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푸른 베푸심으로 만물을 보듬다
단연코 최고의 자연 경관은 하늘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가장 먼저 창조하신 만물의 근원, 하늘은 뛰노는 어린아이와 휘날리는 전나무, 신음하는 가젤, 수줍어하는 회색전갈, 헥헥거리는 북극곰과 짓밟히는 낙엽에게 자비넘치는 숨통을 틔우고 생명의 연장이라는 영광을 내린다.
그로부터 모든 자연은 비롯된다.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쬐는 사망의 빛줄기, 이미 수많은 행성들을 사망의 늪으로 변모시킨 그 저주를 하늘은 아름답도록 사방으로 흩뿌리는 불꽃놀이로 뒤바꾼다. 한없는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형상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부여한다. 향긋하고 생기넘치는 신선한 초록빛 이파리와 줄기, 그리고 예찬하다 못해 그의 모습을 이참에 닮아가기로 작정한 드넓은 바다의 푸른빛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아름다움같을 저 푸른 하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만물은 하늘로부터 비가역적인 속박을 만끽하고 있다. 하늘이 없으면 만물도 없어지리니.
더욱이 그에게 고마운 것은 마치 그는 창조주이자 절대자라도 된 듯 늘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눈을 뜨더라도 하늘이 우리를 떠나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의 정수리 위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함께하고 있다. 그의 옷깃을 만지고 자태를 살펴보기 위해 성지로 향하지 않아도 된다. 연차를 내고 휴학을 할 필요조차 없다. 그저 창 너머로 고개를 돌려 옅은 미소를 보이거나,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젖혀올리며 미천한 몸뚱아리에 가해지는 순간적인 부유감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조물주의 바다에 떠다니는 구름은 정적이기도 하다만, 한편으로는 동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때로 그를 예의주시한다. 가까운 구름, 그 뒤를 지키고 있는 더욱 위대한 구름, 두 분신의 상대성으로 인해 우리는 동적 대상과 정적 대상을 결정한다. 허나 무서운 것은, 우리가 상대적 관점에 의거하여 선택한 정적인 대상 또한 우리가 깜빡 고개를 꺼뜨리고 쳇바퀴를 돌리다가 다시 바라보면, 어느새 창틀 저편의 세계로 도피하여, 어쩌면 우리의 자아가 창조한 물질적 세계의 범주 밖에서 영면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특히 놀라운 순간은 낮과 밤의 경계 속 자신 속을 거니는 나그네가 태양에서 달로 바뀌는 그 순간이다. 참으로 훌륭한 무대이다. 잠시 낯빛을 드리우고 난 뒤 하늘은 갑작스레 스스로를 노랗게 밝힌다. 그리고 분홍빛으로, 주황빛으로, 붉은빛으로, 그 카멜레온의 변신은 이 세계의 81억명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막의 시작을 알리고 박수를 유도한다. 이내 그 카멜레온은 12시간동안 숨어버린다. 꼬리에는 다시 하늘 본연의 푸른 빛을 어떻게든 남겨놓으면서. 어둠을 시작하고 태양을 마무리짓는 마지막 하늘색은 마치 매일을 함께할 태양에 대한 고고한 정절이다.
단 20분만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열거하자니 문장이 많이 서투르고 한 쪽 입꼬리가 부끄럽도록 올라가더라도 베푸는 마음으로 보듬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