 번쯤 했던 것 같다. 그는 ‘1시간 정도 더 가면 된다.’는 대답을 그만큼 되돌려주었고. 어릴 적 가족과 등산할 때, 언제 도착하냐는 질문에 ‘거의 다 왔다’고 거듭 거짓말(?) 하시던 부모님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부모님과 옛 생각에 애써 모른 척하던 향수병이 도지려는데, 문득 이질적인 냄새가 코끝에 물씬 끼친다. 젖은 흙내음이다. 차창 밖을 봤으나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나는 늘어져 있던 몸을 세우고 코를 벌름거렸다. 비가 오지 않는데 물 냄새라니. 갓 내린 맑은 빗물의 냄새가 아니라, 이것은 좀 더 원숙한…….
강. 강의 향기다.
이때, 내 기색을 알아차린 건지, 기사의 짧은 한 마디가 들려온다.
“메콩.”
메콩 강이 가까이 있다.
그렇다면 루앙프라방이 지척이란 뜻이다.
루앙프라방의 남(南) 터미널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드문드문 선 가로등이 습한 대기 속에서 부옇게 빛을 발하는 텅 빈 터미널은 을씨년스럽다. 나는 배낭을 짊어진 채, 터미널 중앙에 우두커니 서있다. 이렇게 늦게 도착할 줄 모르고 미리 숙소 예약을 하지 않은 채라 암담하다.
그때 뒤에서 소음에 가까운 경적 소리가 들렸다. 등 뒤로 시커먼 버스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멍하니 서있던 난 얼른 비켜나 대기용 의자가 놓인 보도블록 위로 올라섰다. 그제야 고요한 줄만 알았던 밤공기를 타고 희미하게 흐르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택시는커녕, 툭툭도 다니지 않는 야밤이니, 우선은 음악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누구라도 만나야 도움을 구하든 말든 할 테니까.
터미널을 벗어난 후로 한참을 걸었다. 그러나 20분이 넘도록 풀벌레 소리만 요란할 뿐, 인적은 전혀 없었다. 점점 불안이 엄습해온다. 더욱이 짊어진 배낭은 15kg이 아니라 150kg처럼 갈수록 무거워져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프고 땀은 비 오듯 흐른다. 하지만 30분쯤 지나자 멀리서 인가의 불빛이 보인다.
운 좋게도 불빛은 어느 게스트하우스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Pine Tree Guest house>란 이름을 통째로 자른 나무기둥 단면에 새긴 현판이 걸려 있으며, 프랑스 지배를 받던 식민지 시대 풍으로 지은 집이다.
정문까지 이어지는 야트막한 오르막을 히말라야라도 등반하는 심정으로 간신히 올랐다. 격자무늬 틀에 유리를 끼운 파인 트리의 나무 현관은 굳게 잠겨 있다. 불빛은 로비 안쪽의 간이등이었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고 힘껏 흔들었다. 물론 열릴 리가 없다.
결국 사람을 부르려고 막 입을 떼는데, 리셉션 카운터 너머에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킨다. 그를 보곤 입이 그만 떡 벌어졌다. 상대는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의 청년이다. 갓 샤워를 끝마친 건지, 물기에 젖은 뒷모습을 보자 숨이 턱 막힌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라 너무 당황해서 굳어 있는데, 정작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태연히 반바지를 주워 입고는 현관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많아야 이십 대 초반의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다. 문을 열고 옆에 서자 향긋한 비누 냄새가 은근히 풍겨온다. 순간 땀에 전 채로 만 하루 동안 씻기는 둘째 치고, 화장실에 가야 할까 봐 물 한 방울 가까이하지 않는 스스로가 몹시도 신경 쓰인다.
청년은 들어 오라며 로비로 되돌아간다. 나는 최대한 그와 먼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갓 칠을 마친 듯 보이는 목조 건물 내부가 온통 매끄럽게 빛난다. 새로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인 모양이다.
리셉션 카운터로 들어간 청년이 숙박부를 꺼냈다.
