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페레그리노's - 5
이튿날.
론세스바예스에서 쥬비리를 거쳐 라라소아나까지 가는 길은 짙은 숲을 통과해 아담한 마을을 지나 들판을 가로지른다. 나는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기도 하고, 누군가를 앞서 걷기도 하고, 때로는 노란 화살표를 벗 삼아 홀로 걷는다.
“부에노스 디아스!”
“부엔 카미노!”
이따금 스치는 마을 사람들의 인사는 순간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한 힘으로 붓고 지친 발을 어루만진다.
의외로 생장 피드포르가 아닌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처음 보는 얼굴들이 제법 늘어났다. 예순을 한참 넘긴 순례자도 무척 많다. 첫날 생장에서 만났던 스위스 노인은 자신의 집 앞에서부터 반년 간을 쭉 걸어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중이란다.
나와 가까운 침대를 써서 어쩌다 말을 트게 된 필립은 헝가리인이다. 늘 귀를 다 덮는 큼지막한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데, 아무것도 듣지 않을 때는 헤드폰을 목에 걸었다. 거의 신체의 연장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헤드폰 자체로도 굉장히 할 말이 많은 애(?) 같았다. 마치 필립의 귀나 목에 찰싹 달라붙어 ‘나는 너희에게 얼마든지 간섭할 수 있지만 너희는 아니지. 오직 내가 그러길 원할 때에만 가능해.’라고 필립을 대신해 쉬지 않고 쫑알대는 것 같달까.
그는 남이 듣거나 말거나 줄곧 노래를 흥얼거린다. 한 번은 대체 직업이 뭐냐고 물었더니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The Artist.”
게다가 그는 나만 보면 헝가리산 초콜릿 바를 내밀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두어 번 거절하다 세 번째엔 받아먹었는데, 너무 달아서 혀뿌리가 얼얼했다.
오스트리아인 스테파니아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그녀는 같은 저녁식사 테이블을 공유하다가 알게 됐다). 그녀는 어쩐지 상처가 많은 듯한 분위기였는데, 본인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건 뭔가에 닿자 화들짝 놀란 도마뱀이 자르고 달아난 꼬리 조각을 하나씩 주워 모으는 것과 비슷해서 맥락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둘째 날의 여정은 첫날만큼 막막하지 않았다. 첫날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어, 점심 정도까지 지고 걸을 수 있는 양의 식량을 챙겼다. 먹어버리면 어차피 사라질 무게였으므로 물도 비교적 넉넉히 챙겼다.
그렇게 오후 2시가 넘어 도착한 라라소아나의 숙소는 충격적이었다. 나는 별관에서 머물렀는데, 별관 앞의 샤워부스는 여러 의미로 대단했다. 남녀 구분이 되어있지 않을뿐더러, 문 대신 누가 아무 때나 들춰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엉성한 방수 커튼이 설치돼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기하게 적당히 알아서들 나누어 씻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니었건만, 욕실에 여자들이 꽉 차는 순간이 있다 싶으면 샤워실 주변에 남자들이 모습을 감추었고, 남자들이 꽉 차 있는 모습을 발견한 여자들은 물러났다가 나중에 다시 왔다. 여행하면서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남녀가 커튼 하나만 사이에 둔 채로 목욕하는 상황은 겪은 적이 없어서 오늘은 그냥 씻지 말고 말릴까(…)를 고민하느라 내내 상황을 지켜본 나는 그게 정말 신기했다.
어찌어찌 무사히 잘 씻고 나왔지만, 문제는 이어졌다. 이번엔 세탁기가 없었다. 세탁기가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서, 이때도 몹시 당황했다.
결국 빨래는 직접 손으로 했는데, 샤워실 옆에 비치된 건조대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여러 사람의 옷들이 속옷이고 뭐고 할 거 없이 한데 걸려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희한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놓이는 풍경이었다.
알베르게 도착 후의 모든 과정을 마친 뒤에는 맥주를 한 잔 마실 생각으로 마을 식당으로 갔다. 이심전심이라고, 론세바예스에서 고된 여정 뒤에 마시는 맥주의 충격적인 맛을 알아버려서일까? 나는 어느새 식당에 와서 맥주를 마시던 신부님과 이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과 동석한 낯선 남성이 있었다. 이름은 미구엘. 스페인이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맥주를 마셨다. 역시 새벽부터 반나절을 걷고 난 후 마시는 맥주는 짜릿하다.
