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중 헌정-삿포로의 비에이에게

잊혀진 초고 본문 3-5

by 전효원

요즈음 삿포로 여행의 필수 코스라 일컫는 비에이 크리스마스 나무가 젊은 친구들에게 아주 핫하다. 일과의 틈새 속 SNS를 배회하며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같은 눈밭, 같은 나무 앞에서 사진 속 형식적인 웃음을 띄고 있는 주인공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진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허나, 이 이례적인 유행을 그저 젊은이들의 해외여행에 대한 단순한 허영심, 보여주기식 삶의 실태의 현장으로 폄훼해버릴 수만은 없다. 사진 속 비에이 크리스마스 나무는 실제로 너무 아름답다.


그 장소의 특징이라 함은, 파란 하늘과 하얀 눈밭 외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아 마치 생명은 고사하고 ‘자연적 현상’에서 ‘자연’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 그저 ‘현상’ 뿐인 외계 행성의 촬영본과 같다. 자칫 슬프고 공허하기만 할 뻔하였던 현장에, 마치 빅뱅의 충격파가 이르는 그 순간에나 마주할 듯한 감동의 활로를 뻗는 것은 외롭게 스스로를 지탱하는 그 현장의 유일한 생명체, 크리스마스 나무 덕분이다.


‘우와~’ 라는 감탄사로 일축할 수 있는 빙산의 일각의 감정은, 공감의 바다 위에 경험의 유빙들이 사색의 흡착력으로 한데 모인 오랜 서사의 결과물이다. 자연을 우리 스스로와 결부하여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도 고귀한 능력은, 어쩌면 우리 모두 한때는 그저 자연이었기에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감의 바다 아래, 우리는 수많은 경험들을 통하여 이색적인 현장의 특별함을 줄곧 학습해왔다.


계곡의 바위 사이에 엉켜있는 선인장, 사막을 헤엄치는 고래, 어두운 밤을 비행하는 해바라기. 성립할 수 없는 조건으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그림의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그 이질감에서 풍겨오는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를 상상하여 본다. 익사의 골짜기로 스스로를 물 속에 썩혀 들어가는 선인장, 까칠해진 목구멍 안 아득한 정신을 힘껏 내던지는 따가운 모래 속 고래, 연신 고개를 내저으며 바라볼 곳을 잃어버린 채 추락하는 해바라기.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여 보면 그들은 한 때 슬픈 미래였던 수많은 과거를 갖고 있었다는 다행과 감동을 제공한다. 그 극한의 현장에서 줄곧 몸을 뒤틀며 고개를 당당히 쳐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영웅’의 정의에 대해 숙고한다. 그리고 그 흔한 일상 속에 스스로를 드러내며 숨어있는 영웅들에 대하여, 가히 표할 수 없는 존경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한 걸음 물러선다.


비에이의 크리스마스 나무 또한 그러하다. 그 무기력의 현장 속 유일하게 발휘하는 자연적 법칙의 예외 현상인 생명력. 극에 달하는 외로움, 수많은 무기물들의 위협 속에서도 그 크리스마스는 자신의 나뭇가지를 뻗히고 이파리와 생명의 자손들을 넓은 아량으로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영웅적인 모습은 우리의 해수면 아래 거대한 빙하에서는 존경심과 경외감,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해수면 위 좁고도 낮은 빙산의 일각에서나 비로소 아름다움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여 보면 그들은 한 때 슬픈 미래였던 수많은 과거를 갖고 있었다는 다행과 감동을 제공한다. 그 극한의 현장에서 줄곧 몸을 뒤틀며 고개를 당당히 쳐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영웅’의 정의에 대해 숙고한다. 그리고 그 흔한 일상 속에 스스로를 드러내며 숨어있는 영웅들에 대하여, 가히 표할 수 없는 존경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한 걸음 물러선다.



-글 작성 후 가까운 미래에 과거를 돌이키며

책 작성하다가 유난히 집중력이 분산되고, 무엇보다도 생각의 강요로 비롯된 압박의 채찍에 짓눌려 생각이 더욱 숨어 들어가도록 하는 아이러니에 빠지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3시간을 끙끙거리며 겨우겨우 작성한 A4용지 1장의 글귀이나, 정작 뒤돌아보니 어느 개체의 뼈대, 살가죽, 핏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은 작은 새로운 개체로 거듭나 있더라고요. 물론 막 태어난 이 아이는 아직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서툴음의 상처가 군데군데 묻어있는 연약한 새끼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고 소중한 이 불씨를 낙태시키기에는 그의 탄생 과정이 너무나 아쉽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그를 바라보기에 너무 귀엽고 나는 너무 행복하였기에 이렇게 그를 책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의 들에 뛰노는 기쁜 어린 양으로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