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름에 달 가듯이? - 3
이른 아침의 씨싸왕웡(Sisavang Vong)거리는 한가롭다.
곳곳의 고색창연한 사원은 선명한 햇살 아래 고요한 명상에 잠겨 있다. 게스트하우스와 호텔 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한 사람들의 부지런함이 거리의 활기를 채워 올린다.
적당한 곳에 내린 나는 배낭을 멘 채 씨싸왕웡의 메인 스트리트를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각오는 했지만 지금 형편에 맞는 숙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객실요금이 살인적이다. 몇몇 숙소는 가격을 듣자마자 바로 돌아 나왔다. 과연 성수기는 성수기라고 해야 하나. 태국으로 갈 방법을 찾기 쉽게 메인 스트리트에 머무르려던 계획은 접어야 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예 메콩 근처에 숙소를 잡아 강 구경이나 실컷 하는 편이 낫겠다.
메콩은 씨싸왕웡 거리의 뒤편을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가 둔덕에는 그윽한 운치의 야외 카페들이 늘어서고, 둔덕 안쪽에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늘어서 있다.
사진과 영상으로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메콩 강의 색은 정말로 붉다. 사실 강의 색은 어떻다,라고 딱 정해 이야기할 순 없지만, 저런 빛깔의 강은 처음 본다. 게다가 붉은 메콩강을 둘러싼 온통 짙푸른 열대우림 때문에 메콩강변의 풍경은 그린 듯 아름답기보다 휘갈긴 듯 강렬하다.
강가의 풍경이 마음에 쏙 들어, 강이 바로 바라다보이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해바라기 색 페인트에 짙은 갈색 창틀로 장식한 (난데없는) 스위스풍 건물이다. 몽당연필 모양의 하얀 판자가 촘촘히 세워진 울타리가 건물 주위를 둘러쌌다.
여기는 또 리버뷰랍시고 값이 비싸다. 그래도 메인 스트리트의 숙소들만큼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다. 더욱이 더는 짐을 메고 걸을 힘이 없다. 나는 군말 않고 체크인했다. 프런트의 직원은 기껏해야 10대 후반 정도의 소녀다. 어설픈 화장이 앳된 얼굴과 따로 노는데, 그게 또 그것대로 귀엽다.
"며칠 묵으시겠어요?"
"일주일요. 확실하진 않으니까 4일 분은 선불로 낼게요.”
체크인 절차를 마치자, 직원이 나를 2층으로 안내했다.
2층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과 벽엔 라오스 전통 물품으로 짐작되는 빈티지 장식들이 걸려 있어 멋스럽다. 식민지풍과 라오스 고유의 분위기가 공존하는 객실은 널찍하고 아름답다.
가구는 오래됐으나 운치가 있다. 나는 커튼을 걷고 창을 열었다. 내가 들어온 골목길이 곧바로 내려다보이고, 왼편으로 비스듬히 메콩이 보인다. 창밖으로 몸을 쭉 내밀자, 강 내음이 훅 끼친다. 나는 가슴이 뻐근해질 때까지 숨을 가득 들이켰다가, 길게 내쉬었다.
씻고서 한숨 자고 나니 오후다. 천장에서는 거대한 팬이 돌고 있다. 에어컨은 일부러 켜지 않았더니 몸은 씻은 것이 무색하게도 그새 옅은 땀에 젖어 습하다.
작은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한낮의 씨싸왕웡은 오수를 즐기거나, 거리를 바라보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느긋이 맥주 한 잔을 즐기는 태평함이 있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 보니, 라오스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고는 나라 이름과 베트남 전쟁 전에는 베트남과 같은 나라였다는 것뿐이다. 이곳의 주식이 밥인지 빵인지 면인지도 알 턱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현지 음식에 꼭 연연하기 않기로 했다. 그것 좀 해보려다 중국에서 했던 고생만 생각하면 이가 갈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눈에 띈 식당으로 들어갔다. 원형 테이블의 위에 깔린 새하얀 식탁보가 눈부셨다. 내부는 진한 빛깔의 옻나무로 꾸며졌다. 바깥 테이블에 앉을까 하다가 볕이 너무 따가워 그늘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리가 잘 내다보이는 자리를 골라 앉으니 종업원이 다가와 메뉴를 내민다. 메뉴판을 펼치자 낯설 배열의 알파벳들이 튀어나온다. 프랑스어다.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과거가 이토록 오랜 세월 후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걸까? 아니면 한국 유명 관광지 인근 식당에 가거든 으레 나오는 일본어/중국어 메뉴판 같은 걸까?