저녁엔 페레그리노 저녁 코스를 전문으로 만드는 식당에서 순례자들과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식탁 위엔 온갖 국적의 언어가 올라왔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물론 나와 이수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등등. 거기 있던 우리 모두는 모두의 말을 어느 정도 다 알아들었다. 처음에는 영어로 좀 하나 싶더니, 불콰하게 와인이 오른 어느 순간부터는 각자의 모국어로 식탁 위의 이런저런 메뉴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다들 상대의 언어를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라라소아나에서의 밤이 지나고, 잠에서 깼을 때 허리가 너무 뻐근해서 끄응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스프링 상태가 엉망이 된 알베르게의 매트리스 때문에 제대로 밤잠을 설쳤다.
충분히 잔 것 같은데도, 밖은 아직 새벽이다. 아마도 두세 시쯤 된 것 같다. 순례자들의 침대의 일부는 벌써 텅 비었다. 다들 무더운 낮을 피해 새벽길을 택하는 모양이다.
나는 양치질만 대충 마치곤 세수도 않고 길을 나섰다. 이미 여장을 마치고 기다리는 신부님과 이수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어제저녁식사 자리에서 당분간은 함께 다녀보기로 이야기가 오고 갔었다.
이렇게 일찍 출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일단 맞춰보기로 한다.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새벽길이 나쁘진 않으니까.
혹시나 사위가 어두워 노란 화살표를 놓치진 않을까 걱정했던 건 죄다 기우다. 형광페인트로 바른 건지, 아니면 구하는 자에게 길이 있다고 찾으니까 잘 보이는 건지, 용하게도 필요할 때마다 화살표는 꼭꼭 나타나 주었다. 게다가 길 곳곳에 설치된 조개 표시의 수도며, 이정표 덕분에 우리가 어디쯤에 와있는지 모를라야 모를 수가 없었다.
아침식사는 가다가 일찍 문을 연 조그만 가정집에서 커피와 빵을 사서 먹었다. 더 배가 고파졌을 땐, 전날 라라소아나로 오다가 발견한 마트에서 사고 남은 음식들로 허기를 달랬다. 대신 오늘 예정지인 팜플로나에서 어떻게든 저녁을 푸짐하게 해 먹겠다는 기대로 다들 들떠 있었다. 나만 해도 다녀온 유럽 국가 중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단 한 곳의 음식도 썩 입에 맞아본 적이 없어서 기대하지 않았다가, 연이어 맛본 스페인 음식이 썩 취향이어서 은근히 기쁘다.
라라소아나에서 팜플로나까지의 여정은 쉽고도 어렵다. 길은 평탄한데, 내 몸이 평탄치 못하다. 이틀 동안의 도보여행으로 발은 붓고, 어깨는 떨어질 것 같은 데다 잠자리마저 불편해서 허리는 뻐근하다.
그나마 다행은 아직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진 않았다는 거다. 그래도 발은 아프고, 함께 가는 일행들은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로 빠르다. 신부님과 이수가 내 페이스를 맞춰 걷거나, 내가 힘을 내 그들을 따라잡기도 해보지만 끝내는 뒤처진다.
1시쯤, 팜플로나의 잘 정비된 - 그래서 심심하게까지 여겨지는 - 신시가지를 거쳐 성곽 안의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유구한 역사의 상징인 포석 도로 양옆으로 BC75년부터 세워지고 무너지고 또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하며 다양한 양식으로 변모한 옛 건물들이 삐뚤빼뚤 늘어섰다.
집집마다 우아한 철제 난간이 거리를 내려다보고, 건물 외벽은 색색이 다채롭다. 가로등마저도 시적이다. 마치 19세기 말엽의 거리에 들어선 것 같다.
골목의 끝이나 귀퉁이에서 불쑥 나타나는 성당과 수도원은 순식간에 나를 먼 과거의 한 시대로 데려간다. 낡고 빛바랜 고건축으로 가득한 고색창연한 시가지는 역사의 산 증거이자, 현대적 낭만주의의 극치다.
우린 시청 앞 광장에 이르러 걷기를 멈췄다. 광장 벤치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청의 머리 위로 청명한 하늘이 지난다. 구름이 무척이나 낮아, 언제라도 지붕에 걸릴 것만 같다.
시청 건물의 지붕에서는 천사 조각상이 나팔을 불고 있다. 시계는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덩굴 무늬를 따라 금색으로 칠을 한 건물 각층 발코니에는 화사한 꽃 화분들이 놓여있다. 발코니 중앙엔 스페인 국기를 포함한 몇 개의 깃발이 걸려 있다. 국기가 없었으면 시청 건물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광장에서 한숨 돌린 우리는 가까운 어느 과일 가게에서 체리를 한 봉투 가득 샀다. 중동에서 먹던 체리만큼 달콤하고 살살 녹지는 않지만 배고프고 피곤한 상태라 금세 봉투가 텅텅 빈다. 그리고 수도원으로 가서 크레덴시알의 도장을 받고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팜플로나의 알베르게는 옛 수도원을 그대로 쓰다가 최근 새롭게 개조한 것으로 시설이 굉장히 좋다. 여럿이 함께 쓰는 도미토리는 물론이며 - 침대마다 미등이 따로 달려 있다 - 샤워 설비도 최신식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여러 명이 쓰는 샤워시설은 각 칸마다 ‘잠금장치가 있는’ 간이문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곳 시설의 최고는 단연코 주방과 세탁실이다. 오직 먹을 생각 만만이었던 우리는 부엌을 들여다 보고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다.
