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Falling down, Falling apart - 1
이건 걷는 게 아니라 찜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거다.
오늘따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숨이 턱턱 막힌다. 내뿜는 호흡도 뜨겁고, 들이쉬는 공기는 더 뜨겁다. 환장하겠다. 대체 몇 도야.
출발은 새벽 5시가 넘어서였다. 지금 향하고 있는 마을은 두므레, 다마울리에서 22km 떨어져 있다. 두므레는 다마울리보다 작게 표시된 마을이니, 규모는 아마 카이레니 정도일 것이다.
막 출발했을 때만 해도 물집 잡힌 발은 걸을 때마다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쌓이기만 하지 풀릴 기미가 없는 피로 때문에 지금은 그마저도 무디다. 뭔가를 예민하게 느낄 여유가 없는 거다. 그러는 사이 현재 주파 거리는 15km를 넘어섰다.
우린 도로변의 판잣집 슈퍼에 들려 망고 주스를 두 팩씩 연달아 마시거나, 생수를 사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들이부었다. 생수통을 거꾸로 들고 머리에서부터 콸콸 들이붓는 날 보고, 가게의 여인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끊임없이 걷고 걸어 드디어 두므레에 도착했다. 두므레는 지나쳐온 카이레니나 다마울리보다 훨씬 더 정거장 분위기가 강한 마을이다. 건물은 대부분 빛바랜 나무나 붉은색 점토로 지어져 있어 몹시 낡아 보였다.
게스트하우스는 2곳이 있었다. 첫 번째는 초입에서 가깝고, 카이레니에서 묵은 숙소와 비슷하다. 어둡고 음침한 데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건물이다. 1층은 식당, 여행객은 2층에서 묵을 수 있다. 건물 계단 경사가 무척 가팔라서, 올라갈 때마다 암벽 등반을 하는 심정이다.
객실 청결도는 여태까지의 신기록을 다시금 갈아치운다. 시궁창에 담가, 진흙으로 구석구석 꼼꼼히 주물러 빤 것 같은 시트가 삐걱거리는 철제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얹어져 있다. 눈뜬 채로 악몽을 꾼다는 게 이런 걸까? 하는 수 없이 우린 그곳을 나와 두 번째 숙소를 찾았다.
두 번째 숙소 외관은 그나마 첫 번째보다 낫다. 안내된 객실엔 매트리스 두 장만 덜렁 바닥에 깔려 있다. 그래도 시트 상태는 100배 훌륭하다. 물론 쾌적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원도 들어오지 않는 구형 TV를 들먹이며(TV가 무슨 장식용 가구도 아니고) 300루피를 부르는 주인이 괘씸했지만, 첫 번째 숙소 상태에 심히 충격이 컸던 우린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뿐이었다.
화장실은 2층 계단 한쪽에 붙은 구식이다. 욕실은 아예 없이, 1층 뒤편의 수돗가에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어 씻어야 한다(이 점에 있어서는 카이레니 숙소보다 한 술 더 떴다). 우린 주인의 안내를 받아 묵묵히 화장실과 (샤워용?) 수돗가, 객실을 차례로 본 뒤 퀭한 얼굴로 체크인을 했다.
오늘의 샤워는 망했다. 가림막도 없이 수돗가에서 씻을 수 없고, 옷 입은 채로 물 끼얹기는 오늘 내내 생수통으로 했던 짓이다. 우린 소중히 아껴둔 물티슈로 손 닿는 부위만 닦고 나서, 모기약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놓고 식사를 위해 숙소를 나섰다.
두므레에도 다마울리처럼 달밧 외의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튀긴 모모가 주요리다. 우린 튀긴 모모와 오믈렛, 스프링롤을 시켜서는 조용히 먹기만 했다. 머릿속에선 오늘 밤을 보내야 할 숙소 상태가 반복 재생된다. 벌레 시체가 뒹굴고 다리 긴 거미가 질주하던 광활한 매트리스……. 한숨이 멈추지 않는다.
숙소로 돌아와선 결국 비옷을 입은 채로 쓰러졌다. 이래서야 노숙과 큰 차이도 없겠다. 아무튼 둘 다 기절하듯 잠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맞은편 침대의 지혜가 뒤척이는 기척을 느끼고 비몽사몽 잠이 깼다. 뿌연 시야로 지혜가 팔을 이리저리 휘젓는 게 보였다.