영어 메뉴는 프랑스어 메뉴 뒤에 있었다. (라오스어로 된 메뉴는 없었다…) 메뉴엔 통 모를 말뿐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재료들이 수두룩하다. 고민 끝에 껍질콩과 양파를 주재료로 조리한 음식으로 결정했다. STIR-FRIED 어쩌고 하는 걸 보니까 볶은 음식인 것 같다. 맥주도 함께 주문했다.
수첩에 끼적거린 일기와 문장을 노트북 화면으로 옮기고 있자니 맥주가 먼저 나온다. 라벨에 <bearlao>라고 쓰인 토산 맥주다. 콧구멍을 틀어막는 동남아의 더위에 슬슬 지치던 참이라 맥주부터 한 모금 가득 들이켰다. 차갑게 입안을 가득 채웠다가 쏴하니 목으로 넘어가는 탄산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맥주가 반쯤 비워졌을 즈음 요리가 나왔다. 껍질콩을 간장과 비슷한 빛깔의 소스로 볶은 것이다. 그 위에는 잘게 다진 땅콩을 뿌렸다. 딱 봐도 술안주(?)다. 야채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서 망설임 없이 껍질콩 하나를 입에 넣었다. 소스 맛은 짜고 시고, 좌우지간 희한하다. 역시나 짐작이 옳았다. 이건 술안주다.
오후는 갈수록 뜨거워진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됐지만, 정말로 해가 뜨거운 시각은 해가 중천인 정오가 아니라, 땅이 달아오를 만큼 달아오른 오후 3-4시 무렵이더라.
나는 햇볕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조금씩 비켜나며 노트북 작업을 계속했다. 한국에서 떠나오기 몇 달 전부터 쓰기 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다. 주인공은 허구의 배경 속에서 나와 같이 이제 막 모험을 시작한 참이다. 그 아이가 제대로 모험을 끝낼 수 있을지, 나는 나의 모험을 완전히 끝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단은 손이 가는 대로, 발이 향하는 대로 가보기로 한다.
저녁 7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날이 채 저물지 않았지만, 시원하고 그늘진 방이 그리웠다. 침대에 뒤집어 놓은 물건들 사이에서 갈아입을 옷가지와 샤워 세트를 들고 욕실로 들어가 간단히 씻고 나왔다.
문득 열린 창틈으로 희미한 음악소리가 흘러든다. 강변 카페의 뮤지션들이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귀를 기울이니 어딘가 익숙한 팝 음악이다. 제목은 모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들어서 묘하게 후렴구만 기억에 남아있는 딱 그런 팝 음악. 씨싸왕웡의 풍경은 여러모로 라오스라기보다는 차라리 유럽 어딘가의 시골 같다.
음악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나가볼까 하다가, 그냥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대로 깜빡 졸다 깨기를 반복하며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의 나는 만취했고, 그 강렬한 알코올의 감각은 꿈에서 깬 후에도 날 옭아맸다. 가위눌린 듯 온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다. 몹시 기이한 감각이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데, 오히려 몸의 존재는 멀쩡히 팔다리를 움직일 때보다 더욱 생생하다.
갑자기 중국에서도, 아니 생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어떤 느낌이 훅 끼친다. 오로지 세상에 나 하나만 남은 듯한 감각. 방문만 나서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도 누군가가 지금 하고 있는 연주임을 아는데도, 전 지구를 통틀어 달랑 나뿐인 것 같다.
이것은 외로움인가? 고독인가?
무어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불명확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내게는 내가 보이는데, 다른 누구의 눈에도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보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다, 혹은 않는다. 세상은 ‘혼자’를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린다. 불현듯 목 안이 뜨거워진다.
나는 내게 외롭다고 말하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던 외로움인가? 이런 기분을, 그들은 습관처럼 느끼고 있었나. 그들은 쫓기는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연인을 만들고, 대화를 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들은 더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외로움은 말할수록 외로워지는 말이었다.
내게 외로움은 흔히 쓰이지만 도통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였다. 가령, 내가 느끼는 이 마음은 너의 ‘외로움’이란 말 아래 같이 분류될 수 있는가? 내가 느끼는 마음은 네가 이야기하는 외로움과 좀 다른 것 같은데, 그래도 ‘외로움’이라 부를 수 있나? 만일 아니라면 내 이것의 이름은 뭐란 말인가?
