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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른다 Jul 04. 2024

적당히가 얼마큼인데

Ep17. 남자들의 소통법


 나는 격주로 재택근무를 하는데, 출근하지 않는 주간에는 점심시간에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엄마도 내 취미가 마음에 드시는지, 종종 내 주력 메뉴의 재료들을 슬쩍 사두고 아침 수영을 떠나곤 하신다. 나는 아무도 없는 주방에서 혼자 요리하는 게 좋은데, 가끔 손질이 번거로운 재료들은 다른 가족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묵은지를 씻는 일이었다.


 김치를 얼마나 씻어야 하냐고 묻는 아빠에게 나도 모르게 ‘적당히’ 씻어달라고 했다. 옛날에 할머니한테 소금 간을 얼마나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그 답답-한 대답을 내가 하고 있다니. 말하는 사람의 ‘적당’은 듣는 사람이 알리 만무하지만, 시키는 사람도 사실 얼마큼이 적당한지 정확히 모른다는 게 팩트. 그래도 이 김치제육을 완성하려면 누군가는 김치의 양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대충 어림잡아 대답했다.


“다섯 이파리 정도? 흐르는 물에 양념이 씻겨 나갈 정도로 헹궈주시고 물기를 쫙 짜주세요. “

“오케이. “


 정확한 양과 방법을 입력하니 출력은 확실했다. 나는 번거로운 재료를 아빠가 해결해 주니 좋았고, 아빠도 나의 요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으니 뿌듯해서 좋고. (사실 이건 내 짐작이다. 뿌듯했겠지? 분명 좋았을 거야.) 남자친구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이 단순한 남자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정확히, 다정하게 부탁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포인트, 결과물을 보여줬을 때 대단히 칭찬할 것. 그래야 이들의 도움을 일회용이 아닌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빠의 손길이 더해져서인지 역대급 김치제육이 완성되었다. 엄마 닮아 손이 큰지 점심 저녁 두 끼를 잘 해결했다는 훈훈한 마무리!



instagram: reun_da (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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