오픈형 주방은 레스토랑 주방의 축소판이다. 오븐과 전자레인지 크기는 거대하고, 와인 오프너를 비롯한 각종 취사도구와 접시 등이 가득 준비되어 있다. 없는 거라곤 음식 재료뿐이다. 테이블은 단체와 소수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구분되어 있고, 색도 알록달록하다. 여태까지의 낡고 오래된 알베르게들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지만, 편리와 청결함 앞에서는 운치 따위(?) 금방 빛을 잃고 만다(또 운치를 즐기기엔 우리가 너무 지쳐있기도 했다).
세탁실에는 제법 그럴듯한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 두 대와, 여러 대의 세탁기, 건조기, 건조대, 손세탁을 할 수 있는 개수대까지 갖춰져 있다. 정말 완벽하다. 내부를 둘러보는 동안 나는 내일 정말로 꼭 여길 떠나야 하나, 며칠 더 머무를 수는 없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부엌과 도미토리를 잇는 중간에는 널찍한 라운지가 있다. 그곳엔 카미노 관련 책자와, 여행자들이 기증한 책들이 꽂힌 책장과 컴퓨터,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위엔 큼지막한 순례자들의 방명록이 놓여있다.
샤워를 마치고 일행들의 옷가지를 한꺼번에 모아 코인 세탁기에 넣고 돌린 후, 라운지로 와서 방명록 중간을 펼쳤다. 방명록은 여러 국적의 순례자들이 끼적인 글들로 빼곡하다.
어떤 글은 정성이 가득했고, 가볍기 그지없는 끼적임도 있었으며, 읽기만 해도 바람 냄새가 나는 듯한 메모도 있었다. 그리고 읽다가 그만 내가 이런 것을 들여다봐도 되나 싶을 만큼 무거운 고뇌가 담긴 글도 있었고, 어떤 글은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마무리는 사랑이었다. 누구 하나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축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까. 방명록을 띄엄띄엄 뒤적이던 나는 여백의 첫 페이지에 짧은 방명록을 적어 넣었다. 나의 메모도 누군가를 위한 축복으로 끝이 났다.
세탁실로 돌아가자, 이미 먼저 온 사람이 빨래를 꺼내고 있다. 신부님이다.
“도와드려요?”
“괜찮아요. 거의 다 꺼냈으니까.”
우린 세탁실 뒷문 밖 공터에 빨래를 널었다. 사면이 건물과 높은 담장으로 막힌 뒷마당이다. 하지만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온다. 빨래를 널자, 옷의 팔다리가 허공에서 신명 나게 허우적거린다.
신부님은 벤치에 앉더니 담배를 찾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았다. 사위가 고요하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뿐.
뜻밖의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멍하니 있다가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어 신부님에게 물었다.
“그런데 신부님은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목사님인가?”
허공을 보던 신부님의 눈이 나를 향한다.
“의무는 아니지만, 원칙적으론 그렇죠.”
“그런데 왜 피우세요?”
신부님은 쓰게 웃는다.
“끊긴 끊어야겠는데, 그게 어디 쉽게 되나요. 저도 고민이 많았죠. 그러다가 하루는 선배 신부님을 만났어요. 나는 숨어서 피우기 바쁜 담배를 그는 공공연히 대놓고 피우더군요. 그래서 물었죠. 선배님은 그런 고민 안 했느냐고요.”
“그래서요?”
신부님은 당시의 일이 떠오르는지 피식피식 웃었다.
“술을 마셔야, 술 마시는 신도들을 이해할 수 있고 담배를 펴야, 담배를 피우는 신도들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야만 진정한 구원의 인도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더군요.”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앞으로 들어도 뒤로 들어도 그건 그냥 자기 합리화잖아요.”
신부님은 껄껄 웃었다.
“그렇죠. 하지만 우습게도 그때 그게 위안은 되더라고요. 신부도 결국 사람이니까요.”
신부도 결국 사람이란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냥 지도자도 힘든 자리인데, 무려 종교지도자라니. 과연 사람이 속 편히 감당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그들도 불완전한 인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