라즈니쉬는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외로운 사람은 부정적인 공간 속에 있다. 그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타자(他者)를 갈망하고 있다. (중략) 고독은 전혀 다른 것이다.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홀로 있음이다.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긍정적인 것이다. 단순히 타인이 부재한다는 경험이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라즈니쉬가 말하는 고독과 저들이 느끼는 마음의 그 중간 어디 즈음이거나, 혹은 그 어디도 아닌 마음은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하나? 어떤 마음들의 경계에 있는 것들은, 경계에 있어서 이름이 없는 걸까? 아니면 너무 많은 이름이 있어서 무엇으로도 부르지 못하는 걸까?
루앙프라방에서의 수일이 흘렀다. 일주일 즈음 머무르고 떠날 예정이었지만 한번 주저앉은 엉덩이는 좀체 움직이질 않았다. 루앙프라방에서 머무르는 내내 낮이면 숙소에 틀어박혀 글을 썼고, 해가 지면 밖으로 나와 선선한 거리를 산책했다. 알록달록한 조명과 작은 초를 밝힌 카페테리아에 앉아 와인 한 잔을 시켜놓고 멍하니 사람 구경만 하는 날도 있었다.
어쨌든 루앙프라방은 어떤 날이건 낭만적일 수 있는 곳이었다. 더우면 더운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해가 뜨면 해가 떠서, 날이 지면 날이 져서 달달한 곳이었다. 심지어 이름의 울림마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루앙프라방> 이름을 조용히 읊조리기만 해도 진한 꽃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기서는 맹렬히 날 몰아붙이던 감정을 빈 옆 의자에 앉힌 채, 같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밤이면 고즈넉한 밤공기가 살포시 내려앉아 잠들 때까지 등을 다독였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내내, 나는 이 도시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기분이었다. 인근의(이라고 해도 과연 한국인이 생각하는 인근의 뜻과 동일할까 싶지만) 왕위왕이 좋다는 말이 들렸지만, 결국 루앙을 떠나지 않았다.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후로 9일째 오후가 돼서야, 메인 스트리트의 여행사 하나를 골라 위앙짠 버스표를 예약했다. 그곳에서 위앙짠과 방콕을 잇는 버스도 예약할까 했지만, 버스는 아예 없고 비행기만 있다면서 자꾸 비싼 비행기 티켓을 팔려고 드는 통에 관뒀다.
혼자 다니는 여자, 특히 동영 여자는 어딜 가든 참 만만한가 보다. 위앙짠과 방콕은 통행량이 가장 활발한 구간이다. 둘 사이에 바다가 가로놓인 것도 아닌데, 육로 교통편이 없을 리가 없다. 결국 위앙짠행 티켓만 들고 사무소를 나오니 날이 저물었다. 출발은 내일. 나는 나를 보듬어준 루앙에서의 마지막 밤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내기로 했다.
씨싸왕웡은 밤이 되면 환상적인 세계가 되었다. 거리를 채운 총 천연색 등롱들이 펼치는 그윽한 향연은 잠들지 않은 밤이 꾸는 꿈같았다. 고산족 야시장 바닥에 풀어헤친 좌판의 알록달록한 갓등, 손으로 직접 짠 지갑, 수제 장신구, 토산품들을 스치듯 눈에 담았다.
여행을 할 때 흥정이 싫어서 물건을 잘 안 사는 편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왠지 추억이 될만한 뭔가를 사고 싶었다. 나는 설렁설렁 걷다가, 아이를 업은 여인에게서 자잘한 꽃이 수 놓인 하늘색 스카프를 샀다. 멀리서도 눈에 확 띌 만큼 밝고 투명한 색과 한지를 연상시키는 구김 무늬가 멋스러웠다.
값을 치르고는 야시장 골목 한 귀퉁이의 거리 뷔페에서 저녁을 때웠다. 한 접시에 5천 낍인 이곳은 샐러드와 라오스의 전통 음식을 함께 내는데 이것저것 맛보기 좋다.
나는 알아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접시에 담아, 길바닥에 앉은 채로 배불리 먹었다. 마찬가지로 바닥 아무 데나 걸터앉아 식사를 즐기는 여행자와 이따금 눈이 마주치면, 슬쩍 눈인사만 나누고 다시 접시에 코를 박았다.
