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Falling down, Falling apart - 2
떠난다고 하자, 숙소 주인은 어리둥절해했다. 내가 바퀴벌레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왜?’라는 얼굴이다. 난 가타부타 설명할 기운도 없어, 잠시 머물렀던 비용으로 100루피만 지불하고 숙소를 나섰다.
다시 걷기 시작하니, 쉬는 동안 잊고 있던 물집이 생생한 존재감을 과시해온다. 5km을 넘었을 때에는 우리 사이에 대화는 거의 오가지 않았다. 앞서 걷는 지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따금 같이 도로를 따라 걷는 현지인들이 말을 걸어오면 그렇게 성가실 수가 없다. 그냥 좀 가만히 내버려 두지. 호기심이고 뭐고 다 좋은데, 지금만큼은 좀.
지혜의 걸음은 여전히 경쾌하고 빠르다. 마치 오늘 처음 걷는 사람 같다. 대체 아까 못 가겠다던 애가 맞나 싶다. 두므레를 벗어나서부터는 쭉 오르막이다. 길의 폭은 좁고 트럭과 버스 숫자가 눈에 띄게 불어나 도보가 꽤 위험하다. 도로 오른쪽은 가파른 절벽, 왼쪽은 변변한 가드레일도 없는 천 길 낭떠러지다. 게다가 지나다니는 차들이 내뿜는 검은 매연 때문에 숨 쉬는 것마저 여의치 않다.
지글지글 끓는 더위, 말이 통하지 않는 오지, 얼굴 위로 떨어지는 공룡만 한 바퀴벌레, 부실한 식사, 노숙이 차라리 깨끗하겠다 싶은 숙소 상태, 가실 날이 없는 근육통과 물집의 통증……. 당장이라도 이 짓을 집어치우고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카트만두로 가고 싶다. 그러나 이번 여정을 먼저 시작하겠다고 한 사람은 나다. 그 알량한 자존심이 그나마 없는 오기를 쥐어짜 발을 움직이게 한다.
입 떼기도 싫을 만큼 지친 내 옆으로 로컬 버스 한 대가 느릿느릿 지나간다.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하게 장식한 버스는 버스 안은 물론이오 지붕에도 빽빽이 승객을 태워서 미어터지기 직전이다.
버스 지붕엔 어린 소년들과 노인들, 그리고 염소와 닭까지 보인다. 소년들이 우릴 향해 “헬로! 헬로!”라며 손을 흔든다. 지혜가 그들을 향해 “헬로!”라고 화답한다. 참 기운도 좋다. 운전사가 열린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든다. 사이드미러로 우릴 보는 운전사와 순간 눈이 마주친다. 눈이 마주친 이상 반응하지 않을 수 없어,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그때였다.
마침 커브를 돌던 버스의 몸체가 갑자기 기우뚱 기울어진다. 순간 잘못 봤나 생각했다. 그러나 버스가 기우는 속도는 확연히 빨라지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다. 버스가 분명하고도 착실하게 기울고 있다. 낭떠러지를 향해.
나는 지면에서 들리는 버스의 오른쪽 바퀴를 멍하니 본다. 슬로 모션 영상처럼 현실감이라곤 없다. 그러나 저것은 현실이다. 실제상황이다.
아직 기울기가 크지 않아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한 발 늦게 버스의 전복이 시작됐음을 알아챈 지혜가 “어? 어?!”하며 얼이 나가 외친다.
삽시간에 버스의 웃음소리가 울부짖음으로 바뀐다. 기울기가 임계를 넘어서자 지붕 위에 있던 승객들이 밑으로 떨어진다. 우릴 향해 반가워 흔들던 아이들의 손은 살려달라는 몸부림으로 변한다. 허공을 찢는 비명과 나란히 무게중심을 잃은 버스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친다.
버스는 너무나도 간단히 뒤집힌다. 손으로 쥐면 와락 구겨질 알루미늄 상자처럼. 지붕에서 떨어진 승객들은 낭떠러지의 가파른 경사를 구르는 버스 아래 짓눌린다. 버스 안에서도 울음과 비명이 터진다. 뭔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빗발친다. 버스가 한 바퀴씩 구를 때마다 지붕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던 사람이 떨어지고, 먼저 떨어진 사람들은 구르는 버스가 밟고 지나간다. 도로를 달리던 다른 차들이 멈춰 선다. 차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버스가 추락하는 절벽으로 달려간다.