뭐지……? 하며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젓고 있던 지혜의 팔 언저리에서 시커먼 뭔가를 본 것도 같은데 그게 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 뒤 5분 정도가 지나서다. 문득 내 팔에서 낯선 무게감이 느껴졌다. 착각인가 했는데, 그 묵직함이 슬금슬금 자리를 옮긴다. 불현듯 머리끝이 쭈뼛 선다. 움찔 굳은 내 움직임을 감지했는지, 빠르게 위로 올라온 무게감이 이번엔 맨 얼굴에 느껴진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건…… 바퀴벌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사지가 파들파들 떨리고, 소름이 한꺼번에 곤두섰다. 온몸이 가려운데, 대체 어딜 긁어야 할지 모르겠다. 역시나, 내 얼굴에서 추락한 바퀴벌레는 팔뚝에 부딪히더니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친다. 크기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다.
“으악! 으악! 으아아아악!”
나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좁은 객실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뭐, 뭐야?!” 자다가 깜짝 놀란 지혜가 엉겁결에 같이 비명을 지르며 매트리스 위로 펄쩍 뛰어오른다. 요란한 비명을 질러대던 나는 뽈뽈뽈 기어 배낭 아래로 사라져 버린 바퀴벌레를 본 뒤에야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였어요?”
“……”
“언니, 정신 좀 차려 봐요!”
“……”
간신히 입을 열어 뭐라고 말하려는 바로 그때, 아까의 그 황소만 한 놈이 다시 기어 나와 이번엔 지혜의 배낭 밑으로 숨는다!
“바퀴벌레에에엑, 히익!”
“꺄아악!”
이번엔 지혜도 똑똑히 봤다. 용감히 모기 스프레이를 집어 든 지혜가, 바퀴벌레에 대고 마구 분사한다. 그러자 바퀴벌레의 움직임이 엄청나게 빨라진다. 저러다 날개라도 펼치고서 비상하는 거 아냐?!
아, 정말 진심으로 까무러칠 것 같다.
바퀴벌레는 살충제 화생방을 피해 내 매트리스의 틈새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만한 덩치가 그렇게 간단히 숨겨진다고? 믿을 수가 없다. 이건 재앙이다, 재앙.
나는 창백하게 질려 매트리스를 노려봤다. 아직도 숨이 가쁘다. 얼굴 위로 기어오르던 바퀴벌레의 감촉이 생생히 남아있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는 비옷을 벗어 쑤셔 넣은 배낭을 등에 짊어졌다. 그런 나를 지혜가 어리둥절해서 보고 있다.
“난 여기서 절대 못 자.”
“네에?!”
지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기서 자느니 차라리 길바닥에서 자는 게 나아.”
지혜가 냅다 소매를 붙든다.
“말도 안 돼요! 다음 마을이 아부 카이레닌데, 거기까지 17km는 더 가야 된다고요. 게다가 거기 숙소가 없으면 8km를 더 걸어 무글링까지 가야 하고요. 그걸 다 걸을 수 있겠어요?”
“아직 정오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아부 카이레니에 가도 여기보다 나을 거란 보장은 없어요. 여기보다 훨씬 작은 마을 같은데…….”
“그럼 노숙할래. 암튼 여기선 죽어도 못 자. 넌 힘들면 여기서 하루 자고 무글링에서 만나자. 무글링이 중간 지점이니까 내가 먼저 도착하면 하루 더 쉬면서 너 기다릴게.”
가만히 듣던 지혜가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바퀴벌레가 그렇게 싫어요?”
“싫은 정도가 아니라 무서워. 난 바퀴벌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
결국 지혜도 비옷을 챙겨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선다. 피곤이 역력한 얼굴이라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러나 그 미안함이 바퀴벌레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진 못했다. 오히려 아까 그 거대 바퀴벌레를 보고도 여기서 자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더 놀랍다. 그 바퀴벌레는 나한테 오기 전에 지혜한테 먼저 들렀었단 말이다.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돼. 너는 여기서 자고 와.”
“혼자 남는 게 난 제일 무서워요.”
나는 조금 놀라서 지혜를 보았다. 오직 긍정과 낙관으로 가득해 보이는 이 씩씩한 친구가 생각보다 굉장히 겁이 많다는 사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