저녁을 다 먹은 후, 비어라오를 쥔 채 홀짝이며 숙소 앞 강변도로를 거닐었다. 어디선가 밤새가 운다. 밤의 메콩은 낮보다 향기가 유독 진하다. 달빛의 그늘 아래 숨은 강물이 거무스름하다. 원래도 탁한 물이 더욱 짙어져 무섭게 보일 법한데도, 이상하게 여기서는 으스스함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덥다.
강가로 가까이 갈수록 카페의 음악은 물소리에 파묻혀 멀어진다. 나는 잠자코 서서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한참이나 들었다.
이튿날, 아침 9시 정각에 눈이 뜨였다. 퉁퉁 부은 눈을 세면대 거울 너머로 보며 생각했다. 루앙프라방에서 위앙짠까지는 13시간이 걸린단다. 과연 이번에는 제시간에 도착할까?
“… 기대를 말자.”
어떻게든 되겠지, 뭐.
10시 30분에 숙소 앞으로 픽업 오토바이가 도착했다. 픽업 기사는 몸집이 정말 작고 가냘픈 여성이었다. 나도 키가 크지 않은 편인데, 이 사람은 초등학생만큼이나 작아서 괜히 불안했다. 물론 기사분은 매끄러운 솜씨로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하루가 늦게 시작되고, 느리게 저무는 여행자 거리와 달리, 그 바깥은 이미 생활의 활기로 가득했다. 나는 뺨에 바람을 맞으며, 곁을 스치는 루앙프라방을 눈에 담았다.
정류장은 모래 먼지가 자욱한 공터였다. 대기 중인 버스가 벌써 승객들 짐을 싣고 있었다.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한 승객이었다.
내가 타자 버스는 지체 없이 출발한다. 옆자리엔 겨드랑이 냄새가 지독한 서양인 남자가 앉았다. 어지간하면 그냥 내색 않고 견딜 텐데, 하필 남자는 민소매 차림이어서 조금만 팔을 들썩여도 암내가 진동했다. 결국 차가 잠시 쉬는 틈을 타, 바로 뒤의 빈 좌석을 스캔했다. 옆자리엔 서양인 중년 여자가 손목에 코를 대고 있었다.
"여기 자리 비었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요."
살았다. 나는 혹시 자리가 찰 까봐 냉큼 뒷자리로 옮겼다. 남자가 나를 흘긋 본다. 미안하지만 이대로 최소 13시간을 견딜 수는 없다.
“나는 캐럴이에요.”
“ 재인이요. 자리 내줘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뒤에 앉은 나도 괴로운데, 옆은 오죽할까.”
그렇게 말한 캐럴은 제 손에 쥔 작은 병을 내밀었다.
“민트예요, 손목에 좀 뿌릴래요? 한결 나을 거예요."
캐럴이 쥐고 있던 병에는 민트 아로마 오일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뉴질랜드인이다. 우리는 라오스에 대한 인상 따위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 각자의 침묵에 몰두했다.
나는 에어컨 바람의 텁텁한 냄새에 질려 꾸벅꾸벅 졸았고, 캐럴은 가이드북에 열심히 형광펜으로 밑줄을 쳤다. ‘저 사람은 책에 밑줄 치는 타입(?)이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내게 가이드북은 물론, 위앙짠에 대한 숙소 정보가 전혀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캐럴은 갖고 있던 형광펜의 잉크가 바닥났는지 지면에 심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노란색 형광펜을 꺼내 내밀었다.
꼭 그 덕분은 아니지만, 캐럴은 내게 한 시간여 가까이 가이드북을 빌려주었다. 나는 몇 곳의 숙소 정보를 따로 적은 다음 책을 돌려줬다. 책을 가져가던 캐럴이 불쑥 한 페이지를 펼쳐 보여준다. 그녀가 좀 전의 주황색 형광펜을 잔뜩 칠해둔 박스 정보다.
"읽어봐요. 재미있으니까."
나는 내용을 죽 읽어 내렸다. 그리고는 정말로 웃고 말았다. 내용보다도, 이걸 굳이 주황색으로 색칠까지 해놓은 캐럴이 더 재밌었다. 어쨌든 구구절절 한 박스를 다 채워 적은 내용의 핵심은 이렇다.
「라오스 남자와 (외국인 여성이) 성관계를 갖는 것은 불법이다.」
친절하게도 딱 걸려서 유치장에 간 커플의 실례까지 기재되어 있다.
나는 킬킬 웃다가, 어느새 앞에서 굼실굼실 흘러든 암내를 맡고는 입을 딱 다물었다.
믿을 수 없게도.
