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참모의 길

by 권태윤

꽃밭에는 벌들이 모이고, 똥밭에는 파리가 꼬입니다. 꽃밭에는 꿀이 있고 똥밭에는 똥이 있다는 것을, 벌도 알고 똥파리도 알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동서남북을 둘러보고 자신이 오래 누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범부(凡夫)라면 그러려니 할 만합니다. 그러나 정치를 하겠다는 자들까지 이러면 무척 실망스럽습니다. 꿀 빤 뒤엔 갈증만 더하지만, 똥밭을 잘 관리하면 기름진 옥토가 됩니다. 손쉽게 얻어서 권력을 누릴 심산이라면 정치판이 아니라 투전판으로 달려가는 것이 낫습니다. 거기에도 흥망(興亡)과 성쇠(盛衰)가 있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지역구 공천신청자 수는 849명, 평균경쟁률 3.35대1, 특히 여당 지지율이 높은 경북은 5.2대1, 서울 강남3구는 3.9대1이었습니다. 영남권 65개 지역구(부산 18, 대구 12, 울산 5, 경북 13, 경남 16)에는 282명이 공천을 신청해 평균경쟁률이 4.34대1이었습니다. 꿀 빨러 간 인간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입니다. 소위 ‘용산 참모’들도 꿀 빨기 좋은 강남과 영남으로 날아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들에게 과연 애국심이니, 애당심이니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반면 힘없고 빽없는 청년은 스스로 강북으로 호남으로 찾아갔습니다. 호남은 28개 지역구에 신청자가 21명 밖에 안 됐습니다. 이게 ‘공정(公正)’을 내건 당시 윤석열 정부 참모들이 대통령 곁에서 보고 배운 정치인지 의문입니다.


의미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 있는 도전’을 포기하는 그 비겁함과 나약함을 지적한 것입니다. 대통령을 팔아 국회의원 배지나 달라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도전을 통해 승리를 견인하고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자기 마음대로 못가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수치심과 용기는 가져야 ‘용산 참모’ 출신이란 소리를 당당하게 할 수 있었지 않겠습니까.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우리 정부 장관과 용산 참모가 양지만 찾아가는 모습은 투명하고 공정한 당의 시스템 공천 노력을 저해하는 움직임”이라며 질타했겠습니까.


선거라는 이름의 전쟁은 아군(我軍)을 도륙하는 게 아니라, 적장(敵將)의 목을 베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내린(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선전하는) 갑옷과 검을 차고 아군 장수의 목을 베겠다며 돌격한다면, 그것을 보는 왕과 백성은 뭐라고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군 장수의 목을 베고 그것을 전리품이라고 자랑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제정신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작 적들이 활개 치는 불리한 전장(戰場)은 피하고, 쉽게 얻을 그 무엇인가에만 눈이 먼다면, 그런 승리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반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시 윤대통령은 험지출마를 위해 떠난 청년 행정관들에게 “다들 양지만 간다는데, 왜 험지를 택했느냐”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권력에 아부해 복록(福祿)을 누리고, 그것도 모자라 양지만을 찾는 자를 올바른 공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충신은 어려울 때 도리어 가장 선두에 앞장섭니다. 참된 장수는 적장을 베기 위해 자기의 전부를 겁니다. 그런 자세가 진정한 승리를 낳고, 스스로 단단하게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어설프게 꿀만 빨려 하다가는 도리어 돌밭에 거꾸러질 확률만 높아진다는 사실은 세삼스럽지도 않습니다.


거꾸로 한번 생각해봅니다. 당시 정부 부처, 용산 참모로 기용된 사람들은 나름 실력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뽐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대통령의 기대만큼 뛰어났었다면,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가 50% 이상은 넘어야 정상입니다. 대통령이 30%대 지지율에 갇혀 신음할 때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요.


대통령이 아무리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에게 잘 보여 한 자리 차지한 그들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명말·청초의 학자 고염무(顧炎武)는 “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필부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고 했습니다. 용산 참모들이라면 오죽할까요. 이들에게는 ‘가산점’이 아니라 도리어 ‘감산점’을 주는 것이 당연하고 옳았습니다.


정치무대에선 옥석(玉石)을 제대로 걸러내야 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팔아 후광(後光)효과나 노리려는 껍데기들은 가차 없이 걸러내야 합니다. ‘공정’이란 별 게 아닙니다. 스스로 일어설 줄 아는 자들만이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입니다. 스스로 수세에 몰린 적진으로 달려가 자기 한 몸 불사를 줄 아는 이가 목에 걸 수 있는 영광의 단어가 ‘공정’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 『파운데이션(Foundation)』에 이런 구절이 보입니다.


“자신들의 메마른 가슴에 사소한 이익이나 잔뜩 품고 있는 자들은, 눈멀고 어리석은 병자들의 모임에 불과하다.”

다운로드 (2).jpeg


작가의 이전글'혼돈(混沌)' 과 '무지(無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