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人的) 쇄신(刷新)의 한계

by 권태윤

선거 때만 되면 각 정당들은 연례행사처럼 소위 ‘물갈이’를 해왔습니다. 얼핏 ‘쇄신’, ‘개혁’으로 보이지만, 솔직히 이건 ‘대국민 사기행위’와 유사합니다. ‘교체’와 ‘쇄신’은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습니다. 쇄신의 첫출발이 사람교체 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숱한 ‘인적쇄신’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와 국회의 모습은 달라진 게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몇 %를 자르고 새 인물을 충원한다느니 하는 주장들은, ‘정치개혁’이라는 본질을 가리고 선거만 생각한 ‘얄팍한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지난 1997년부터 곁에서 지켜봐 온 우리 국회.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숱한 사람이 ‘새 인물’로 수혈되어 들어왔지만, 정당과 정치라는 병든 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치워야 할 짐, 오물집합소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합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정치권이 ‘새 피 수혈’이라는 이벤트에 매달리는 이유는 국민이 거기에 잘 속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속는다는 것은 무지하고 성급하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새 피도 수혈되자마자 동화되어 썩는다면 그 본체에 집중해야지 자꾸 새 피만 집어넣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본질에 눈감은 국민은 대증요법에 잘도 속습니다.


단언컨대, 백날 ‘물갈이’ 하고, 인적쇄신 해봐야 우리 정치 안 바뀝니다. 우리 국회 안 바뀝니다. 새로운 물도 금방 구정물이 되고 마는 그릇, 즉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정당제도 시스템을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인적 교체가 효과를 봅니다.


판단하건데, 우리 정치를 망가뜨리는 가장 큰 요인은 정당의 잘못된 ‘공천제도’와 ‘중앙당 중심의 정당운영’입니다. 이것이 300명의 입법기관들이 제 목소리, 제 역할을 못하도록 옭아매는 가장 추악하고 강력한 ‘족쇄’요 ‘올가미’입니다. 이걸 제대로 끊어내야 자유롭게 숨 쉬는 살아있는 국회, 자율과 창의가 가득한 정치가 가능해집니다.


투명한 공천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헌이니 당규니 하는 것으로 장난치는 공천기준이 아니라, 헌법과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회의원의 임무(입법, 예결산심사, 국정감사 등)를 계량화 해, 정량평가로 일정률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치열한 경쟁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의원총회도 없애야 합니다. 당론(黨論)정치가 당도 망치지만 나라도 망칩니다. 정당을 ‘봉숭아학당’ 만드는 짓이 바로 의원총회입니다. 중앙당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각종 대중집회도 없애야 합니다. 조직관리와 오프라인 행사 중심의 중앙당을 해체해 <중앙정책연구소>로 바꾸고, 전국 시도당을 <지역정책연구소> 형식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각각이 법이 부여하는 ‘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정치개혁은 저절로 이뤄집니다. 수시로 불러 모아 아무런 결론도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수시로 불어모아 소득 없는 집회를 하면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 법안 들여다보고, 언제 예산안 살펴보고, 언제 국정을 들여다본다는 말인가요. 지금 우리 국회의원들은 법이 규정한 의무의 절반도 제대로 못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의원 수 증원 운운'하는 것은 파렴치의 극치입니다. 선거제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제 일도 제대로 안하면서 선거제도에만 신경을 쏟으니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요. 국회의원 각자가 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잘 만들어야 합니다.


혁신의 첫출발은, 정치도 모르는 어설픈 친구들 데려와서 당의 얼룩을 가리는 포장지로 쓰는 ‘사기행위’가 아니라, 지금의 구시대적이고 폐쇄적이며 낡은 정당정치 시스템을 몽땅 갈아엎는데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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