버스는 정시에 도착했다. 해 질 녘 강변도로에 내린 나는 멀거니 어리둥절해 있었다.
어째서 제시간에 도착한 거지?
그런 내게 툭툭 기사가 다가와 국적을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그는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안다고 했다. 나는 적어뒀던 숙소 후보를 깨끗이 지우고 그의 툭툭에 올라탔다.
숙소는 메콩강변에서 가까운 골목에 있었다. 메콩 강변 공원에서는 쏭크란 준비가 한창이다. 물총이나 바가지를 들고서 젖은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다.
한인 숙소 주인과의 오랜만의 한국어 대화는 싱거웠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바뀌었을 뿐, 나누는 대화는 똑같다. 며칠 묵을 거냐, 어떤 방을 원하느냐, 가격은 이렇다, 등등. 주인이야 만날 보는 한국인일 테니 시큰둥해도 이해한다. 나는 한 달 남짓 만의 한국어라 반가웠지만.
"여기서 방콕까지 가는 버스 티켓 구할 수 있을까요?"
"지금 예약해 드려요?”
방을 정하고는 바로 방콕행 버스부터 예약했다. 이번 여정은 배낭여행이 아니라 네팔에서의 장기체류다(비자 갱신이 허락하는 최대한도까지 머물 생각이다). 가는 길을 서두를 생각은 없어도, 거치는 곳에서마다 오래 머물 생각 역시 없었다.
"13일에 출발하는 걸로 예약해주세요."
"오늘이 10일이니까……딱 3일 뒤네요.”
"가능하다면 카오산로드에 정차하는 버스로 구하고 싶은데요."
“알겠어요.”
객실에 짐을 놔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도인 가족이 운영하는 커리 식당이 있었다. 그림인지 글자인지 분간이 어려운 힌디어 간판을 보자 인도 여행이 떠오른다. 정작 인도에서는 커리가 입에 맞지 않아 거의 안 먹었는데도(그곳에서 날 먹여 살린 메뉴는 챠오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는 음식이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빵과 버터, 잼 등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히. 나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널찍하고 테이블이 여러 개다.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도 왕왕 보이고, 남아시아계도 많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외국인이라면 서양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위앙짠의 인종은 예상외로 다양하다.
테이블에 앉자, 젊은 인도인 남자가 손때 묻은 메뉴판을 가져온다. 나는 야채 커리와 로띠를 두 장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식당을 쓱 둘러봤다. 문득 하이데바라드의 버스정류장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그런 나와 친구의 발밑을 질주하던 도마뱀과 생쥐가 떠올랐다. 하이데바라드에 도착하기 전 잠시 들른 휴게소 화장실에서 변기의 똥을 우적우적 먹고 있는 흑돼지와 맞닥뜨리고 식겁한 뒤라 놀라지도 않고 태연히 밥을 먹었다(다시 생각해도 어메이징 인디아다).
그때가 떠올라 낄낄 웃는데, 문득 발밑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졌다. 눈이 대왕 구슬만 한 꼬마 인도 여자아기가 탁자 밑에서 날 보며 웃고 있었다.
"Hell-o-o?"
손을 흔들자, 또다시 까르르 웃는다. 난 아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이구 귀여워라. 엄만 어디 계셔?”
여자아이는 까만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발딱 일어나더니 내 포크를 확 잡아챘다. 마침 커리와 로띠를 가져온 직원이 미안해하며 아이를 안아 올렸다.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멀찍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직원의 품에 안겨 사라졌던 여자아이는 금세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로띠를 휙 낚아챈다. 그 행동이 몹시도 천진해서 화는커녕 귀엽기만 하다.
나는 아이가 손에 쥔 로띠 일부를 떼어 커리에 적신 뒤 입에 넣어 주었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냠, 하고 받아 오물오물 씹는다. 아까의 직원이 나는 듯이 달려와 아이를 다시 안고 힌디어로 뭐라 뭐라 혼을 낸다.
"괜찮아요. 그냥 놔두세요."
직원은 멋쩍게 웃더니 아이를 내려놓는다. 나는 아예 아이를 안아 무릎에 앉히고 함께 밥을 먹였다.
밥을 다 먹곤 떨어지지 않으려 징징 우는 아이를 직원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카운터에서 계산하려는데, 아까의 노인이 호쾌하게 음식 값을 받지 않는다.
“손녀의 실례를 너그럽게 봐줘서 고맙소.”
“귀엽기만 하던데요.”
그와 나는 마주 보고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