이 모든 것이 전부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건 꿈일까? 온몸이 얼어붙고, 귀에서 이명이 울린다. 가장 먼저 떨어졌던 남자가 피를 흘리며 일어선다.
“구, 구급차! 구급차!!”
앞에서 지혜가 구급차를 외치며 달려간다. 한국어로 말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정신이 돌아온다.
몰려든 사람들도 어쩔 줄 몰라 하긴 매한가지다. 그때 청년 몇이 비탈진 벼랑을 눕듯이 미끄러져 내려가자 사람들이 뒤따라 버스로 달려간다. 지혜는 어떻게 하느냐며 발을 동동 구른다.
“우리도 가서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내려가려는 지혜의 팔을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Where are you from?”하고 묻는다. 이런 상황에도 그런 게 궁금하다고? 그런데 그 사람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이 와중에 우리에게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난 그들을 잠시 건너보고는 지혜에게 물었다.
“너, 응급조치할 줄 알아?”
“아뇨. 언니는요?”
“나도 몰라.”
“진짜 어떡하죠?”
지혜의 눈가에 눈물이 그득히 차오른다. 나는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애쓴다.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답은 간단하다.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잠깐 이리 와봐.”
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지혜를 끌고 와 반대편 길가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가방 뒤져서 가지고 있는 진통제랑, 소염제, 항생제 하고 찰과상에 바르는 약 있으면 다 꺼내.”
“약이요?”
“빨리!”
“알았어요!”
우린 가방을 열어 안을 마구 뒤졌다. 약주머니는 금방 찾았다. 지혜도 위급할 때 바로 쓰려고 배낭 바깥주머니에 넣어둔 약주머니를 꺼낸다. 우린 갖고 있는 약 중에서 진통제, 소염제, 항생제, 연고를 몽땅 꺼냈다. 남은 약은 지사제나 벌레 쫓는 약 정도다.
약을 한데 모아 꾸러미로 만든 나는 다시 군중 틈으로 들어가 외쳤다.
“영어,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어요?!”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곧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이 다가온다.
“영어 할 줄 아세요?”
“네.”
“그럼 이 약 좀 저 다친 사람들에게 전해주세요. 혹시 일행 중에 의사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주고요.”
약 꾸러미를 받아 든 여인이 물었다.
“이게 뭐죠?”
나는 명석한 인상의 그녀에게 약 종류를 하나하나 말했다. 그리고 꼭 전해 달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여성은 알겠다고 하더니 주변 청년에게 빠르게 네팔어로 설명하고서 약을 건넨다. 청년은 약 꾸러미를 쥔 채 비탈을 내려간다. 나는 다시 아래를 보았다. 유리가 깨진 버스 창에서 펀자비 차림의 여자가 피투성이로 빠져나오고 있다.
버스에서 탈출하거나 떨어져 다친 사람들이 부러진 다리나, 뼈가 드러난 팔을 붙들고 비명을 지른다. 죽은 건지, 의식을 잃은 건지 바닥에 누운 채 꿈쩍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인데도, 현실감이 너무 없다. 하지만 몸은 착실히 상황을 실감한다. 아까부터 턱과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저 밑의 사고 현장을 잠시 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가자.”
“……”
다리가 휘청거린다. 사고 현장에서 멀어질수록 가슴이 더 뛰고 숨이 막혀온다. 요동치는 맥박이 아프게 귓전을 때린다. 조금만 방심하면 나의 무엇인가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아서 이를 악물고 걷는다.
이번 여정을 통틀어 처음으로 나를 따라 걷는 지혜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것 같다. 그런 지혜를 보는 나는 손쓸 수 없는 절망을 느낀다. 오롯했던 한 인간의 선함이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상처 입고 있다. 분명 돌이킬 수 없는 좌절과, 상실이 될 상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