“어떤 방으로 드릴까요?”
나직한 저음의 목소리마저 근사하다. 나는 빨리 체크인을 마치고 말끔한 그의 눈앞(정확히는 코앞)에서 사라지고픈 마음에 냉큼 대꾸했다.
“깨끗하고, 온수가 나오는 방이면 어디든 상관없어요.”
빙긋 웃는 청년의 한쪽 뺨에 보조개가 옴폭 파인다.
“이쪽으로 오세요.”
청년이 안내한 방은 리셉션에서 가장 가까운 1층 객실이다. 객실은 요청대로 말끔하고 시원하다. 널찍한 더블 침대와 간이 테이블, 소파와 TV, 장식장에 목욕가운이 걸린 붙박이장까지.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이 방으로 하시겠어요?”
“네.”
숙박료는 쿤밍에서 미리 조사해둔 것의 2배였다. 순간 바가지를 씌우려는 건가 싶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정도 가격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청년이 대꾸한다.
“곧 쏭크란이거든요. 성수기죠.”
쏭크란? 그게 뭐야? 어리둥절해하는데, 그가 설명을 덧붙인다.
“라오스의 신년 축제요.”
“라오스는 신년이 양력 4월인가요?”
“그렇죠.”
신기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곤 말했다. 어차피 더 헤맬 여력도 없다.
“이 방으로 할게요.”
“숙박계를 작성해주세요.”
나는 청년에게 여권을 건네주었다. 여권을 받아 든 청년이 문득 묻는다.
“어떻게 읽어요?”
청년이 볼펜 끝으로 가리킨 것은 내 이름이다.
“윤 재인, 윤이 성이고 재인이 이름이죠.”
“재인. 윤 재인.”
입안에서 내 이름을 굴리며 미소 짓는 청년의 뺨에 볼우물이 파인다.
객실로 돌아와 배낭을 침대에 던지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수도꼭지를 비틀자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 나는 입은 옷을 훌훌 벗어던진 뒤, 욕조에 들어가 누웠다.
뜨끈한 물이 피부에 닿자,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잔뜩 두드려 맞은 듯, 납작하게 수축됐던 근육이 빠르게 이완된다. 생각보다 물이 뜨거워 표피가 따끔따끔한데도 그냥 버텼다. 사실 버텼다기보다는 몸을 일으킬 기운이 없다.
목욕을 마치니, 기분이 한결 가볍다. 하지만 노곤노곤 피로가 풀려난 몸은 한껏 늘어진다. 앞으로 1박 2일은 꼼짝 않고 죽은 듯이 잠만 잘 테다. 침대 위를 나뒹구는 배낭 머리를 열고 그대로 거꾸로 들었다. 배낭 속 물건들이 두서없이 와르르 쏟아진다.
쏟아진 물건들 중 적당히 필요한 것들(휴대폰, 이어폰 등)만 집어 들곤 나머지는 발로 슥슥 한쪽으로 밀었다. 몸을 누일 자리가 생기자마자 매트리스 위로 몸을 던졌다. 매트리스가 출렁출렁 물결친다.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어 어어어 어…….”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흐른다. 끈적한 졸음이 꿀처럼 뚝뚝 떨어진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보드라운 재즈를 재생하자, 따뜻한 물속에 잠긴 듯하다. 문득 이런 안정감을 너무나 오랜만에 느낀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까무룩 잠들기 전, 정신이 차려지는 대로 당장 숙소도 옮기리라 다짐했다. 아무리 머릴 굴려도, 잘생긴 프런트 청년에게 땀에 절고 씻지 못한 첫인상을 만회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날 밤 새벽 5시쯤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아침 8시다. 그런데 달랑 3시간 잤다고 하기에는 희한하게 몸이 가뿐하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시계를 확인해보니(로밍하지 않은 휴대폰은 거의 시계, 오디오 플레이어, 전자책 독서용, 카메라 및 기록용으로 쓰고 있다) 날짜가 하루 더 지났다.
