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Falling down, Falling apart - 3
사고 현장을 떠난 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지혜는 다시 나를 앞질러 몇 백 미터 앞을 걷고 있다. 커브를 돌 때마다 그녀의 뒤통수를 놓치는 일이 많아진다.
나는 물집과 발목의 통증을 기꺼이 견디며, 몇 번이고 아까의 상황을 되감는다. 현장에 남아 사람들을 도와야 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처럼 그곳을 떠나오는 편이 나았을까? 구조 전문가는 아니지만, 고양이 손이라고 빌렸어야 하는 상황이었을까? 아니면 나 같은 사람은 있어봐야 방해 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었을까?
사람들은 많이 다쳤을까? 지붕 위에 타고 있던 소년들은……?
부질없는 물음만 연거푸 솟는다. 제자리를 헛도는 의문과 후회, 처음 겪는 공포스러운 상황에 시달린 육체는 기계적으로 전진한다. 이따금 차가 옆을 지나가면 흠칫 놀라 유심히 본다. 사고 현장 이후로 아직까지 구급차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잇는 도로는 딱 하나뿐임에도.
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혜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새까맣게 가라앉은 지혜의 눈가는 두려움과 후회로 떨리고 있다. 나는 움직이는 지혜의 입을 보며 거기서 처음 나올 문장이 뭔지 알아차렸다. 그 문장이 정말이지 너무 무서워서, 아직 말해지지도 않은 질문의 답을 냉큼 뱉었다.
“네 탓 아니야.”
“……언니…….”
지혜의 눈동자가 짙은 의구심으로 어지럽게 일렁인다.
“내가 분명히 봤어. 커브를 돌면서 버스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서 기운 거였어.”
“하지만 운전자가 저한테 손을 흔들고 있었잖아요. 제 인사에 답하느라 한 눈 팔다가 사고가 난 걸지도 모르잖아요.”
“아니라니까. 너도 그 버스 봤잖아. 정원을 초과해도 한참 초과한 채로 사람 태운 거. 그런 상태로 가드레일도 제대로 없는 계곡을 달렸어.”
나는 단호하려고 노력했다. 지혜는 무어라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납득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린 다시 걷기에만 집중했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지혜가 불쑥 “그때 거기서 빨리 빠져나온 건 잘한 결정이었던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부 카이레니를 약 8km 정도 앞두고, 작은 마을을 통과하던 우리는 어디선가 요란한 연주를 들었다. 연주는 경쾌한 북소리와 어우러져 길가 한쪽의 너른 공터에서 들려온다. 우리는 이끌리듯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었다.
마을 초입을 지키는 거대한 고목이 우뚝 선 공터 그늘 아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잔치를 벌이고 있다. 남자들은 북을 두드리고 노인과 젊은 여인 둘이 대화를 나누듯 마이크를 번갈아 쥐며 노래를 주고받는다.
그들 간에 익살맞고 구성진 가락이 오간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유쾌하고 쾌활한 곡조를 듣는 것만으로 아까 겪은 참사의 무게가 잠시나마 가벼워진다. 구경꾼들은 노래에 열중한 채 박수를 치거나 신이 나서 웃는다. 간간이 반복되는 구절을 다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한다.
구경꾼 무리에 섞인 우릴 보고 일부가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낸다. 대부분은 축제에 더 몰두한다. 바로 얼마 전 낭떠러지 비탈을 구르는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는데, 이번에는 마을 잔치라니. 두 상황의 간극이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영혼까지 탈탈 털린 우리에게 이곳의 밝고 환한 에너지는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우리는 이방인이 아닌, 평범한 구경꾼이 되어 잠시 잔치판을 구경했다.
잔치판 한편에서는 비쩍 마른 남자가 어깨에 멘 나무통 안에 꽁꽁 얼린 아이스바를 담아 판다. 우린 그에게서 빨간색 아이스바를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다. 과일맛 시럽을 넣어 얼린 것인데 정확히 무슨 과일인지는 모르겠다. 딸기맛이라기엔 체리에 가깝고 체리라고 하기엔 거의 설탕물이다. 어쨌든 아이스바를 입에 넣으니, 그제야 몹시 목이 타고 지쳤다는 사실이 절절히 와닿는다. 우린 하나를 다 먹고 나서 또 하나씩을 더 사 먹었다.
한참이나 잔치를 구경하다 구경꾼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거짓말처럼 몸이 가볍다. 놀랍다. 인간은 이토록 잠깐의 틈에도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무거워지기도 하는 걸까?
아부 카이레니까지의 남은 길은 금세 지났다. 너른 평원과 구름 그림자를 덧입은 산등성이가 이어지던 길을 열심히도 걸었다. 아부 카이레니는 거쳐 왔던 어떤 마을보다도 깔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숙소가 없었다.
우린 한숨 쉬어가기로 하고 작은 가게에서 망고 주스를 각종 라벨 별로 몽땅 사서 테이블에 쌓아 두고 하나씩 마셨다.
주인은 그런 우릴 재미있다는 듯 줄곧 지켜보았다. 음료수를 다 마신 뒤, 또 길을 나섰다. 남은 거리는 8km.
4km 즈음 지났을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우린 황급히 배낭 속의 우의를 꺼내 입었다. 무너진 낙석과 짙은 물안개에 휩싸인 산세, 가시거리를 모조리 지워버리며 부옇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잊고 있던 두려움을 일깨운다. 무글링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도, 우리의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굽이치는 계곡 틈에 자리한 무글링은 나타날 듯 말 듯 애를 태우다가 저녁 6시 반이 넘은 무렵에야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큰 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이 다리를 통해 연결돼 있다. 불어난 강은 황톳빛 몸뚱이를 거세게 뒤튼다. 나는 다리 위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았다.
기어이 이 길을 다 걸어 무글링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폭우 이후부터는 뭘 어떻게 무슨 정신으로 걸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저만치 큰 도로를 오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총 47km가 넘는 거리를 주파한 오늘을 되짚는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역대 최악의 일정이다. 거대 사이즈의 바퀴벌레부터 버스 전복사고, 마을 잔치, 느닷없는 폭우와 낙석으로 반쯤 막힌 길…….
이게 대체 하루에 다 겪을 수 있는 일이긴 한가?
그저 걷지 않으면 오지 한복판에서 어떻게 될 것만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오늘을 지나왔다.
나는 문득 아득해졌다. 다마울리는 포카라와 카트만두 사이의 딱 중간지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까지 100km를 걸은 것이다. 거기까지 셈했을 때, 급작스러운 깨달음이 덮친다.
아, 한계다.
여기가 내 한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