세상에, 하루를 꼬박 침대에서 기절해버리다니. 어지간히 피곤하긴 했나 보다. 이틀씩 철야작업을 하고도 반나절 이상 자본 적이 없는데 거기다 꼬박 하루를 아무것도 먹지 못해 에너지는 완전히 방전 상태다.
꾸역꾸역 일어나 눈곱만 대충 떼고 방을 나왔다. 습하고 시원한 아침 공기가 몸을 가득 채운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프런트로 가 상황을 살폈다. 로비에는 청소 중인 직원 한 명이 보이고, 프런트엔 우아한 분위기의 여주인이 서있다. 다행이다. 그 청년은 밤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나 보다.
"일어나셨군요."
나를 본 그녀가 화사하게 웃는다. 식민지 시대 풍 건물 속 전통복 씬 차림의 그녀는 옛 영화의 주인공 같다.
“뭐 필요한 건 없나요?”
"아침식사요."
“이 건물 밖으로 나가시면 바로 옆에 별채가 있어요. 식사는 그곳에서 한답니다."
숙소 밖으로 나왔다. 밖은 짙은 안개가 가라앉아 있었다. 잠시 서서 시내가 어디쯤일까 방향을 가늠해보다가 별채로 향했다.
별채는 두 벽면이 전부 접이식 문인 깨끗하고 널찍한 공간이다. 탁 트인 시야가 마음에 들어, 접이식 문 바로 앞의 테이블에 앉았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뿐이다. 높이 걸린 TV에서는 한창 라오스 뉴스가 방송되는 중이다.
"아침식사드려요?”
낯선 언어가 신기해서 화면에 열중해 있다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돌아보니 웬 여자가 부엌에서 머리만 내민 채 이쪽을 보고 있다. 그렇다고 답하자, 여자는 메뉴를 묻지 않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침 식사는 간소하게 차려져 나왔다. 갓 구운 토스트 두 조각과 딸기잼, 스크램블 에그, 시럽을 뿌린 구운 바나나 한쪽, 그리고 커피다. 하지만 바라마지 않던 식사다. 중국에서 음식 문제로 하도 호되게 당하는 바람에, 차라리 아는 음식이 나와줘야 고맙다.
삽시간에 야무지게 아침을 해치운 나는 만족스럽게 냅킨으로 입을 닦고 일어섰다. 아직도 식당엔 사람이 나뿐이다. 어쩌면 손님은 나 하나뿐인지도 모르겠다.
방으로 돌아와 어지럽게 널린 짐을 정리했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버릴 것과 아닌 것을 구분했다. 3월의 중국은 몹시 추웠지만, 라오스부터는 쭉 더울 예정이므로 긴 옷들은 전부 두고 가기로 했다.
부피가 큰 옷들을 빼니, 배낭이 훨씬 여유롭다. 버릴 옷들은 곱게 개켜 화장대 위에 놓아두었다. 다시 꾸린 배낭을 메보니 그래도 무겁다. 아무렴, 오랫동안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작정으로 짊어지고 나올 수 있는 건 전부 짊어지고 나왔으니 당연하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가자, 프런트에 앉아있던 여주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떠나시게요?”
"네."
"어디로 가세요? 위앙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시내로 들어가려고요."
여주인의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저희 게스트하우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그런 건 아니고, 다만 시내에서 볼 일이 있어서요."
사실 여기 위치는 시내와 멀어도 너무 멀다…….
"그러시군요."
여주인은 더는 묻지 않았다. 체크아웃은 순조로웠고, 친절한 그녀는 툭툭을 미리 불러주었다. 툭툭을 타고서 루앙프라방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한참이나 달린다. 루앙프라방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큰 도로의 중앙분리대엔 야자수가 즐비하고, 듬성듬성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바쁜 일 없이 느긋하다. 그러나 차 꽁무니가 뿜는 매연은 여기가 나름의 도시임을 실감하게 한다.
위앙짠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옛 수도였다고 들었다. 나는 코끝으로 스미는 먼지 냄새를 맡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디에선가 해묵은 흙냄새가 섞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